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신당'은 유리,'조국 신당'은 불리한 병립형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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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07:43
비례대표제가 거대 양당을 시험대에 올렸다. 22대 총선은 내년 4월 10일에 치러진다. 채 5개월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의 룰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선은 비례대표의 분배법으로 향한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문제를 일으켰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바꿔야 한다며 과거처럼 단순명료하게 병립형으로 되돌릴 것을 원한다.
병립형을 격렬히 반대하는 편은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이다. 거대 양당 구도를 벗어나는 걸 넘어 생존의 기로에 선 진보정당들은 준연동형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 중이다.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셈인데 최근 비례대표제 논란이 뜨거운 건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부터다.
민주당 내 의견은 갈린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이니 위성정당 문제도 차단할 겸 과거처럼 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진 병립형 복귀 그룹이 있다. 반대로 개혁 명분을 없애는 역사적 퇴행이라며 준연동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룹이 있다. 여기에 변수로 등장한 건 신당이다. '이준석 신당'과 '조국 신당', 거대 양당 구도에 변수가 될지 모를 신당 움직임이 일면서 비례대표제는 복잡한 방정식이 됐다.
신당의 도전, 거대 양당의 병립형 합의?
선거제 논의는 현재 이 정도 선까지 진행됐다. 일단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한다. 의석수도 여러 안이 나왔지만 지금처럼 300석 그대로 가기로 했다. 핵심은 비례대표와 관련된다. 비례대표 의석수 변화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가능하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지난 21대 총선처럼 준연동형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 이전의 병립형으로 가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과 무관하게 정당투표 득표율대로 47석을 단순한 산법으로 나눈다. 연동형은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지역구에서 정당투표 득표율만큼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비례대표에서 모자란 의석의 절반을 채워준다. 21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47석 중 30석만 연동해 나눴다. 단 50%만 연동해 '준(準)'이 붙었다. 이 비례대표의 연동성은 위성정당이 등장하면서 소멸됐다.
이제 22대 총선부터는 씌워놓은 캡(모자)이 벗겨진다. 비례대표 47석 모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준연동형으로 선거가 치러질 경우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이준석 신당'의 영향이 어느 선까지 미칠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준석 신당'이 현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유의미한 정당득표율을 얻는 제3정당의 출현을, 그것도 보수의 주도권을 놓고 싸울 집단의 등장을 목도해야 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유승민 전 의원·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이 나올 경우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를 물었을 때 민주당 지지는 32.0%, 국민의힘 지지는 31.0%를 기록하며 박빙을 이뤘다. 신당 지지율은 16.0%로 상당한 세를 이루었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자 중 13.7%, 민주당 지지자 중 11.4%가 신당을 지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신당으로 지지층의 이동이 적지 않다는 것은 새로운 합의를 필요로 한다. 가뜩이나 진전되지 않는 선거제도 논의를 두고 '과거로 퇴행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데 신당 변수까지 돌출했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을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하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는 데에 합의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 합의를 이루려면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신당(특히 이준석 신당)에 불리하고,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럴 것 같다는 믿음도 적지 않다. 과연 그럴까. 이준석 전 대표는 선거제 변화에 따른 유불리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나는 병립형 비례제에 관해서 그동안 언급한 게 없다. 앞으로도 언급할 계획이 없다." 이 전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선거제도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장성철 공론센터소장은 연동형으로 가든, 병립형으로 가든 이준석 신당에 유불리가 그다지 없을 거라고 본다. "연동형으로 간다면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안 만들겠나. 그렇게 되면 결국 각 정당이 가져갈 수 있는 정당 득표를 가져가게 되고 비슷한 결과가 벌어질 뿐이다. 준연동형이든 병립형이든 이준석 신당의 의석수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만약에 위성정당을 거대 양당이 안 만든다면 이준석 신당이 40석도 먹을 수 있을 건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보겠나. 이 때문에 유불리를 따지기 어려운 것 같다."
과거 국민의당에 몸담았던 국민의힘 관계자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가더라도 이준석 신당이 꽤 힘을 낼 거라고 본다. 과거 국민의당이 바람을 일으킬 때도 병립형이었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016년 국민의당을 만들어 제3지대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때 얻은 성적표는 지역구 25석, 비례대표 13석, 총 38석이었다. 당시 민주당(25.54%)은 국민의당과 동일한 13석의 비례대표를 받았지만 정당득표율에서는 국민의당(26.74%)에 뒤지며 3위로 밀려났다.
