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미래의 나침반 뉴델리 IIT 대학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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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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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23:23
미래의 나침반, 좌표, 길라잡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미래 초상화를 예감케 할 아이콘이나 장소, 인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 1주일간 신문 방송을 대하면, 전 세계가 열광한다는 K팝 걸그룹이나 반도체, 냉동김밥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국력을 총동원해 준비했다는 2030 부산 엑스포 프레젠테이션을 봐도 비슷한 것들이 등장한다. 한국인 스스로 되묻고 싶을지 모른다. 과연 빌보드 1위 노래, 외국 투자와 무관한 한국 반도체, 얼어터진 김밥이 한국의 미래 초상화를 결정지을 요소라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은 부정적일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2100년 아니 2050년 미래 한국 초상화의 근간이 될 수 있을까? 그 많은 연구소와 세계적 수준이라는 대학, 나아가 최고 시설의 병원조차 2050년 한국의 얼굴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도 최고 두뇌가 모이는 곳
1950년대 자칭타칭 국보 양주동 박사는 교복 차림 중·고등학생이 한국의 미래라 갈파했다. 새벽 등굣길 10대 청춘들의 기상과 의지를 통해 교육대국 한국의 밝은 내일을 찬미하고 예견했다. 70여년이 흐른 2023년, 양주동 박사가 다시 한국을 본다면 과연 어디에 미래의 방점을 찍을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한국은 미래의 얼굴을 그려나가기 어려운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소문도 무성하고, 1등 자랑거리도 많지만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뉴델리에 온 지 2주째, 인도의 미래를 밝혀줄 나침반, 좌표, 길라잡이가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이런저런 판단 끝에 '인도=IT'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제로(0)라는 개념을 창조해낸 나라의 운명, 3000여년 이어진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글로벌 해방구, 개인 플레이에 능한 인도인의 사회적·개인적 유전자에 가장 어울리는 분야가 바로 IT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미래, 세계를 향한 인도인의 능력과 파워는 바로 IT세계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인도=IT'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디의 누구를 통해 그 현실과 꿈을 파악해낼 수 있을까? 인도 최고의 두뇌가 모이는 뉴델리 인도IT대학(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Delhi)이 최적의 현장이 될 듯하다. 사람, 조직, 이상, 그리고 꿈이 전부 모여 있는 인도와 인도인의 미래 압축공간이다. 전 세계 IT 관계자 모두가 인정하지만, 뉴델리 IIT는 인도 미래의 북극성에 해당하는 곳이다. 뉴델리 IIT는 뭄바이 IIT와 함께 인도 최고 두뇌의 양대산맥이라 불린다. 한국은 의과대학이 전교 1등의 주무대지만, 인도는 IIT 대학이 최고 두뇌의 현장이다.
주마다 하나씩 모두 23개의 IIT 운영
현재 인도에는 각 주마다 하나씩 모두 23개의 IIT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한 대학당 1만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 가운데 4년간 대학을 다니는 학부생은 40% 정도다. 1년에 대략 2만명 이상 IT 전문 학부 졸업생들이 쏟아지는 셈이다. 매년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선정하는 전 세계 1500개 대학 랭킹에서 뉴델리 IIT는 세계 48위(2023년도 엔지니어 컴퓨터 영역 기준)로 뽑혔다.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 뭄바이 IIT는 세계 47위를 기록했다. 100위권 대학으로 68위의 인도 마드라스 IIT도 있다.
QS 2023년 세계 랭킹을 보면, 1위는 메사추세츠공대(MIT)다. 한국은 카이스트 24위, 서울대 36위, 포항공대 72위로 100위권 대학에 3개가 들어가 있다. 언뜻 보면 한국이 인도보다 우위에 선 듯하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180도 달라진다. 크게 두 가지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선정 요소다. QS의 랭킹 선정 기준에는 교육내용 그 자체만이 아닌, 환경문제, 교직원 평가, 에너지 재활용 같은 요소도 들어가 있다. 2023년 인도 대학의 환경상태나 에너지 재활용 상황이 한국이나 서구 수준에 맞춰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학생 규모다. 2020년 기준이지만, 서울대 컴퓨터 전공 학부생이 전부 200명 선이라고 한다. 카이스트·고려대·연세대·포항공대를 다 합쳐도 한국 내 컴퓨터 전공 학부생은 전부 2000명 선에 그친다. 인도는 뉴델리 IIT 하나만 해도 4000명에 달한다. 뉴델리 IIT 박사과정에 들어선 학생도 무려 4000명 선에 이른다. 실전 교육,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학생 규모와 비교할 경우 한국은 상대가 안 된다.
