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 교수가 없다]③ “중증 담당의·응급의 부족 문제는 의대 증원과 별개로 살펴야”
자유인65
IT과학
4
468
2023.11.28 20:29
박은철 연세대 교수 권정현 KDI 연구위원 우봉식 대한의협 소장 진단
“상급종합병원 필수의료 의사 채용 독려해야”
“우왕좌왕 정부 정책 방향성 문제”
“의대 증원 보다 필수의료 더 급해…점진적으로 해야”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들은 대학병원에 의사들이 남게 하려면 의사 고용을 늘리는 제도 도입과 동시에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박은철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권정현 KDI 연구위원, 우봉식 대한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보건 의료 정책 전문가들은 대학병원에 의사들을 남게 할 방법으로 의사 고용 확대 정책과 함께 동시에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에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달랐다. 의사들이 기피 진료과를 선택하도록 보상을 늘리는 건 맞지만, 그동안 정부의 수가 인상책은 성공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박은철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중증 응급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는 내후년에 더 부족하다”라며 “대학병원에 인력이 지원할 수 있도록 지방을 포함해 상급 종합병원에 응급⋅중환자 치료비를 파격적으로 올려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24조 원 적립금 중에서 1~2조 원 정도만 투입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국고도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 수가를 높여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필수 의료 수가 인상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 특정과의 수가를 인상하면 수도권 대학병원의 교수 채용을 확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지방 대학병원 의사들이 수도권을 이직하면서 지방은 극심한 구인난을 겪을 수도 있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보건복지부의 '2023년 하반기 과목별 전공의 지원율' 자료를 보면 소아청소년과 2.8% 흉부외과 3.3%, 외과 6.9%, 응급의학과 7.5%, 산부인과 7.7%로 필수의료 분야 모두 지원율이 극히 적었다. /뉴스1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그동안 수가를 높여서 심장⋅흉부외과⋅응급의학과 등 기피 과에 교수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써 왔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권 연구위원은 “일자리의 금전적 보상 외에 비금전적인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며 “대학병원에서 의사 고용을 늘려서, 과중한 업무를 나눌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 전문의 고용 지원금을 지급하는 고용 유인책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이 중증 응급 진료과 교수를 더 채용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사 단체에서도 나왔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대학병원에 자리가 있다지만 정작 공석을 뽑지 않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효율에 있다”며 “응급⋅ 중증환자 치료 역량이 있는 대학병원이 경증 당뇨⋅혈압 환자까지 진료하면서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우 소장은 의료 전달 체계의 비효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1998년 정부가 의료전달체계를 폐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라며 “지금 의료계 상황은 정부가 전국에 전기차 충전소를 많이 세웠지만, 정작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는 충전소가 없어서 아우성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상급 종합병원을 짓는 것이 오히려 의료 전달 체계를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비급여 시장 관리 감독을 위해 실손보험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의사들이 대학병원에 남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필수의료와 개원가의 ‘보상 격차’ 때문이라면 이 격차는 좁혀야 한다. 그러나 상한선이 없는 비급여와 달리, 필수의료 수가 아무리 높인다 해도, 건보 재정 안에서 논의하기 때문에 인상에 한계가 있다.
그래픽=손민균
권 연구위원은 “환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지불하는 방식의 실손보험을 지렛대 삼아 가격을 높여 받는 게 문제”라며 “도덕적 해이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팽창은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비급여 병원 진료를 받더라도 의사 진찰료는 무조건 건보에서 빠져나간다.
