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인구충격] 육아휴직 '신기루'…대체 인력 없다 사업주·근로자 모두 '난색'
자유인130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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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14:35
남성, 전문직 종사자에게 육아휴직은 "꿈 같은 얘기"
남성휴직, 민간서도 증가세지만 OECD 주요국에 여전히 못 미쳐
이름 뿐인 육아휴직은 젊은 맞벌이 부부의 출산·양육 고민을 더욱 키우고 있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까지 돌보려면 경제적 여건뿐만 아니라 온전히 자녀에게 마음을 쏟을 시간적 여유가 중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육아휴직은 '신기루'에 가깝기 때문이다.
학교나 공공기관과 달리 사기업들은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남성이나 전문직이 육아휴직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부부들이 일찌감치 퇴직하거나 다자녀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다.
◆남성·전문직군 '육휴'는 아직도 '눈칫밥'
대구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A씨는 올해 초 남성 직원 최초로 1년 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전업 주부인 아내가 출산 후유증을 앓고 있어 육아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A 씨의 용기는 사내에서 일종의 '센세이션'이었다. "남자가 무슨 애를 키우느냐" "승진은 포기했냐" "긍정적 전례로 남아 후배들도 가정에 충실할 수 있을 것" 등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신청한 기간보다 짧은 9개월 만에 복직하는 조건이었다. 회사는 그가 부서에서 맡은 역할을 다른 동료가 대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는 "잠시라도 아내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법이 보장하는 육아휴직을 쓰면서 눈치를 보거나 제한이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개인 역량이 소속 집단의 수익과 직결되는 전문직군 종사자 역시 육아휴직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문의 B씨도 딸을 낳고 출산휴가를 낸 뒤 3개월 만에 복직했다. 그가 다니는 병원에서 의사가 육아휴직을 쓴 사례는 전무했다. 휴직자와 완전히 같은 세부 진료분야의 대체인력을 한시 고용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B씨의 자녀는 친정 어머니와 육아 도우미가 교대로 돌보고 있다.
B씨는 "의사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담당하던 진료 분야의 환자가 줄어 병원 수익이 감소한다"면서 "대학병원 교수 역시 연구 업적 등으로 경쟁하다 보니 사립대병원 교수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육아휴직이 금기시된다"고 말했다.
◆기업들 "인사·경영 고려하면 권장 못해"
사업주 입장에서도 육아휴직을 마음껏 권장하긴 어렵다.
관련 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가 요건을 갖춰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반드시 승인해야 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불허하면 벌금 처분을 받는다.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해도 처벌받는다.
그럼에도 소규모 업체·사업장일수록 직원의 '육아휴직'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은 동료 직원에게 업무 대체를 요청하거나, 기간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학원장 C씨는 "학원은 입시, 대회 등 1년 내내 학생들의 학업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강사 공백은 학원 운영에 치명적"이라며 "그래서 육아·출산을 계획한 강사들이 알아서 퇴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 편이 경영자 입장에서도 내심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이어 "대체 인력으로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사업주도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며 "사업주도 근로자도 휴직 문제로 서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남성 육아휴직, OECD 주요국 비해 저조
남성 육아휴직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 새 남성 육아휴직을 인정하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공공기관·공기업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가 매년 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에 따르면 국내 공공·민간 육아휴직자는 2010년 4만1천732명에서 지난 2021년 11만555명으로 2.6배 증가했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자가 같은 기간 819명에서 2만9천41명으로 35.5배 급증했다.
특히 2021년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 대비 1천618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여성 육아휴직자가 8만4천617명에서 8만1천514명으로 3천103명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같은 해 국내 전체 육아휴직자가 11만2천40명으로 전년(11만555명)보다 1.3%(1천485명) 감소한 점을 볼 때, 남성 배우자의 양육 참여가 늘어난 긍정적 신호라 볼 수 있다.
연구원은 "코로나19가 호전되고 일상회복을 하면서 유치원, 학교 등 돌봄 시설이 정상화된 영향"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여건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은 26.3%에 그친다. 여성 3명 당 남성 1명이 육아휴직을 이용한 셈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참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의 남성 육아휴직 비중은 스웨덴 46.0%, 덴마크 44.9%, 벨기에 33.2% 등으로 집계됐다.
