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선배입니다” 외롭지 않은 노동환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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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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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13:28
[페미워커가 만난 사람] 방송작가유니온 유지향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지향 사무처장. (사진 : 방송작가유니온)
이력서는 취직을 위해 고용주에게 보여주는 노동자의 구직 자기소개서이다. 이와 의미가 좀 다른 이력서로서, 청년 페미(feminist)+워커(worker)들이 같은 노동자의 위치에서 서로 “지금까지 해온 노동 이력”을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기록자와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여성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이다. [편집자 주]
육아휴직하던 남편도 “도저히 못 살겠다” 선언한 돌봄 노동과
방송 마감 노동을 병행하던 그때
“애 키우면서 다닐 때는 새벽 5, 6시에 일어나서 아기 이유식을 해놓고, 아기 빨래 이런 거 한 번 돌려놓고. 그리고 나가서 일하다가 퇴근을 6시에 못하고 좀 늦게 돌아와서, 살림을 몇 가지 해놓고 아기 재우고 나면 카톡에 엄청 뭐가 쌓여 있어요. 그 사이에 그거 해결하고 1시, 2시에 또 자거든요.”
방송작가로서 원고 마감을 주기로 일상이 돌아가는 ‘마감 노동’과 육아라는 ‘돌봄 노동’. 이 둘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수면 부족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지금은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방송작가유니온 유지향 사무처장은 ‘마감 노동과 육아를 병행했을 때의 일과’에 대해 “수면 박탈”이라고 정리했다.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하루 3~4시간을 잤다.
남편은 육아 휴직해 아기 돌봄을 하고 있었으나 살림은 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도저히 나는 이렇게 못 살겠다” 선언했고, 유지향은 하는 수 없이 회사를 관두었다.
“아기 재워놓고 나름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책 읽고 막 그랬지만, 그때 건강이 좀 안 좋아져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분명히 단유했는데 모유가 계속 나왔어요. 병원에 갔더니 뇌하수체에 이상이 있으니 한두 달 추적관찰을 하자고 해요. 추적관찰을 하는 동안은 어떤 약이든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우울증 약을 먹지 않으면 좀 힘든 상황이었어요. 불안하고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요. 그다음에 목이 엄청 뻣뻣해지고…. 일상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그것도 끊으라고 하니까, 제가 찾은 방법이 ‘아기랑 똑같이 자자’였어요. 여태 잠이 모자란 생활을 계속해왔잖아요? 근데 아기랑 똑같이 한 12시간씩 자니까 모유도 안 나오고,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도 목이 뻣뻣한 증상이 사라지더라고요. 먹는 거랑 잠자는 호르몬이랑 다 연결이 돼 있대요. 자궁하고 뇌도 연결되어 있고, 뇌는 또 모유와 관련이 있고. 잠이 식욕조절 호르몬과도 연결이 돼 있다네요. 살이 조금 빠지더라고요. 한 2-3kg.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잠을 자니까 몸이 좀 살아나는 것 같고, 그러던 와중에 여기서(방송작가유니온) 일해보자고 제안이 왔어요.”
노조에 와서 하루 일과는 좀 달라졌을까.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막 그래요. 시간이 그때밖에 허용되지 않으니까, 좀 놀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 오후에는 4시면 아기 찾아서 집에 가서 저녁 해 먹고 10시에 취침해요.”
만약 다시 ‘마감 노동’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는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방송작가 시절에도 일을 골라가며 했다. 주말 출근이 필수거나 주 6~7일 해야 하는 일은 되도록 피했다. 한 방송제작사에 들어가 직원으로 일할 때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작가도 충분히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런데도 그것이 힘들었다. 자신을 최대한 몰아붙이지 않았음에도 작가 일은 힘들었다. 다시 돌아가도 ‘예전 상황과 달라질 것도, 노동 환경이 나아질 것도 없어 또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돌봄 노동’에 대해서는 다시 깨닫는 바가 있다.
“육아를 할 때는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 미래는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지금 너무 도태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들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사람이 한 3~4년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뭐 별일이 있겠나?’ 그냥 아기랑 그 시간을 많이 누리고. 그러니까 아기를 빨리 재워놓고 ‘나는 책을 읽어야 돼’, ‘영화를 봐야 돼’ 그리고 ‘살림도 깨끗하게 해야지’ 하면서, 전부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니까 우울이 왔겠죠. 근데, 그냥 마음 편하게 ‘직장에 못 나가네? 잘 됐다. 그럼 아기를 잘 봐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때 감사일기 같은 걸 썼는데, 사실 그게 다 가식이었던 거죠.”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며 나름 노력하고 있었으니 무엇을 더 요구하기 어려웠다. 다른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버거운 일상의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소화하면서, 자아를 지키고 싶어 분투했음에도 말이다.
