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 원대 은행권 ‘홍콩 ELS’ 시한폭탄 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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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0 11:23
홍콩H지수 반토막으로 손실 가능성↑… 손실 확정 시 라임·옵티머스보다 큰 피해
“내년 5월 만기,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 회복 가능할까요. 노후 자금 전부 넣은 거라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그래도 님은 시간이 좀 있네요. 저는 당장 1월 만기라… 여기 계신 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원금 상환받기를 바랍니다.”
11월 15일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 온라인 종목토론실에서 나온 반응들이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만기를 앞두고 손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 대부분이 내년 상반기 만기인 가운데 최근 중국 경기침체로 홍콩H지수가 2021년 판매 당시(1만2000대)의 반토막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탓이다(그래프 참조). 투자자들은 당초 손실 위험이 높은 ELS에 투자하기를 권유한 은행에 대해서도 “안전 상품으로 오인하게 했다” “일종의 불완전판매 아니냐”며 성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할 경우 은행권도 신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지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6개월 단위로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 상환 기준을 충족하면 원금과 약정된 수익을 지급하지만 충족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가입 기간이 연장되는 구조다. 통상 만기는 3년인데, 만기 시점에 지수가 일정 구간 아래로 떨어져 있다면(knock in·녹인) 원금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주가연계펀드(ELT), 주가연계신탁(ELT) 등도 모두 큰 틀에서 ELS에 포함된다.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경우 이 지수가 1만2000 선을 웃돌던 2021년 초 집중적으로 팔렸다. 당시 가입했다가 조기 상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현재까지 상품을 보유 중인 투자자들이 내년 상반기 대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11월 16일 기준 홍콩H지수는 6150.26이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미상환 잔액은 총 20조5000억 원이다(표 참조). 이 중 시중은행이 ELT 형태로 판매한 잔액이 전체의 76%인 15조6168억 원에 달한다. KB국민은행이 7조6695억 원으로 가장 많은 잔액을 갖고 있으며 신한은행(2조3701억 원), 농협은행 (2조1310억 원), 하나은행(2조856억 원) 등 나머지 5대 시중은행도 각각 2조 원을 넘는다. 은행 판매분 중 원금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녹인 구간 진입 잔액’ 규모(4조9288억 원)도 5조 원에 육박한다. 이 또한 대부분(4조9273억 원)이 KB국민은행에 몰려 있다.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고 해서 무조건 원금 손실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약정상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이 최초 기준가의 약 60~70%를 유지하면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어서다. 다만 홍콩H지수가 1만2000 선이던 때 가입한 투자자가 원금을 보장받으려면 지수가 최소 7000은 넘어야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홍콩H지수가 현 수준(5800 기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만기를 맞는 6조 원가량의 투자금에서 2조5000억~3조 원 손실이 날 것으로 추산된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피해(1조6000억 원)를 뛰어넘는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 중 노년층 비율이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5대 은행은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1~6월)까지 홍콩H지수 연계 ELF 상품을 총 5조7796억 원어치 팔았다. 특히 65세 이상 개인에게 판매한 금액이 1조3973억 원으로 전체의 24%를 차지한다. 이 중에는 불완전판매가 의심되는 사례가 적잖다. 11월 14일 홍콩H지수 종목토론실에는 “70대 어머니가 은행 권유로 1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은행이 노인에게 위험성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이런 상품을 추천해도 되는 건가요?” 같은 사연이 올라왔다. 윤한홍 의원실이 취합한 민원 중에도 “원금이 보장되는 저위험 상품을 찾던 70대 노인에게 ‘매우높은위험(1등급)’ 상품인 ELS를 판매하면서 리스크에 관한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등의 유사 사례가 여럿 있다.
