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냄비밥] 세대 불문 동기화시키는 노란 양은냄비의 추억
자유인76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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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5 17:51
세 개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돌아가며 출판하는 ‘아무튼, 시리즈’, 7년째 50여 권의 책이 출간될 정도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아무튼, 양말’, ‘아무튼, 문구’, ‘아무튼, 여름’ 등등처럼 저자가 좋아하고 흥미 있는 뭔가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식입니다.
이번 연재도 ‘아무튼’의 힘을 빌려봅니다.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우리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룹니다.
‘옛날 어른들은 왜 그렇게 밥 남기는 걸 싫어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쌀이 귀해서이기도 하지만, 밥을 짓는 과정에 담긴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 귀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서면 밥때가 돌아온다’는 푸념도 옛말이 됐습니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기만 하면 알아서 진밥, 일반 밥, 된밥 기호에 맞춰 밥을 지어주니 말이죠.
그에 비하면 ‘냄비밥’은 쌀을 씻어서 불리는 과정부터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짓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려면 20여 분간은 부엌을 떠나지 않고, 불 위에 안친 밥의 안위를 살펴야 하죠.
밥솥이 없던 시절에는 ‘밥’에는 그런 따뜻함이 자연스레 배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가족 중 저녁 식탁에 늦는 사람이 있으면 공기에 밥을 담아 따뜻한 아랫목이나 장롱 이불 속에 넣어두던 모습이 그렇습니다.
SNS 캡쳐
최근에는 캠핑이 유행하면서 ‘냄비밥’에 도전하는 젊은 층도 많은 것 같은데요.
실패 없이 ‘냄비밥’을 짓는 데는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그 시절 ‘냄비밥’은 노란 양은냄비가 정석인데, 캠핑 가서 해 먹는 질 좋은 스텐냄비와는 또 다른 난이도입니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끓어 넘치지 않는지, 불을 얼마나 조절해야 하는지 누룽지가 타지 않는지, 뜸을 얼마나 들여야 하는지는 오랜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탓이죠.
집에서 옛 감성을 찾느라 인덕션에 ‘냄비밥’을 지으려 한다면, 밥 냄새가 뭉글뭉글 올라오는 설렘도 잠시 속수무책으로 끓어 넘치는 물에 전의를 상실할 가능성이 큽니다.
위는 설익고 아래는 타버린 냄비밥을 목도할 즈음에는 잘하는 냄비밥집을 검색하기에 이릅니다.
충북에는 드물게 ‘냄비밥’에 밥을 해주는 식당이 있는데, 그중 향수의 고장 옥천에는 이름도 그럴싸한 ‘냄비백반’집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아버지 밥 해드릴 때 냄비를 연탄불에 올려놓고 풍로에 하시곤 했죠”
이 추억으로 먹고산다는 주인장은 요즘은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고 웃어 보입니다.
중장년층이 이곳에서 추억의 맛을 떠올린다면, 젊은 층은 든든한 엄마의 밥상을 떠올릴 것입니다.
갓 지은 냄비밥 뚜껑을 열면 하얀 쌀밥에 초록 완두콩이 콕콕 박혀 있습니다.
영양까지 생각한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지는 밥상에는 7~8가지의 밑반찬이 즐비합니다.
주메뉴의 선택지가 넓은 것도 이집의 매력입니다.
주인장이 직접 띄운 청국장과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 요일마다 바꿔먹고 싶을 정도로 구색을 잘 갖춘 백반집이죠.
단, ‘냄비밥’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아무리 맛있어도 누룽지 먹을 배는 남겨둬야 합니다.
배 따뜻한 ‘냄비밥’의 추억을 갖게 된 이상, 언제고 한 번은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전자레인지에 냉동 밥 데워 먹는 것이 싫증 날 때나 문득 노란 양은냄비가 눈에 띌 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