“내가 막 강박을 갖고 살림을 잘하려 하고 그러다가, 또 얘를 빨리 재워놓고 뭘 보고 글 쓰고 하려니까, 얘가 안 자면 막 조급해지고. 이런 내가 문제지, 애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좀 편하게 마음먹을걸. 그러면 어쩌면 복귀도 좀 편안하게 하고 복귀 이후에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보다 쉽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난 건데, 굳이 5, 6시에 일어나서 아기 밥 안 해도 되잖아요. (웃음) 사실 사다 먹이기도 했는데, 이유식을 사다 먹이는 게 너무 죄책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3분의 1은 사고, 3분의 1은 내가 좀 하고, 3분의 1은 좀 이렇게 어른 음식 나눠 먹이고. 두부 같은 거로. 그러니까 그냥 다 사다 먹여도 됐는데, 요새 참 잘 나오는데 왜 그랬을까….”
방송제작계의 ‘돌봄 노동자’ 혹은 ‘K-장녀’ 방송작가
방송 비정규직에게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사진: 심지안)
자신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지향은 ‘포기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참고 감내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만의 믿음, 신념, 꿈을 놓지 말았으면 한다. 뜻이 있으면 최대한 자기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켜가면서 했으면 한다고. 그는 결혼한 이상,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서 밤에 해야 하는 일을 맡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다. 과연,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노동환경은 어떤 걸까.
“여성한테 이상적인 환경은 남자들이랑 똑같이 돈을 받는 것이고, 그 외에는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 않게 육아휴직 같은 게 잘 보장이 돼야 하고. 그리고 돌봄 노동이라고 분류되는 ‘챙기는 일’ 있잖아요. 누구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하는. 똑같진 않지만, 회사에서도 컵을 씻는다거나 아니면 의존이 필요하다거나 자잘한 서류 정리는 여성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다 ‘돌봄 노동’이라고 봐요. 작가들이 그런 걸 다 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주차권 정산, 출연자 의전, 뭐 이런 것들, 그다음에 SNS, 홈페이지 관리. 이게 사실 사람을 써서 맡기면 되는 일인데, 제작비도 없고 하다 보니까 이게 다 작가들한테 오는 거예요. 저는 이게 작가들이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거라 생각해요. 사실 약간 자질구레한 그런 업무들이잖아요. 저는 이것이 방송국의 ‘돌봄 노동’이라고 얘기해요.”
이를테면, 방송작가는 방송국의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원고를 쓰고 있는 방송작가에게 “예고 자막을 더 써 줘.” 아니면 “출연자 누구 오시니까 그분 오시면 이렇게 의전으로 안내 좀 해드려.” 이런 일들이 추가수당 없이 그냥 오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일한 만큼 받아야죠. 저희가 프리랜서다 보니까 출산휴가, 연차 휴가 뭐 이런 것도 없고 수당 없고 퇴직금도 없고 육아휴직도 없어요.”
“그다음에 일단은 근무 시간이 적절해야 한다. 충분한 원고료만큼 중요한 게 적절한 노동 시간이죠. 저희 작가들 엄청 일 많이 하거든요. 진짜. 그래서 잠잘 시간, 아기 낳고 키울 시간, 그런 게 보장되어야죠. 기본적인 것만 보장되면 뭐 여자건 남자건 아기 낳고 싶은 사람 낳고, 낳기 싫으면 그 시간에 딴 걸 하던가 뭐 그렇게 살 수 있잖아요.”