금융권에서는 시중은행이 ELS 판매에 이렇듯 공격적이던 배경에 ‘수수료 장사’가 있었다고 본다. ELS는 3~6개월마다 조기 상환할 수 있는 구조인데, 이때 은행은 고객을 새로운 ELS에 재가입하게 하면서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무차별적 ELS 판매로 투자자 보호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금감원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은행별 예상 손실액, 대비책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홍콩H지수 연계 ELS 손실과 관련해 “고위험 파생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상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령층을 상대로 파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며 “피해자 보호뿐 아니라 다른 금융시장 상황과도 맞물려 있어 눈여겨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은행권은 ELS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대책을 준비 중이다. 11월 16일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은행 내부적으로 자필 서명, 녹취, 주의·설명 의무 등을 강조하고 있어 불완전판매로 입증될 만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홍콩H지수 연계 ELS의 손실이 확정될 경우 고객 보호 차원에서 다른 ELS 상품에 재가입하게 해 원금 회복 기회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는 받지 않는 등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미상환 잔액을 보유한 KB국민은행 관계자는 11월 16일 “자사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을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이 판매한 것은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불량펀드를 차단함으로써 고객 피해를 최소화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후 금융위원회로부터 더 많은 ELS를 팔 수 있도록 한도를 할당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만기 전까지는 손실 확정이 아니라 섣불리 고객에게 중도 해지 등을 제안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시장 상황 및 전망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등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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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님은 시간이 좀 있네요. 저는 당장 1월 만기라… 여기 계신 분들 한 분도 빠짐없이 원금 상환받기를 바랍니다.”
11월 15일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 온라인 종목토론실에서 나온 반응들이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만기를 앞두고 손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 대부분이 내년 상반기 만기인 가운데 최근 중국 경기침체로 홍콩H지수가 2021년 판매 당시(1만2000대)의 반토막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탓이다(그래프 참조). 투자자들은 당초 손실 위험이 높은 ELS에 투자하기를 권유한 은행에 대해서도 “안전 상품으로 오인하게 했다” “일종의 불완전판매 아니냐”며 성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할 경우 은행권도 신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상환 잔액 20조5000억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미상환 잔액은 총 20조5000억 원이다(표 참조). 이 중 시중은행이 ELT 형태로 판매한 잔액이 전체의 76%인 15조6168억 원에 달한다. KB국민은행이 7조6695억 원으로 가장 많은 잔액을 갖고 있으며 신한은행(2조3701억 원), 농협은행 (2조1310억 원), 하나은행(2조856억 원) 등 나머지 5대 시중은행도 각각 2조 원을 넘는다. 은행 판매분 중 원금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녹인 구간 진입 잔액’ 규모(4조9288억 원)도 5조 원에 육박한다. 이 또한 대부분(4조9273억 원)이 KB국민은행에 몰려 있다.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고 해서 무조건 원금 손실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약정상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이 최초 기준가의 약 60~70%를 유지하면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어서다. 다만 홍콩H지수가 1만2000 선이던 때 가입한 투자자가 원금을 보장받으려면 지수가 최소 7000은 넘어야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홍콩H지수가 현 수준(5800 기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만기를 맞는 6조 원가량의 투자금에서 2조5000억~3조 원 손실이 날 것으로 추산된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피해(1조6000억 원)를 뛰어넘는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노인한테 이런 상품 권하나”
금융권에서는 시중은행이 ELS 판매에 이렇듯 공격적이던 배경에 ‘수수료 장사’가 있었다고 본다. ELS는 3~6개월마다 조기 상환할 수 있는 구조인데, 이때 은행은 고객을 새로운 ELS에 재가입하게 하면서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무차별적 ELS 판매로 투자자 보호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금감원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은행별 예상 손실액, 대비책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홍콩H지수 연계 ELS 손실과 관련해 “고위험 파생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상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령층을 상대로 파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며 “피해자 보호뿐 아니라 다른 금융시장 상황과도 맞물려 있어 눈여겨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은행권 “불완전판매 없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
가장 많은 미상환 잔액을 보유한 KB국민은행 관계자는 11월 16일 “자사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을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이 판매한 것은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불량펀드를 차단함으로써 고객 피해를 최소화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후 금융위원회로부터 더 많은 ELS를 팔 수 있도록 한도를 할당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만기 전까지는 손실 확정이 아니라 섣불리 고객에게 중도 해지 등을 제안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시장 상황 및 전망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등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