뉴델리 3륜 자동차 '툭툭'을 타고 IIT로 들어갔다. 교문으로 들어서는 데 신분증명이 필요하다. 아무나 마음대로 대학에 출입할 수 없다. 학교 안은 카오스 도시 뉴델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조용한 공간이다. 잔디밭도 있는 깨끗하고 잘 정리된 공간이다. 낡은 건물 탓이겠지만, 1970년대 한국 대학 같은 분위기다. 학교의 중심인 컴퓨터공학과 건물로 향했다. 때마침 점심 때라 교정 전체가 분주하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가서 말을 걸었다. 컴퓨터 전공 학부 2학년 남자 학생 두 명이다. 학교 생활에 만족하는지 물어봤다. "매일 배우고 서로 토론한다. 공부를 해도 끝이 없다. 매일 아침 힌두 사원에도 들러야 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부모와의 대화도 일과 중 하나다."
인도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비용은 한 달 1000루피(약 1만5000원)로 학교 내에서 24시간 보내는 셈이다. 학생회관 같은 곳에 가서 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대학 내에 앉아 쉴 만한 실내 공간이 전혀 없다. 그나마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파는 허름한 구멍가게가 전부다. 계피 맛이 강한 150원짜리 인도차를 주문했지만, 돈은 학생들이 지불했다. 멀리서 온 손님에 대한 접대는 인도식 예의이자, 종교적 의무라고 말한다.
펀자브 지방에서 왔다는 다른 학생에게 미래의 꿈이 뭔지 물어봤다.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부모만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 인도에도 공헌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모두 벼락부자를 꿈꾸는 건 아니다"
한국인 대부분이 가진 인도 IT 전문가의 이미지는 글로벌 IT기업의 대표나, 소프트웨어 개발 최고책임자 정도일 듯하다. 대학 졸업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 머리 하나로 IT 정상에 올라 돈방석에 앉는 식의 이미지다. "그런 생각을 갖기 쉽지만, 실제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는 극히 드물다. IIT가 전 세계 인도 출신 IT 전문가, 인도 출신 기업과 직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으로 갈 경우, 거기서 일정 기간 다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아주 뛰어난 사람은 지원을 받겠지만, 대부분은 자기 돈으로 교육을 받은 뒤 취업하려 한다. 지원을 받을 경우 한 곳에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뉴델리 IIT는 출발점일 뿐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인도 바깥뿐만 아니라 인도 내의 IT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전부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벼락부자가 되는 식의 꿈을 꾸진 않는다."
20대 초반 인도 대학생과의 대화는 깊고도 따뜻했다. 과장이나 자학, 편견과는 무관한 객관적 상황인식과 거기에 맞춘 개인적 결의가 대화 속에 배어 있었다. 외국에 알려진 이미지로 인도 학생들을 대했던 필자의 무지와 편견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헤드 버블링(Head bobbling)'은 인도인과 접하는 순간 갖게 되는 인도의 신비 그 자체다. 머리와 턱, 목을 활용한 무언의 대화가 헤드 버블링이다. 인도인들은 부정이나 긍정, 나아가 동의나 가능성에 관한 표현을 언어가 아니라 머리로 한다. 입으로 내뱉는 '예스(Yes)' '노(No)'가 아니라 머리, 턱, 목으로 연결된 미묘한 각도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신비한 미소도 반드시 따라붙는다. 헤드 버블링은 애매하다. 한국인이 보면 '예스' '노' 어디를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예스, 노' '많이, 적게' '크게, 작게' '앞으로, 뒤로'에 대한 답을 머리 각도로 나타내지만, 전부 비슷하게 보인다. 헤드 버블링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필자의 경우 몇 번이나 반복해서 확인, 재확인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함정에 빠져 허우적댄다. "약국까지 2분 정도 걸어가면 되느냐?"에 대한 물음을 던진 뒤 몇 번이나 '그렇다'는 헤드 버블링 확인을 받고 찾아가지만, 10분을 걸어도 약국이 안 나타난다. 가다가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가는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이지만, 헤드 버블링은 '답은 내가 알아서 찾아라'는 의미라 보면 된다. '약국까지 2분 거리냐'에 대한 답을, 타인에게서 찾지 말고 자신이 직접 해결하라는 의미로서의 헤드 버블링이다. 필자가 관찰한 결과지만, 인도에는 '노'라는 발상 자체가 없다. 기본적으로 전부 '예스'다. 약국까지 걸어서 2분, 5분, 10분… 그 어떤 것을 물어도 헤드 버블링은 똑같다. 당연하지만, '예스' '노' 사이의 벽이 애매할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분명한 '노'조차도 90% 정도는 '예스'로 표현한다.