그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경험하지 않았다.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처음에는 ‘투쟁하라’는 말도 ‘노동위원회에 출석하라’라는 말도 모두 무서웠다. 작가 출신이 아닌 상근자와 그, 단둘이 실무를 맡는 구조였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상근자마저 퇴사했다. 잘 모르는 세계에 왔는데 같은 처지의 동지도 없고 동료도 없는 셈이다. 그는 어떻게 이 일을 해나가고 있는 걸까?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우리 간부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계속 카톡과 텔레그램으로 소통해요. 이번에 KBS에 우리도 교섭에 참여하겠다고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해야 하는데, 현재 KBS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 이름을 적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특정이 되잖아요. 직원이라면 잘릴 위험이 전혀 없지만 우리는 프리랜서니까 작가들이 이름 올리기를 꺼려서 엄청 고생했어요. 그런데 몇몇 작가님들이 “내 이름 써라” 하시는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지역 작가님들의 경우는. 만약에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잘렸어. 그럼 갈 데가 있나? 없어요. 서울은 방송국이 많지만, 그곳에는 다른 방송국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잘리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자기가 살아온 터전을 벗어나야지만 일자리가 있잖아요, 지역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들이 내 이름 쓰라고 해서 감동을 많이 받았죠. 근데, 제가 그래서 “작가님 고마워요. 감동이에요.” 막 이러면 “사무처장님, 저 지금 녹화 들어가서 바빠서 끊을게요.” 하면 이제 (감동이) 와장창. (웃음)”
보람과 감동을 공유할 새도 없이 바쁜 현장이다. 방송작가유니온의 간부들은 현업과 노조 일을 무급으로 병행하고 있다. 일의 결과를 떠나 과정을 함께하고 분담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등,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최소한의 규모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이 구조와 상황에서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희가 일이 많으면 사람을 더 써야 하는데, 어디서 돈이 좀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조합비가 잘 조성이 됐으면 하는데, 사실 조합비는 잘 내주세요. 조합원님들한테 되게 고맙죠. 저희가 너무 사정이 안 좋아서 작년에 조합비를 자발적으로 인상하자는 운동도 했어요. 근데 많이 참여해 주셨어요. 되게 감동적인 일이거든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프리랜서들이 조합비 올려주는 거는.”
작가들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 그는 방송작가에 대해 ‘장녀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앞서 다룬 방송국 내 살림, ‘돌봄 노동’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방송작가는 ‘장녀’ 같다, 뭐 이런 얘기죠. 이 방송국 가문을 이끌어 희생하는 ‘장녀’. 돈도 조금 받고, 추가적인 급여 없이도 이런저런 일 다 맡아서 하고…. ‘방송 제작의 돌봄 노동자’라고 말하는데, 저의 이 논리가 장녀 프레임하고 연결이 되거든요.”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성역할을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역할로서 소비된다. 이 역할에서 벗어나려 할 때, 구조는 여성에게 차가운 시선을 꽂는다. 이런 억압이 반복 학습되면서 여성들은 가족 내 서열을 떠나 사회에서 ‘장녀 역할’을 내면화한다.
외로움이라는 감각
지금 일하는 노조 현장에서도 유지향은 ‘장녀 프레임’을 느끼고 있을까.
“그런 느낌은 잘 안 들어요. 돈도 조금 받고 일도 많이 하지만.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만 외롭다는 생각은 들어요. 예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원고료며 뭐며 생각하지도 못하고, 피디랑 싸워서 ‘뭘 어떻게 해야겠다’ 할 기운도 없었어요. 잠도 잘 못 잤기 때문에, ‘그냥 이 작업 빨리해버리고 잠이나 자자’ 그랬는데 지금은 잠은 자잖아요. 그래서 ‘너무 행복에 겨워서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나?’ 싶어요. 그래도 평균 수면이 6, 7시간은 매일 보장이 되잖아요? 오히려 작가들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쓰여요. 기본적으로 내가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방송작가유니온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유지향 사무처장. (사진 : 심지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막막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저희 지부장도 그렇고 주요 간부들이 전국에 다 흩어져 있으니까 같이 커피 한 잔도 쉽게 마실 수가 없고…. 그냥 사이버 인간, 챗봇처럼 카톡, 텔레그램으로 소통하는 그런 외로움이 느껴지죠. 또 전국에서 걸려오는 노동 상담이나 조합원들의 민원을 홀로 받아내야 해요. 게다가 우리가 하는 투쟁은 거의 모두 처음이에요. 방송작가 단체교섭 자체가 사상 최초인데, 그마저도 난항 중입니다. 시작도 못 했어요. 사측도, 노동위원회도, 사내정규직도, 우리 프리랜서도 이런 교섭은 처음이거든요. 그리고 노동착취 방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어요. 이런 모든 막막함들이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외로움을 호소하던 그에게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 보니까 ‘연대단체들이 다 응원을 해주고 계시는데 함부로 외롭다고 말하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같이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사실 많은데, 내가 너무 함부로 외롭다고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또 외로운 걸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근데, 작년보다는 훨씬 막막함이 줄어들고 있는 게, 단체교섭 얘기하면서 작가님들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요. 작년에는 ‘어떤 투쟁을 어떻게 하자’ 정하면, 투쟁 당사자랑 법률 관계자랑 나랑 지부장이랑 간부들이랑 이렇게만 관계가 이루어졌다면, 이번에 단체교섭하면서는 조합원들이랑 얘기할 기회가 아무래도 많아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외로움이 조금 덜해진 거죠.”
