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동 허준' 약사 김동언 씨 덤으로 사는 인생…힘닿는 데까지 약국 지킬 것
자유인191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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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16:32
뇌경색, 암 수술 후에도 약국 지켜…'상전벽해' 속에서 약국 만은 그대로
"약국 손님 쾌차했을 때 가장 큰 기쁨…오랜 약국 손님 책임감 느껴"
대구 달서구 송현시장 인근 골목 어귀에서 '새화신약국'을 32년째 운영 중인 김동언(76) 씨. 점심시간도 따로 없고, 명절에도 쉬지 않고 약국을 지키는 그는 이 일대에서 '송현동 허준'으로 통한다.
김 씨 부부는 약국 건물 3층에 살면서 지금도 간혹 야간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내려가 손님을 맞이한다. 수십 년간 평일과 토요일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온 후 오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약국을 지켰는데, 몇 해 전 암 수술을 받으면서 일요일엔 문을 닫기로 했다.
영남대 약대를 졸업한 김 씨는 경주 안강에서 17년간 약국을 하다, 1992년 5월 지금 위치에 약국을 차렸다. 약국을 한 기간으로만 따지면 49년,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다.
"경주 안강에서 약국을 운영하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이 자리로 오게 됐습니다. 경주에선 해수욕장으로 가는 국도변에서 약국을 했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휴가도 없이 약국만 보며 살았습니다."
가족들이 다 모인 명절에도 김 씨만은 1층 약국에 내려가 자리를 지킨다. 닫힌 약국을 보고 돌아가는 손님을 생각하면 집에서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천근만근이기 때문이다.
아내 최영애(71) 씨는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가족 모두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멀리 온 김에 며칠 서울에서 자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약국에 가야 한다'며 홀로 KTX를 타고 대구로 갔다"며 "약국을 지키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약국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칠 여행을 가는 건 꿈도 못 꾸고, 집에서 설교 테이프를 듣는 것 외엔 특별한 취미도 없다"며 웃음을 지었다.
과거 한약 조제 자격을 취득했던 김 씨. 젊은 시절 지금보다 일을 더 많이 할 땐 한밤중에도 약국에 내려가 약을 달이곤 했다. 비염, 설사 등에 효과를 봤다며 경산, 청도 등에서 오랜 단골손님들이 약을 지으러 오던 일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내 최 씨 또한 약국 운영에 있어 든든한 조력자다. 김 씨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손님 응대 등 약국 곳곳에 최 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최 씨는 "어느 날 미용실에 갔더니 손님들이 '송현동 허준 댁에서 오셨다'고 해서 '허준'이란 별명을 알게 됐다. 한 곳에서 오래 약국을 하다 보니 웬만한 손님들과 수십 년간 인연이 있다"며 "한밤중 아플 때, 급할 때 약을 건넨 오랜 세월이 있다 보니 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신뢰 관계가 두터운 것 같다"고 했다.
김 씨 약국 인근은 지난 3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겪었다. 큰 도로가 생기고,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됐고, 인근엔 대형 빌딩도 하나둘 들어섰다. 그래도 김 씨의 약국 만은 위치도, 모습도 그대로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약국 바로 앞 길이 월배 쪽으로 가는 국도였습니다. 이 동네에선 가장 큰 도로였죠. 부모님 손을 잡고 약국에 오던 꼬마 손님들이 어른이 돼 어린 자녀와 다시 찾아오곤 합니다. '다른 곳은 다 바뀌어도 여긴 그대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고 느낍니다."
그런 김 씨에게도 위기가 온 적이 있었다. 과거 뇌경색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다, 2년 전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김 씨를 보는 가족들의 걱정도 커져갔다.
