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꽃을 피우세요 수험생 감동시킨 '수능 필적' 시인의 편지

[단독] 꽃을 피우세요 수험생 감동시킨 '수능 필적' 시인의 편지

"수험생, 학부모님께", 양광모 시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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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한라산 백록담에 올가을 첫눈이 내려 있다. 사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네 번의 입시, 세 번의 사업 실패, 두 번의 낙선-.

2024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로 인용된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의 시인 양광모(60) 씨가 돌아본 그의 삶이다. 시 ‘가장 넓은 길’이 많은 이들을 울렸다는 말에 그 또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양광모 시인이 중앙일보에 ‘수험생,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보내왔다. “괜찮아도 됩니다. 미래를 사랑하세요. 피우고 싶은 꽃을 피우세요”라고 했다. 올해 수능에는 50만4588명이 원서를 냈고, 이 중 44만8228명이 응시(1교시 기준)했다. 다음은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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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후 대구 수성구 혜화여자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수험생 엄마가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딸을 꼭 안아주고 있다. 뉴스1


수험생, 학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양광모 시인입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깊은 위로와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저는 이번 수능시험에 졸시 '가장 넓은 길'의 일부가 필적 확인 문구로 인용되는 기쁨과 영광을 얻었습니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이 시구를 읽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글을 읽으며 저 또한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보잘것없는 문장에 눈물을 흘릴 만큼 여전히 세상은 너무나 힘겹고, 춥고, 서럽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인생을 살아오며 느낀 몇 가지 경험을 전하고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짧은 생각이니 너그러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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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지. 연합뉴스
저는 대학입학시험에 4수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받아 적성과는 무관하게 입학한 토목공학과를 1학기 만에 중퇴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5년에 걸쳐 세 번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마지막 시험은 군 복무 중이라 1주일 전까지 휴가증을 받지 못해 가슴을 졸이기도 하였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짧은 직장 생활 끝에 IMF, 벤처 폭락, 경영 능력 미숙 등의 이유로 3번의 사업을 실패하였습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으로 출마한 지방자치 선거에서 2번을 낙선하였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저는 아래와 같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괜찮아도 됩니다.
실패는 고통스럽습니다. 뼈아픈 후회와 눈물을 안겨줍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두 번의 실패가 평생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은 60~80년의 인생에 있어 오늘의 실패는 그저 몇 푼 남짓한 수업료에 불과할 뿐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일들이 사실은 그다지 별일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의 작은 실수를 내일의 큰 실패로 만들지 마세요. 지금 괜찮지는 않겠지만, 괜찮아도 됩니다.

둘째, 미래를 사랑하세요.
미래는 공중에 던져진 주사위와 같습니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 또한 50살이 되던 해에 문득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20대 초반 이후 시인이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설사 자신이 원하지 않는 숫자가 나와도 괜찮습니다. 10여 차례에 가까운 좌절을 겪었지만 시절의 고통과 슬픔이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를 쓸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잊지 마세요. 오늘 겪는 아픔이 내일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를 사랑하세요.

셋째, 내가 피우고 싶은 꽃을 피우세요.
인생은 나만의 색, 나만의 향기를 지닌 꽃을 피우는 일입니다. 장미꽃을 피우고 싶다면 누군가 국화를 피우라고 말해도 절대로 귀 기울이지 마세요. 재능과 소질이라는 단어를 믿지 마세요. 저는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는 문학적 재능도 없고, 시적 감수성도 모두 고갈되었구나."라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무 권의 시집, 1,500편이 넘는 시를 쓴 시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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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장 넓은 길'을 쓴 양광모 시인. 본인 제공

수험생, 학부모 여러분!

인생과 미래는 놀랍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재능, 소질, 불가능, 한계, 현실…. 이런 단어는 모두 잊어버려야만 합니다.

만약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인생이 놀랍고 신비롭지 않다면 그때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깜짝 놀라게 만드세요!
여러분의 미래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세요!
따뜻한 사랑을 담아,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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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남 거창군 북상면 남덕유산 능선에 밤사이 내린 첫눈이 쌓여 있다. 사진 거창군



가장 넓은 길

양광모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이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눈물 흘려도 돼-양광모 치유시집』, 푸른길, 2023