그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인 조합원들에게 동기화한다. 작가들의 사정을 한 번 들으면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듣는다. 그 당시, 자신을 사랑해주는 같은 직군의 선배가 필요했던 그. 그렇다면 이 활동은 미래가 된 지금의 그가, 미처 사랑받지 못한 과거의 자신에게 ‘선배’가 되어주는 작업은 아닐까.
“그런 선배가 진짜 필요했는데, 작가들이 각개 전투로 독립군처럼 사니까, ‘선후배’ 뭐 이런 것도 없고 ‘동지의 연대’ 이런 거 느낄 새도 없었고, 선배와 후배라고 하면 그냥 바로 “피디가 시키니까 너 빨리 이거 해”하고 선배가 후배를 닦달해요. 그러니까 그런 노동환경에서는 후배가 선배를 미워할 수밖에 없고, 선배는 후배한테 갑질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게 하는 구조. 선배가 후배를, 후배가 선배를. 그리고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밖에 대할 수 없는 구조에 오래 놓이면, ‘외롭다’라는 것을 자각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는 것일까? 노조 활동이 잘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임에도, 그는 자신이 “배불렀다”, “복 받았다.” 말한다.
“지금 현업 작가로 뛰고 있는 분들의 얘기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금 참고하시면 제가 왜 (스스로) ‘배불렀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지가 설명될 거 같아요. 기사로도 많이 나와 있어요. 저희 지부장도 그렇고, 밤새 원고 쓰고 새벽 기차 타고 와서 일정 소화하고, 다시 내려가서 아기 보고. 방송작가가 그렇게 살거든요. 어떤 작가는 애 낳고 3, 4주 만에 다시 복귀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여성 작가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외로움을 느끼는 일조차 복이 되고 배부른 일이 되는 방송노동계의 현실. 그러나 이전보다 자기 감각에 충실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그의 현재 노동환경이 이상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이 외로움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공감하고, 이들과 함께 싸워나가고자 한다. 그렇게 연결되는 순간, 순간이 유지향에게는 연대가 되고 외로움을 덜어내는 일이 된다.
과거의 자신에게 선배가 되어주는 일
그는 노조에서의 활동에 불만이 없다. 살아오면서 이루지 못한 것들도 있지만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도 없다. 물론 불안하긴 하다. 다시 작가를 할 수 있을지. 여기저기 매일 기사에 이름이 나고, 사측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온 사실도 부담이 된다. 작가로서 오래 일을 쉬면서 작가적 역량이 퇴화했을까 걱정도 되지만,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 시절, 항상 방송 전에는 출연자들에게 먼저 감사 인사부터 전했다. 방송은 ‘함께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고 그는 그 사실이 가장 행복했다. 아이가 자신이 해준 밥 먹고 쑥쑥 클 때, 그는 또 한 번 행복하다. 간혹, 그가 해준 말을 지도 삼아서 아이가 자기 세상을 짓고 스스로 살아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여름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수박이 있어서 좋지만, 비가 많이 와서 나빠."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이를 기억했다가 "어린이집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ㅇㅇ가 자꾸 내 장난감 가져가서 싫기도 한데, 친구들이랑 바깥 놀이하는 건 좋아.”라면서 어린이집 가기 싫은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등원하는 게 신기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웃고, 짧게 울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있는 것은 그가 ‘작가’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그는 언제나 ‘작가’다. 자신이 ‘작가’임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글 쓰는 노동을 좋아했기에 잠도 외로움도 잊었던 사람. 이제는 그런 과거의 자신들에게 ‘선배’가 되어 따뜻할 권리, 외로울 권리, 연대할 권리를 쥐어주고 싶은 사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가족이라는 일상을 지키려 노력하고 결국은 정신을 지켜낸 그의 대안은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사랑’이다.