필자 판단이지만, 헤드 버블링은 '인도=IT'를 이해할 증거이자 단서로 느껴진다. 이유는 인도인만이 가진 특별한 세계관이 헤드 버블링 하나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애매한 반면,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자세가 헤드 버블링 세계관의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인도는 흑백(黑白) 세계관과 무관한 땅이다. 힌두교 기본원리가 그러하듯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를 인정한다. 힌두교는 불교와 시크교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슬람교도와의 반목이 있는 듯하지만, 정치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종교, 민족, 국가가 달라도 평화와 조화가 기본이다. 필자가 곳곳에서 확인했지만, 힌두와 이슬람 신자 사이의 결혼도 많다. 흥미롭게도 인도에는 인도식 '중화사상' 같은 것도 없다. 중국처럼 자나깨나 '중국 넘버원' 세계관이 없다. '인도 넘버원'은 정치가나 내뱉는 슬로건에 불과하다.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지만, 남을 아래로 보면서 과장하지도 않는다.
코스모스를 빨리 이해하는 카오스의 나라
'다양성'은 21세기 글로벌 유행어이자, 팬데믹 이후 글로벌 문명·문화의 키워드에 해당한다. 다양성은 인도 유전자를 한마디로 압축한 개념이다. 전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애매하다는 것은 자칫 카오스(Chaos·대혼란) 세계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한국은 주자학 대의명분으로 날과 밤을 새는 나라다. 행동이 아닌 입으로만 이뤄지는 과정에서 내로남불은 필연이다. 흑백 세계관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인도=카오스'로 대할 수밖에 없다.
잠수함 승무원 10%를 여성으로 바꾼 순간, 물 소비량이 배로 급증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긴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결과라 볼 듯하다. 하지만 진실은 반대다. 여성 승무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소 씻지도 않던 남성들이 일시에 샤워를 하면서 물 소비량이 배로 늘어난 것이다. 물 소비량 급증과 함께 잠수함 내 빈대와 이도 사라졌다고 한다. '예스' '노'가 불분명한, 아니 '예스' '노'를 전부 포용하는 헤드 버블링 사고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을 필요로 하는 IT산업의 발판이자 배경이 될 수 있다. 신체 청결을 수십 번 강변하는 것보다, 여성 승무원 몇 명 교체로 잠수함 환경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카오스 세계에 살기 때문에, 거꾸로 누구보다도 빨리 코스모스(Cosmos·대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코스모스의 눈에는 카오스만 보이지만, 카오스 눈에는 카오스는 물론 코스모스도 보인다. 이미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수많은 인도 출신자들이 글로벌 IT 산업계 최정상에 올라서 있다. 다양성에 기초한, '예스' '노' 벽이 없는 헤드 버블링이야말로 디지털 IT산업에 적합한 세계관이라 확신한다.
인도 학생과 대화하던 중 지나가던 백인 학생과 만났다.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온 파리 출신 프랑스 학생이다. 프랑스인 4명이 뉴델리 IIT에 있다고 한다. 컴퓨터 전공으로, 여자친구 따라 인도에 오게 됐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종교적 이유겠지만, 혼자 기도하고 식사도 공부도 혼자 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민주주의식 집단토론을 통해 도출한다. 집단으로 어울리면서 세를 과시하는, 상명하복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인도의 최대 장점이지만, 적이 없다. 파키스탄과 분쟁이 있지만, 중국과 주변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총리 자리에 오른 영국의 리시 수낵은 최적의 본보기다. 프랑스와 유럽에도 인도인들이 밀려들고 있지만, IT만이 아니라 모두를 수합하는 정치적 역량도 남다르다."
뉴델리 IIT 교정을 보면 여학생들이 적지 않다. 전체 20% 정도가 여성이다. 박사 과정으로 가면 50% 정도가 여성이라고 한다. 여학생들을 보면서, 지난 8월 23일 전 세계에 중계된 인도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 실황 당시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현장중계를 보면, 연구소 스태프들 연령대가 20대부터 70대에 걸친 다세대에다, 여성 비율도 20% 정도였다. 1960년대 아폴로 프로젝트 당시 미국 휴스턴 우주본부를 채운 99% 남성들 모습과 많이 다르다. 지나가던 여학생에게 질문 하나만 던지고 싶다면서 말을 붙였다. "인도인이 왜 세계 IT시장에서 강한가?" "과장된 얘기일 뿐이다. 그러나 굳이 얘기를 하자면, 성공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가장 큰 배경이 될 듯하다. IT는 우주의 세계다. 인도는 미국 예산의 10분의1로 달나라에 간 나라다. 모두 가난하고 낙후된 시설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달은 물론 은하계까지 정복할 수 있다. IT는 그 같은 은하계 정복으로 이어질 최대의 수단이자 목적이다. IT 외에는 출구가 없다. 선택이 아니라, 인도인의 당위이자 인도의 숙명이 I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