27 Comments
자유인290 2023.11.23 23:45  
수능 사회의.무한경쟁 속에 우린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네요 눈물 나게 감사한 시와 글입니다
자유인260 2023.11.23 23:45  
이제 갓 서른의 대학 중퇴한 동생이 월수익 5,000만원이다. 대학만이 길은 아니다.
자유인300 2023.11.23 23:45  
멋진걸
자유인196 2023.11.23 23:45  
감동적입니다. 실제 수험생 분들은 더욱더 감동일 것 같아요. 모든 수험생 분들 시험보느라 정말 수고 많았고 이제까지 고생한만큼 친구들과 가족들과 재밌는 시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글도 너무 멋있습니당
자유인136 2023.11.23 23:45  
뜨거운 눈물과  알싸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세상모든일이 자기가 처한 상황이 아니면 공감하기 어렵죠~ 말한마디, 문장 한구절이 이리 중요한데... 용기를 얻고 갑니다. 따뜻한 말로 위로해야겠어요
자유인42 2023.11.23 23:45  
인생은 어찌될지모르는것~~긍정의힘으로 자기자신을믿고 달리세요
자유인225 2023.11.23 23:45  
맨날 연애인 집 어디 샀더라 올리는 기자들은 보고 반성좀 해라
자유인97 2023.11.23 23:45  
우리 수험생도 필적확인 문구를 작성하면서 힘과 위로를 받아갔기를 바래봅니다.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자유인224 2023.11.23 23:45  
우왕 최근 들어 읽은  시중 넘버 1..
오....잘은 몰라도 공감 문구 10000%
자유인26 2023.11.23 23:45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었다" 이거도 꽤 유명한 문구...ㅋㅋㅋ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지
자유인13 2023.11.23 23:45  
시가 넘 감동적이네요
자유인285 2023.11.23 23:45  
힘든 시기를 겪고있는 저에게 올해 최고의 기사였습니다 마음의 위로를 주는 시를 알게 해주시고 큰 위로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인82 2023.11.23 23:45  
역대급 불수능 물타기 하느라 중앙일보 애쓴다
자유인222 2023.11.23 23:45  
어떻게 글이 꽃보다 사람마음을 녹일까요^^  감사합니다
자유인258 2023.11.23 23:45  
저나이때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세상 살면서 문득 저 시가 떠오른다면, 성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유인117 2023.11.23 23:45  
울집안 손자는 최고S대 나와 유학까지 갔다 와서도 지금  백수이고 이웃집 아들친구는 K대 나와 사회적응 못하고 백수 입니다.  진로설정 자기 적성 분석 못하고 남따라가다보면 시행착오와 고생만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자유인248 2023.11.23 23:45  
권기자님 양광모님의 좋은 시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하네요.  정치꾼들  얘기 말고 이런 기사들이 사회와 미래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자유인151 2023.11.23 23:45  
고3 여러분들, 수능점수 때문에 자살한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생각 절대로 하지 말길 바랍니다.
자유인53 2023.11.23 23:45  
이번 수능으로 인해 마음먹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절대절대 자살하지마세요.!!!!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수능으로 인해 자살하는 자가 한 명도 없기를~~!!!!! 존재자체로 너무 아름답고 귀한 삶입니다. 점수가 인생의 다가 아니랍니다. 힘겨워도 제발 견뎌주세요. 이겨내주세요. 반드시 좋은날이 온답니다.
자유인232 2023.11.23 23:45  
진심어린 위로 힘이 됍니다. 감사합니다~????????????
자유인227 2023.11.23 23:45  
감사합니다 울컥하네요 다시 읽어도
자유인296 2023.11.23 23:45  
힘이 되는 글이네요... 살다보면 내가 처한 현실이 어둡게만 느껴져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하는데 그 순간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인 것 같습니다. 우리 수험생도 필적확인 문구를 작성하면서 힘과 위로를 받아갔기를 바래봅니다.
자유인30 2023.11.23 23:45  
읽기쉽고 많이남는 좋은시네요 힘이 됩니다
자유인203 2023.11.23 23:45  
미래를 꽃피우려는 것이 자기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것이라면 성공할지도 못할지도 모르는 것을 위해  고생하는것이되는것이다. 현실에서 하고싶은 것을 하다보면 자기의 미래가 개척되기도 합니다. 서울대법학과를 가려다 3번의 입시를 하고 결국 서울대가 아닌 법학과를 갔지만 사시한다고 여러해를 고생하고 결국은 실패하고  월급생활하다가 그월급생활에서얻은 경험과 인맥으로 지금은 중소기업사장을 하게된겁니다. 결국은 미래 꽃을 피우려고 고생하는것보다는 현재의 나의 능력에맞게 자기 삶을 개척하는것이 더 중요합디다. 평생의 행복지수의 톱은현재입니다.
자유인255 2023.11.23 23:45  
참 좋은 문장이네요. 저까지 울컥하네요
자유인41 2023.11.23 23:45  
나도 작가이지만 양광모시인의 열열한 팬이 되었습니다
자유인120 2023.11.23 23:45  
수능특수 제대로 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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