[필자 소개] 심지안: 글 쓰는 목수. 낮에는 나무 썰고 저녁에는 글을 씁니다. 세상 가장 마지막 목소리에까지 닿고 싶습니다.
이력서는 취직을 위해 고용주에게 보여주는 노동자의 구직 자기소개서이다. 이와 의미가 좀 다른 이력서로서, 청년 페미(feminist)+워커(worker)들이 같은 노동자의 위치에서 서로 “지금까지 해온 노동 이력”을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기록자와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여성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이다. [편집자 주]
육아휴직하던 남편도 “도저히 못 살겠다” 선언한 돌봄 노동과
방송 마감 노동을 병행하던 그때
“애 키우면서 다닐 때는 새벽 5, 6시에 일어나서 아기 이유식을 해놓고, 아기 빨래 이런 거 한 번 돌려놓고. 그리고 나가서 일하다가 퇴근을 6시에 못하고 좀 늦게 돌아와서, 살림을 몇 가지 해놓고 아기 재우고 나면 카톡에 엄청 뭐가 쌓여 있어요. 그 사이에 그거 해결하고 1시, 2시에 또 자거든요.”
방송작가로서 원고 마감을 주기로 일상이 돌아가는 ‘마감 노동’과 육아라는 ‘돌봄 노동’. 이 둘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수면 부족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지금은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방송작가유니온 유지향 사무처장은 ‘마감 노동과 육아를 병행했을 때의 일과’에 대해 “수면 박탈”이라고 정리했다.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하루 3~4시간을 잤다.
남편은 육아 휴직해 아기 돌봄을 하고 있었으나 살림은 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도저히 나는 이렇게 못 살겠다” 선언했고, 유지향은 하는 수 없이 회사를 관두었다.
“아기 재워놓고 나름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책 읽고 막 그랬지만, 그때 건강이 좀 안 좋아져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분명히 단유했는데 모유가 계속 나왔어요. 병원에 갔더니 뇌하수체에 이상이 있으니 한두 달 추적관찰을 하자고 해요. 추적관찰을 하는 동안은 어떤 약이든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우울증 약을 먹지 않으면 좀 힘든 상황이었어요. 불안하고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요. 그다음에 목이 엄청 뻣뻣해지고…. 일상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그것도 끊으라고 하니까, 제가 찾은 방법이 ‘아기랑 똑같이 자자’였어요. 여태 잠이 모자란 생활을 계속해왔잖아요? 근데 아기랑 똑같이 한 12시간씩 자니까 모유도 안 나오고,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도 목이 뻣뻣한 증상이 사라지더라고요. 먹는 거랑 잠자는 호르몬이랑 다 연결이 돼 있대요. 자궁하고 뇌도 연결되어 있고, 뇌는 또 모유와 관련이 있고. 잠이 식욕조절 호르몬과도 연결이 돼 있다네요. 살이 조금 빠지더라고요. 한 2-3kg.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잠을 자니까 몸이 좀 살아나는 것 같고, 그러던 와중에 여기서(방송작가유니온) 일해보자고 제안이 왔어요.”
노조에 와서 하루 일과는 좀 달라졌을까.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막 그래요. 시간이 그때밖에 허용되지 않으니까, 좀 놀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 오후에는 4시면 아기 찾아서 집에 가서 저녁 해 먹고 10시에 취침해요.”
만약 다시 ‘마감 노동’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는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방송작가 시절에도 일을 골라가며 했다. 주말 출근이 필수거나 주 6~7일 해야 하는 일은 되도록 피했다. 한 방송제작사에 들어가 직원으로 일할 때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작가도 충분히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런데도 그것이 힘들었다. 자신을 최대한 몰아붙이지 않았음에도 작가 일은 힘들었다. 다시 돌아가도 ‘예전 상황과 달라질 것도, 노동 환경이 나아질 것도 없어 또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돌봄 노동’에 대해서는 다시 깨닫는 바가 있다.
“육아를 할 때는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 미래는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지금 너무 도태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들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사람이 한 3~4년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뭐 별일이 있겠나?’ 그냥 아기랑 그 시간을 많이 누리고. 그러니까 아기를 빨리 재워놓고 ‘나는 책을 읽어야 돼’, ‘영화를 봐야 돼’ 그리고 ‘살림도 깨끗하게 해야지’ 하면서, 전부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니까 우울이 왔겠죠. 근데, 그냥 마음 편하게 ‘직장에 못 나가네? 잘 됐다. 그럼 아기를 잘 봐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때 감사일기 같은 걸 썼는데, 사실 그게 다 가식이었던 거죠.”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며 나름 노력하고 있었으니 무엇을 더 요구하기 어려웠다. 다른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버거운 일상의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소화하면서, 자아를 지키고 싶어 분투했음에도 말이다.