사정은 육아휴직에 비교적 관대한 공무원 조직에서도 비슷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전국 16개 시도(대구시 제외)로부터 받은 지난해 공공기관 육아휴직 사용률에 따르면, 국내 여성 공무원의 평균 육아휴직 사용률은 40.5%로 남성 공무원(15.4%)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남성이 육아휴직을 더욱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해 여성과 남성이 육아를 분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동시에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남성휴직, 민간서도 증가세지만 OECD 주요국에 여전히 못 미쳐
이름 뿐인 육아휴직은 젊은 맞벌이 부부의 출산·양육 고민을 더욱 키우고 있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까지 돌보려면 경제적 여건뿐만 아니라 온전히 자녀에게 마음을 쏟을 시간적 여유가 중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육아휴직은 '신기루'에 가깝기 때문이다.
학교나 공공기관과 달리 사기업들은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남성이나 전문직이 육아휴직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부부들이 일찌감치 퇴직하거나 다자녀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다.
◆남성·전문직군 '육휴'는 아직도 '눈칫밥'
대구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A씨는 올해 초 남성 직원 최초로 1년 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전업 주부인 아내가 출산 후유증을 앓고 있어 육아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A 씨의 용기는 사내에서 일종의 '센세이션'이었다. "남자가 무슨 애를 키우느냐" "승진은 포기했냐" "긍정적 전례로 남아 후배들도 가정에 충실할 수 있을 것" 등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신청한 기간보다 짧은 9개월 만에 복직하는 조건이었다. 회사는 그가 부서에서 맡은 역할을 다른 동료가 대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A씨는 "잠시라도 아내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법이 보장하는 육아휴직을 쓰면서 눈치를 보거나 제한이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개인 역량이 소속 집단의 수익과 직결되는 전문직군 종사자 역시 육아휴직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문의 B씨도 딸을 낳고 출산휴가를 낸 뒤 3개월 만에 복직했다. 그가 다니는 병원에서 의사가 육아휴직을 쓴 사례는 전무했다. 휴직자와 완전히 같은 세부 진료분야의 대체인력을 한시 고용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B씨의 자녀는 친정 어머니와 육아 도우미가 교대로 돌보고 있다.
B씨는 "의사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담당하던 진료 분야의 환자가 줄어 병원 수익이 감소한다"면서 "대학병원 교수 역시 연구 업적 등으로 경쟁하다 보니 사립대병원 교수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육아휴직이 금기시된다"고 말했다.
◆기업들 "인사·경영 고려하면 권장 못해"
사업주 입장에서도 육아휴직을 마음껏 권장하긴 어렵다.
관련 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가 요건을 갖춰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반드시 승인해야 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불허하면 벌금 처분을 받는다.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해도 처벌받는다.
그럼에도 소규모 업체·사업장일수록 직원의 '육아휴직'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은 동료 직원에게 업무 대체를 요청하거나, 기간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학원장 C씨는 "학원은 입시, 대회 등 1년 내내 학생들의 학업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강사 공백은 학원 운영에 치명적"이라며 "그래서 육아·출산을 계획한 강사들이 알아서 퇴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 편이 경영자 입장에서도 내심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이어 "대체 인력으로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사업주도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며 "사업주도 근로자도 휴직 문제로 서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남성 육아휴직, OECD 주요국 비해 저조
남성 육아휴직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 새 남성 육아휴직을 인정하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공공기관·공기업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가 매년 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에 따르면 국내 공공·민간 육아휴직자는 2010년 4만1천732명에서 지난 2021년 11만555명으로 2.6배 증가했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자가 같은 기간 819명에서 2만9천41명으로 35.5배 급증했다.
특히 2021년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 대비 1천618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여성 육아휴직자가 8만4천617명에서 8만1천514명으로 3천103명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같은 해 국내 전체 육아휴직자가 11만2천40명으로 전년(11만555명)보다 1.3%(1천485명) 감소한 점을 볼 때, 남성 배우자의 양육 참여가 늘어난 긍정적 신호라 볼 수 있다.
연구원은 "코로나19가 호전되고 일상회복을 하면서 유치원, 학교 등 돌봄 시설이 정상화된 영향"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여건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은 26.3%에 그친다. 여성 3명 당 남성 1명이 육아휴직을 이용한 셈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참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의 남성 육아휴직 비중은 스웨덴 46.0%, 덴마크 44.9%, 벨기에 33.2% 등으로 집계됐다.
사정은 육아휴직에 비교적 관대한 공무원 조직에서도 비슷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전국 16개 시도(대구시 제외)로부터 받은 지난해 공공기관 육아휴직 사용률에 따르면, 국내 여성 공무원의 평균 육아휴직 사용률은 40.5%로 남성 공무원(15.4%)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남성이 육아휴직을 더욱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해 여성과 남성이 육아를 분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동시에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