수도권+영남, '이준석 신당'의 경쟁력
"이 전 대표는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신당의 모델이 앙숙인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2016년 국민의당이랑 매우 흡사하다. 국민의당은 당시 호남과 수도권의 연합투표로 바람을 일으켰다. 이준석 신당은 영남과 수도권의 연합투표를 노리고 있다." 앞선 관계자의 분석이다.
2016년 국민의당 돌풍의 원인에는 여러 분석이 있지만 국민의당 쪽에서는 '호남 홀대론'이 먹혔다고 봤다. 민주당의 명맥 중심에 서 있던 호남이 민주당 내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 현실을 계속 자극했고 이를 호남 민심이 수용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여기에 제3정당의 출현을 바라던 수도권의 표심이 결합하면서 정당 득표율 상승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공천 갈등의 진앙지가 호남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호남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 내 자기 사람 내리꽂기가 이뤄졌고 이 때문에 공천 명단은 지역에서 알지 못하는 낯선 인물들로 채워졌다. 그 결과 후보로 나선 국민의당 호남 현역 의원 10명은 모두 당선됐고 민주당은 지역구 선거에서도 쓰린 맛을 봤다.
지난 9월 12일 대구대학교 초청강연에서 "최근 대구·경북 정치인들은 당대표도, 대통령도 안 된다. 전국 당원 지지 안 받고 TK 의원 25명만 서로 뭉쳐 반장 선거 격인 원내대표 선거에만 된다"는 이 전 대표의 발언은 TK 정치에 대한 비판이자 보수 정당에서 주역이 되지 못하는 TK 민심을 자극했다. TK 홀대론까지 나가진 않았지만 주역이 되지 못하는 TK 정치의 현실을 날것 그대로 제기했다.
게다가 대구의 경우 공천 갈등이 반복되는 대표적 지역이다. 이번에도 험지 출마를 압박받는 중진들, 경쟁력을 선보이지 못한 초선들 그룹이 긴장하고 있다. 공천 물갈이설이 파다한 가운데 대통령실 참모들의 차출설까지 나온다. 갈등의 진폭이 꽤 클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 사례는 이와 유사한 구도에 놓인 이준석 신당이 병립형 비례대표제 아래서도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조국 신당'은 상황이 다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된다면 창당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민주당 주변에서는 조국 신당론이 솔솔 흘러나왔다. 당시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아닌,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거론되던 '설'에 불과했지만 최근 조 전 장관이 직접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회복'을 언급하며 총선 출마를 시사했다. 설이 흘러나왔던 때도 전제가 있었다. 현재의 비례제도가 유지되고 위성정당 금지 규정이 추가돼야 도전이 가능하다고 봤다. 2020년 열린민주당 모델과 유사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 조 전 장관이 창당할 거다. 승부해도 괜찮을 만한 당근이다. 열린민주당이 5% 정도로 3석을 얻었다. 그 정도 전략적 투표는 민주당 지지자에게 호소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을까. 반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면 창당보다는 지역구 출마로 갈 수도 있다. 조 전 장관의 광주 출마설은 나온 지 오래된 얘기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결정에 달라질 '조국 신당' 운명
선거제 결정에 캐스팅보트를 쥔 민주당은 신당 등장에 따른 득실 계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신당만 신경쓰면 된다. 반면 민주당은 조국 신당 변수까지 더해야 한다. 준연동형을 가져갈 경우 조국 신당을 위성정당 격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반면 '윤석열 정권 심판' 기조가 조 전 장관 때문에 희미해질 거라는 우려도 크다. 득과 실이 팽팽히 맞선다. 민주당 지도부는 조 전 장관의 움직임에 의식적인 거리 두기를 하고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지켜만 본다고 조 전 장관이랑 민주당을 따로 생각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있겠냐"(한 서울 지역 총선 출마 준비자)는 걱정을 무시할 수도 없다.
장성철 소장은 "(선거제는) 결국 이재명 대표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한다. 이재명 대표는 선거제도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9일 이재명 대표를 만난 시민사회 원로들은 "민주당 내 병립형 회귀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력히 반대한다"며 압박했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는 "어느 나라든 갖은 어려움을 뚫고 선거제도가 변하는 경우 대부분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를 하지 비례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주장을 해온 게 있는데 병립형 회귀로 합의해 주기는 쉽지 않을 거다"라고 봤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준연동형을 유지하고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들면 오히려 의석수에서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 정치 생명을 걸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의석 수 결과에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석 수를 많이 가지고 가느냐, 범(凡)진보진영의 승리를 꾀하느냐 중에서 어느 것이 승리일지를 택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 대표가 판단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