“내가 막 강박을 갖고 살림을 잘하려 하고 그러다가, 또 얘를 빨리 재워놓고 뭘 보고 글 쓰고 하려니까, 얘가 안 자면 막 조급해지고. 이런 내가 문제지, 애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좀 편하게 마음먹을걸. 그러면 어쩌면 복귀도 좀 편안하게 하고 복귀 이후에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보다 쉽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난 건데, 굳이 5, 6시에 일어나서 아기 밥 안 해도 되잖아요. (웃음) 사실 사다 먹이기도 했는데, 이유식을 사다 먹이는 게 너무 죄책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3분의 1은 사고, 3분의 1은 내가 좀 하고, 3분의 1은 좀 이렇게 어른 음식 나눠 먹이고. 두부 같은 거로. 그러니까 그냥 다 사다 먹여도 됐는데, 요새 참 잘 나오는데 왜 그랬을까….”
방송제작계의 ‘돌봄 노동자’ 혹은 ‘K-장녀’ 방송작가
방송 비정규직에게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사진: 심지안)
자신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지향은 ‘포기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참고 감내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만의 믿음, 신념, 꿈을 놓지 말았으면 한다. 뜻이 있으면 최대한 자기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켜가면서 했으면 한다고. 그는 결혼한 이상,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서 밤에 해야 하는 일을 맡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다. 과연,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노동환경은 어떤 걸까.
“여성한테 이상적인 환경은 남자들이랑 똑같이 돈을 받는 것이고, 그 외에는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 않게 육아휴직 같은 게 잘 보장이 돼야 하고. 그리고 돌봄 노동이라고 분류되는 ‘챙기는 일’ 있잖아요. 누구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하는. 똑같진 않지만, 회사에서도 컵을 씻는다거나 아니면 의존이 필요하다거나 자잘한 서류 정리는 여성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다 ‘돌봄 노동’이라고 봐요. 작가들이 그런 걸 다 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주차권 정산, 출연자 의전, 뭐 이런 것들, 그다음에 SNS, 홈페이지 관리. 이게 사실 사람을 써서 맡기면 되는 일인데, 제작비도 없고 하다 보니까 이게 다 작가들한테 오는 거예요. 저는 이게 작가들이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거라 생각해요. 사실 약간 자질구레한 그런 업무들이잖아요. 저는 이것이 방송국의 ‘돌봄 노동’이라고 얘기해요.”
이를테면, 방송작가는 방송국의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원고를 쓰고 있는 방송작가에게 “예고 자막을 더 써 줘.” 아니면 “출연자 누구 오시니까 그분 오시면 이렇게 의전으로 안내 좀 해드려.” 이런 일들이 추가수당 없이 그냥 오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일한 만큼 받아야죠. 저희가 프리랜서다 보니까 출산휴가, 연차 휴가 뭐 이런 것도 없고 수당 없고 퇴직금도 없고 육아휴직도 없어요.”
“그다음에 일단은 근무 시간이 적절해야 한다. 충분한 원고료만큼 중요한 게 적절한 노동 시간이죠. 저희 작가들 엄청 일 많이 하거든요. 진짜. 그래서 잠잘 시간, 아기 낳고 키울 시간, 그런 게 보장되어야죠. 기본적인 것만 보장되면 뭐 여자건 남자건 아기 낳고 싶은 사람 낳고, 낳기 싫으면 그 시간에 딴 걸 하던가 뭐 그렇게 살 수 있잖아요.”
