100여년 전 광개토왕비 탁본, 프랑스서 찾았다
자유인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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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17:51
박대재 교수,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 소장본 조사·연구
1910년 안팎 석회탁본...“4개면 가운데 2면 중복”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이 소장한 광개토왕비 탁본. 왼쪽부터 제1면, 제2면(A), 제2면(B), 제4면을 탁본한 자료. 탁본 사진은 올해 10월 12일 촬영된 자료로 박대재 교수가 학회 도서관에 요청해 받은 것이다. [콜레주드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 제공]고구려 광개토왕(재위 391∼4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인 광개토왕비의 탁본(拓本)이 프랑스에서 새로 발견됐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이 아닌 서구권에서 광개토왕비 탁본이 확인된 두번째 사례로 다른 탁본과도 차별화되는 점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 탁본을 조사한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소장처인 프랑스 고등학술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시아학회 도서관은 지난해 말 학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탁본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 측은 “올해 9월 소장본의 실측 조사와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24일(현지시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이 탁본을 소개한다.
광개토왕비 탁본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가로 37∼38㎝, 세로 63∼67㎝의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여 비석 면에 새긴 글자를 찍어냈으며, 총 4면 가운데 3번째 면을 제외한 1면, 2면, 4면이 확인됐다. 박 교수는 “제3면이 빠지고 제2면이 중복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 “중복된 2장은 접지방식과 먹색이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탁본 연대는 1910년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개토왕비 탁본이 유일하게 서구권에서 소장하고 있는 탁본으로 알려져왔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탁본은 1917년 5월 11일 자 학회 회의록에서 ‘게티 여사가 기증했다’고 적혀 있다. 아시아 불교 미술을 연구한 앨리스 게티(1865∼1946)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게티는 1908∼1913년에 자료 조사를 위해 아시아 지역을 3차례 답사했다.
탁본은 비석 면에 석회를 발라 균열이 있는 곳이나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일부 조정한 후에 찍어내는 방식의 석회 탁본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전하는 광개토왕비 탁본 자료 100여 종 가운데 약 80%가 18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석회 탁본으로 알려져 있다.
광개토왕비는 414년께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에 세워진 비석이다. 아들인 장수왕이 부친의 능을 조성하면서 높이 6.39m에 이르는 비석을 세웠다고 전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여겨지며 총 4개 면에 1775자가 새겨져 있다. 다만 건립된 지 1600년이 지났고, 19세기 말 청나라 고증학이 유행하면서 광개토대왕비임이 공식 확인됐다. 가장 이른 탁본도 일본에서 가지고 있는 1881~1883년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표면에 가득 낀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질렀고 석회 탁본을 거듭하면서 글자가 상당수 훼손됐다. 때문에 현재 10여종 남아 있는 원석탁본(비면에 종이를 대고 직접 두드려 떠낸 탁본)의 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한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는 오랜 세월과 불을 맞아 상당수 훼손돼 있다. 글자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비면에 석회를 발랐다. 1918년 촬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1910년 안팎 석회탁본...“4개면 가운데 2면 중복”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이 소장한 광개토왕비 탁본. 왼쪽부터 제1면, 제2면(A), 제2면(B), 제4면을 탁본한 자료. 탁본 사진은 올해 10월 12일 촬영된 자료로 박대재 교수가 학회 도서관에 요청해 받은 것이다. [콜레주드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 제공]고구려 광개토왕(재위 391∼4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인 광개토왕비의 탁본(拓本)이 프랑스에서 새로 발견됐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이 아닌 서구권에서 광개토왕비 탁본이 확인된 두번째 사례로 다른 탁본과도 차별화되는 점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 탁본을 조사한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소장처인 프랑스 고등학술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시아학회 도서관은 지난해 말 학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탁본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 측은 “올해 9월 소장본의 실측 조사와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24일(현지시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이 탁본을 소개한다.
광개토왕비 탁본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가로 37∼38㎝, 세로 63∼67㎝의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여 비석 면에 새긴 글자를 찍어냈으며, 총 4면 가운데 3번째 면을 제외한 1면, 2면, 4면이 확인됐다. 박 교수는 “제3면이 빠지고 제2면이 중복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 “중복된 2장은 접지방식과 먹색이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탁본 연대는 1910년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개토왕비 탁본이 유일하게 서구권에서 소장하고 있는 탁본으로 알려져왔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탁본은 1917년 5월 11일 자 학회 회의록에서 ‘게티 여사가 기증했다’고 적혀 있다. 아시아 불교 미술을 연구한 앨리스 게티(1865∼1946)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게티는 1908∼1913년에 자료 조사를 위해 아시아 지역을 3차례 답사했다.
탁본은 비석 면에 석회를 발라 균열이 있는 곳이나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일부 조정한 후에 찍어내는 방식의 석회 탁본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전하는 광개토왕비 탁본 자료 100여 종 가운데 약 80%가 18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석회 탁본으로 알려져 있다.
광개토왕비는 414년께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에 세워진 비석이다. 아들인 장수왕이 부친의 능을 조성하면서 높이 6.39m에 이르는 비석을 세웠다고 전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여겨지며 총 4개 면에 1775자가 새겨져 있다. 다만 건립된 지 1600년이 지났고, 19세기 말 청나라 고증학이 유행하면서 광개토대왕비임이 공식 확인됐다. 가장 이른 탁본도 일본에서 가지고 있는 1881~1883년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표면에 가득 낀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질렀고 석회 탁본을 거듭하면서 글자가 상당수 훼손됐다. 때문에 현재 10여종 남아 있는 원석탁본(비면에 종이를 대고 직접 두드려 떠낸 탁본)의 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한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