우 소장도 “실손보험으로 본인부담금까지 커버할 수 있게 한 제도 설계가 잘못”이라며 “지금이라도 비급여는 비급여 시장으로 남도록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연구위원은 “건보 급여만으로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사회적 합의가 되면, 일본처럼 비급여와 급여를 분리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금융감독원의 실손보험 관련 담당자의 전문성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일부 민간 보험사들의 출혈 경쟁이 의료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며 “잘못된 보험 상품을 계산해서 잡아낼 수 있도록 감독기관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권 연구위원은 “의대 정원 확대는 고령화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며 “문제는 2050년이면 의료서비스 수요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권 연구위원은 “의약분업 당시 의사를 줄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갑자기 의대 정원을 늘렸을 때 나타날 부작용들도 반드시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부차적인 문제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정부가 실기한 필수의료 대책 중에는 대학병원의 전공의 정원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비수도권 정원을 대폭 늘린 것이 꼽힌다. 당장 내년부터 수도권 전공의는 줄어들고, 지역의 전공의가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대병원도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같은 기피 진료과의 전공의를 못 채우는 상황에서 정원만 늘린다고 의대생들이 지방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지방대는 교수가 없어 힘들고, 수도권에서 인턴을 하던 의대생들은 전공의 자리를 찾지 못해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필수의료 대책을 올해 들어 6번이나 냈지만, 정작 이들 기피과 의사 부족 문제의 시급성은 체감하고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 필수의료 의사 채용 독려해야”
“우왕좌왕 정부 정책 방향성 문제”
“의대 증원 보다 필수의료 더 급해…점진적으로 해야”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들은 대학병원에 의사들이 남게 하려면 의사 고용을 늘리는 제도 도입과 동시에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박은철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권정현 KDI 연구위원, 우봉식 대한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보건 의료 정책 전문가들은 대학병원에 의사들을 남게 할 방법으로 의사 고용 확대 정책과 함께 동시에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에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달랐다. 의사들이 기피 진료과를 선택하도록 보상을 늘리는 건 맞지만, 그동안 정부의 수가 인상책은 성공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병원 의사 고용 촉진 정책 내놔야”
박은철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중증 응급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는 내후년에 더 부족하다”라며 “대학병원에 인력이 지원할 수 있도록 지방을 포함해 상급 종합병원에 응급⋅중환자 치료비를 파격적으로 올려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24조 원 적립금 중에서 1~2조 원 정도만 투입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국고도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 수가를 높여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필수 의료 수가 인상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 특정과의 수가를 인상하면 수도권 대학병원의 교수 채용을 확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지방 대학병원 의사들이 수도권을 이직하면서 지방은 극심한 구인난을 겪을 수도 있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보건복지부의 '2023년 하반기 과목별 전공의 지원율' 자료를 보면 소아청소년과 2.8% 흉부외과 3.3%, 외과 6.9%, 응급의학과 7.5%, 산부인과 7.7%로 필수의료 분야 모두 지원율이 극히 적었다. /뉴스1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그동안 수가를 높여서 심장⋅흉부외과⋅응급의학과 등 기피 과에 교수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써 왔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권 연구위원은 “일자리의 금전적 보상 외에 비금전적인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며 “대학병원에서 의사 고용을 늘려서, 과중한 업무를 나눌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 전문의 고용 지원금을 지급하는 고용 유인책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이 중증 응급 진료과 교수를 더 채용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사 단체에서도 나왔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대학병원에 자리가 있다지만 정작 공석을 뽑지 않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효율에 있다”며 “응급⋅ 중증환자 치료 역량이 있는 대학병원이 경증 당뇨⋅혈압 환자까지 진료하면서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손보험과 건보 제도 분리하도록 제도 정비”
우 소장은 의료 전달 체계의 비효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1998년 정부가 의료전달체계를 폐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라며 “지금 의료계 상황은 정부가 전국에 전기차 충전소를 많이 세웠지만, 정작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는 충전소가 없어서 아우성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상급 종합병원을 짓는 것이 오히려 의료 전달 체계를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비급여 시장 관리 감독을 위해 실손보험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의사들이 대학병원에 남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필수의료와 개원가의 ‘보상 격차’ 때문이라면 이 격차는 좁혀야 한다. 그러나 상한선이 없는 비급여와 달리, 필수의료 수가 아무리 높인다 해도, 건보 재정 안에서 논의하기 때문에 인상에 한계가 있다.
그래픽=손민균
권 연구위원은 “환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지불하는 방식의 실손보험을 지렛대 삼아 가격을 높여 받는 게 문제”라며 “도덕적 해이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팽창은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비급여 병원 진료를 받더라도 의사 진찰료는 무조건 건보에서 빠져나간다.
우 소장도 “실손보험으로 본인부담금까지 커버할 수 있게 한 제도 설계가 잘못”이라며 “지금이라도 비급여는 비급여 시장으로 남도록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연구위원은 “건보 급여만으로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사회적 합의가 되면, 일본처럼 비급여와 급여를 분리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금융감독원의 실손보험 관련 담당자의 전문성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일부 민간 보험사들의 출혈 경쟁이 의료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며 “잘못된 보험 상품을 계산해서 잡아낼 수 있도록 감독기관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점진적으로…우왕좌왕 정책 바로 잡아야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권 연구위원은 “의대 정원 확대는 고령화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며 “문제는 2050년이면 의료서비스 수요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권 연구위원은 “의약분업 당시 의사를 줄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갑자기 의대 정원을 늘렸을 때 나타날 부작용들도 반드시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부차적인 문제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정부가 실기한 필수의료 대책 중에는 대학병원의 전공의 정원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비수도권 정원을 대폭 늘린 것이 꼽힌다. 당장 내년부터 수도권 전공의는 줄어들고, 지역의 전공의가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대병원도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같은 기피 진료과의 전공의를 못 채우는 상황에서 정원만 늘린다고 의대생들이 지방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지방대는 교수가 없어 힘들고, 수도권에서 인턴을 하던 의대생들은 전공의 자리를 찾지 못해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필수의료 대책을 올해 들어 6번이나 냈지만, 정작 이들 기피과 의사 부족 문제의 시급성은 체감하고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