그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경험하지 않았다.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처음에는 ‘투쟁하라’는 말도 ‘노동위원회에 출석하라’라는 말도 모두 무서웠다. 작가 출신이 아닌 상근자와 그, 단둘이 실무를 맡는 구조였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상근자마저 퇴사했다. 잘 모르는 세계에 왔는데 같은 처지의 동지도 없고 동료도 없는 셈이다. 그는 어떻게 이 일을 해나가고 있는 걸까?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우리 간부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계속 카톡과 텔레그램으로 소통해요. 이번에 KBS에 우리도 교섭에 참여하겠다고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해야 하는데, 현재 KBS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 이름을 적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특정이 되잖아요. 직원이라면 잘릴 위험이 전혀 없지만 우리는 프리랜서니까 작가들이 이름 올리기를 꺼려서 엄청 고생했어요. 그런데 몇몇 작가님들이 “내 이름 써라” 하시는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지역 작가님들의 경우는. 만약에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잘렸어. 그럼 갈 데가 있나? 없어요. 서울은 방송국이 많지만, 그곳에는 다른 방송국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잘리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자기가 살아온 터전을 벗어나야지만 일자리가 있잖아요, 지역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들이 내 이름 쓰라고 해서 감동을 많이 받았죠. 근데, 제가 그래서 “작가님 고마워요. 감동이에요.” 막 이러면 “사무처장님, 저 지금 녹화 들어가서 바빠서 끊을게요.” 하면 이제 (감동이) 와장창. (웃음)”
보람과 감동을 공유할 새도 없이 바쁜 현장이다. 방송작가유니온의 간부들은 현업과 노조 일을 무급으로 병행하고 있다. 일의 결과를 떠나 과정을 함께하고 분담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등,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최소한의 규모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이 구조와 상황에서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희가 일이 많으면 사람을 더 써야 하는데, 어디서 돈이 좀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조합비가 잘 조성이 됐으면 하는데, 사실 조합비는 잘 내주세요. 조합원님들한테 되게 고맙죠. 저희가 너무 사정이 안 좋아서 작년에 조합비를 자발적으로 인상하자는 운동도 했어요. 근데 많이 참여해 주셨어요. 되게 감동적인 일이거든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프리랜서들이 조합비 올려주는 거는.”
작가들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 그는 방송작가에 대해 ‘장녀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앞서 다룬 방송국 내 살림, ‘돌봄 노동’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방송작가는 ‘장녀’ 같다, 뭐 이런 얘기죠. 이 방송국 가문을 이끌어 희생하는 ‘장녀’. 돈도 조금 받고, 추가적인 급여 없이도 이런저런 일 다 맡아서 하고…. ‘방송 제작의 돌봄 노동자’라고 말하는데, 저의 이 논리가 장녀 프레임하고 연결이 되거든요.”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성역할을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역할로서 소비된다. 이 역할에서 벗어나려 할 때, 구조는 여성에게 차가운 시선을 꽂는다. 이런 억압이 반복 학습되면서 여성들은 가족 내 서열을 떠나 사회에서 ‘장녀 역할’을 내면화한다.
외로움이라는 감각
지금 일하는 노조 현장에서도 유지향은 ‘장녀 프레임’을 느끼고 있을까.
“그런 느낌은 잘 안 들어요. 돈도 조금 받고 일도 많이 하지만.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만 외롭다는 생각은 들어요. 예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원고료며 뭐며 생각하지도 못하고, 피디랑 싸워서 ‘뭘 어떻게 해야겠다’ 할 기운도 없었어요. 잠도 잘 못 잤기 때문에, ‘그냥 이 작업 빨리해버리고 잠이나 자자’ 그랬는데 지금은 잠은 자잖아요. 그래서 ‘너무 행복에 겨워서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나?’ 싶어요. 그래도 평균 수면이 6, 7시간은 매일 보장이 되잖아요? 오히려 작가들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쓰여요. 기본적으로 내가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방송작가유니온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유지향 사무처장. (사진 : 심지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막막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저희 지부장도 그렇고 주요 간부들이 전국에 다 흩어져 있으니까 같이 커피 한 잔도 쉽게 마실 수가 없고…. 그냥 사이버 인간, 챗봇처럼 카톡, 텔레그램으로 소통하는 그런 외로움이 느껴지죠. 또 전국에서 걸려오는 노동 상담이나 조합원들의 민원을 홀로 받아내야 해요. 게다가 우리가 하는 투쟁은 거의 모두 처음이에요. 방송작가 단체교섭 자체가 사상 최초인데, 그마저도 난항 중입니다. 시작도 못 했어요. 사측도, 노동위원회도, 사내정규직도, 우리 프리랜서도 이런 교섭은 처음이거든요. 그리고 노동착취 방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어요. 이런 모든 막막함들이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외로움을 호소하던 그에게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 보니까 ‘연대단체들이 다 응원을 해주고 계시는데 함부로 외롭다고 말하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같이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사실 많은데, 내가 너무 함부로 외롭다고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또 외로운 걸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근데, 작년보다는 훨씬 막막함이 줄어들고 있는 게, 단체교섭 얘기하면서 작가님들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요. 작년에는 ‘어떤 투쟁을 어떻게 하자’ 정하면, 투쟁 당사자랑 법률 관계자랑 나랑 지부장이랑 간부들이랑 이렇게만 관계가 이루어졌다면, 이번에 단체교섭하면서는 조합원들이랑 얘기할 기회가 아무래도 많아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외로움이 조금 덜해진 거죠.”