동서, 사위 등이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냐'며 약국을 접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삶의 당연한 일상이 돼버린 약국 일마저 놓으면 더 건강을 잃을 것 같다고 하자, 가족들이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아프고 난 후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국 일도 예전보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랜 손님들을 위한 책임감도 갈수록 크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약국을 정리할 날이 오겠죠. 하지만 힘닿는 데까진 약국을 하고 싶습니다. 약국에 왔던 손님들이 쾌차한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약국 손님 쾌차했을 때 가장 큰 기쁨…오랜 약국 손님 책임감 느껴"
대구 달서구 송현시장 인근 골목 어귀에서 '새화신약국'을 32년째 운영 중인 김동언(76) 씨. 점심시간도 따로 없고, 명절에도 쉬지 않고 약국을 지키는 그는 이 일대에서 '송현동 허준'으로 통한다.
김 씨 부부는 약국 건물 3층에 살면서 지금도 간혹 야간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내려가 손님을 맞이한다. 수십 년간 평일과 토요일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온 후 오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약국을 지켰는데, 몇 해 전 암 수술을 받으면서 일요일엔 문을 닫기로 했다.
영남대 약대를 졸업한 김 씨는 경주 안강에서 17년간 약국을 하다, 1992년 5월 지금 위치에 약국을 차렸다. 약국을 한 기간으로만 따지면 49년,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다.
"경주 안강에서 약국을 운영하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이 자리로 오게 됐습니다. 경주에선 해수욕장으로 가는 국도변에서 약국을 했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휴가도 없이 약국만 보며 살았습니다."
가족들이 다 모인 명절에도 김 씨만은 1층 약국에 내려가 자리를 지킨다. 닫힌 약국을 보고 돌아가는 손님을 생각하면 집에서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천근만근이기 때문이다.
아내 최영애(71) 씨는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가족 모두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멀리 온 김에 며칠 서울에서 자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약국에 가야 한다'며 홀로 KTX를 타고 대구로 갔다"며 "약국을 지키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약국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칠 여행을 가는 건 꿈도 못 꾸고, 집에서 설교 테이프를 듣는 것 외엔 특별한 취미도 없다"며 웃음을 지었다.
과거 한약 조제 자격을 취득했던 김 씨. 젊은 시절 지금보다 일을 더 많이 할 땐 한밤중에도 약국에 내려가 약을 달이곤 했다. 비염, 설사 등에 효과를 봤다며 경산, 청도 등에서 오랜 단골손님들이 약을 지으러 오던 일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내 최 씨 또한 약국 운영에 있어 든든한 조력자다. 김 씨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손님 응대 등 약국 곳곳에 최 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최 씨는 "어느 날 미용실에 갔더니 손님들이 '송현동 허준 댁에서 오셨다'고 해서 '허준'이란 별명을 알게 됐다. 한 곳에서 오래 약국을 하다 보니 웬만한 손님들과 수십 년간 인연이 있다"며 "한밤중 아플 때, 급할 때 약을 건넨 오랜 세월이 있다 보니 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신뢰 관계가 두터운 것 같다"고 했다.
김 씨 약국 인근은 지난 3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겪었다. 큰 도로가 생기고,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됐고, 인근엔 대형 빌딩도 하나둘 들어섰다. 그래도 김 씨의 약국 만은 위치도, 모습도 그대로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약국 바로 앞 길이 월배 쪽으로 가는 국도였습니다. 이 동네에선 가장 큰 도로였죠. 부모님 손을 잡고 약국에 오던 꼬마 손님들이 어른이 돼 어린 자녀와 다시 찾아오곤 합니다. '다른 곳은 다 바뀌어도 여긴 그대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고 느낍니다."
그런 김 씨에게도 위기가 온 적이 있었다. 과거 뇌경색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다, 2년 전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김 씨를 보는 가족들의 걱정도 커져갔다.
동서, 사위 등이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냐'며 약국을 접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삶의 당연한 일상이 돼버린 약국 일마저 놓으면 더 건강을 잃을 것 같다고 하자, 가족들이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아프고 난 후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국 일도 예전보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랜 손님들을 위한 책임감도 갈수록 크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약국을 정리할 날이 오겠죠. 하지만 힘닿는 데까진 약국을 하고 싶습니다. 약국에 왔던 손님들이 쾌차한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