그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인 조합원들에게 동기화한다. 작가들의 사정을 한 번 들으면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듣는다. 그 당시, 자신을 사랑해주는 같은 직군의 선배가 필요했던 그. 그렇다면 이 활동은 미래가 된 지금의 그가, 미처 사랑받지 못한 과거의 자신에게 ‘선배’가 되어주는 작업은 아닐까.
“그런 선배가 진짜 필요했는데, 작가들이 각개 전투로 독립군처럼 사니까, ‘선후배’ 뭐 이런 것도 없고 ‘동지의 연대’ 이런 거 느낄 새도 없었고, 선배와 후배라고 하면 그냥 바로 “피디가 시키니까 너 빨리 이거 해”하고 선배가 후배를 닦달해요. 그러니까 그런 노동환경에서는 후배가 선배를 미워할 수밖에 없고, 선배는 후배한테 갑질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게 하는 구조. 선배가 후배를, 후배가 선배를. 그리고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밖에 대할 수 없는 구조에 오래 놓이면, ‘외롭다’라는 것을 자각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는 것일까? 노조 활동이 잘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임에도, 그는 자신이 “배불렀다”, “복 받았다.” 말한다.
“지금 현업 작가로 뛰고 있는 분들의 얘기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금 참고하시면 제가 왜 (스스로) ‘배불렀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지가 설명될 거 같아요. 기사로도 많이 나와 있어요. 저희 지부장도 그렇고, 밤새 원고 쓰고 새벽 기차 타고 와서 일정 소화하고, 다시 내려가서 아기 보고. 방송작가가 그렇게 살거든요. 어떤 작가는 애 낳고 3, 4주 만에 다시 복귀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여성 작가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외로움을 느끼는 일조차 복이 되고 배부른 일이 되는 방송노동계의 현실. 그러나 이전보다 자기 감각에 충실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그의 현재 노동환경이 이상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이 외로움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공감하고, 이들과 함께 싸워나가고자 한다. 그렇게 연결되는 순간, 순간이 유지향에게는 연대가 되고 외로움을 덜어내는 일이 된다.
과거의 자신에게 선배가 되어주는 일
그는 노조에서의 활동에 불만이 없다. 살아오면서 이루지 못한 것들도 있지만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도 없다. 물론 불안하긴 하다. 다시 작가를 할 수 있을지. 여기저기 매일 기사에 이름이 나고, 사측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온 사실도 부담이 된다. 작가로서 오래 일을 쉬면서 작가적 역량이 퇴화했을까 걱정도 되지만,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 시절, 항상 방송 전에는 출연자들에게 먼저 감사 인사부터 전했다. 방송은 ‘함께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고 그는 그 사실이 가장 행복했다. 아이가 자신이 해준 밥 먹고 쑥쑥 클 때, 그는 또 한 번 행복하다. 간혹, 그가 해준 말을 지도 삼아서 아이가 자기 세상을 짓고 스스로 살아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여름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수박이 있어서 좋지만, 비가 많이 와서 나빠."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이를 기억했다가 "어린이집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ㅇㅇ가 자꾸 내 장난감 가져가서 싫기도 한데, 친구들이랑 바깥 놀이하는 건 좋아.”라면서 어린이집 가기 싫은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등원하는 게 신기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웃고, 짧게 울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있는 것은 그가 ‘작가’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그는 언제나 ‘작가’다. 자신이 ‘작가’임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글 쓰는 노동을 좋아했기에 잠도 외로움도 잊었던 사람. 이제는 그런 과거의 자신들에게 ‘선배’가 되어 따뜻할 권리, 외로울 권리, 연대할 권리를 쥐어주고 싶은 사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가족이라는 일상을 지키려 노력하고 결국은 정신을 지켜낸 그의 대안은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사랑’이다.
[필자 소개] 심지안: 글 쓰는 목수. 낮에는 나무 썰고 저녁에는 글을 씁니다. 세상 가장 마지막 목소리에까지 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