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훅... 영국에선 이걸 빵에 발라 먹는다고?
자유인35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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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 16:48
김치 소스부터 마마이트·처트니 등 우리에겐 낯선 발효식품 이야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치는 요즘 영국에서 음식 유행 좀 따른다 하는 사람이라면 아는 척하고 싶어 하는 식품이다. 해외여행 가서도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곳에서 대단한 변화다.
트렌디한 레스토랑에 가보면 김치를 소스로 만들어 햄버거나 핫도그 등에 뿌려 먹기도 하고 아예 음식을 만들 때 새로운 알싸함을 첨가하려고 김치를 다져 넣기도 한다.
우리 옆집 이웃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반색을 하며 김치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 하기도 하고, 음식에 비교적 보수적이신 시아버지께 김치부대찌개를 끓여드렸더니 이제는 그 맛이 가끔 생각난다 하시기도 한다.
영국 발효식품은 뭐가 있더라? 치즈,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 밀과 효모를 넣어 만드는 발효식 맥주와 식빵은 너무나 다들 잘 알고 계실 것 같다. 내가 영국으로 이사 와서 발견한 현지 발효식품을 소개해보겠다.
이것은 약병인가, 소스병인가. 슈퍼마켓 소스 매대에서 발견한 마마이트(Marmite)를 처음 만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설명을 보니 빵에 발라도 먹고 음식 할 때 첨가해서 써도 되는 영국 전통 발효식품이란다.
나는 김치와 된장, 온갖 발효식품의 나라 후예인데 당연히 먹어봐야지 한 병 집어온다. 장 봐온 물건들을 부엌 제자리에 다 정리하고 돌아서니 이 마마이트 병만 어디로 가야 할지 덩그러니 남아 있다. '빵에다 발라 먹어보라 했지?' 병마개를 여는 순간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외국 사람이 청국장 냄새 맡으면 이런 마음이려나. 그만큼 묵직한 냄새인데 또 전혀 다른 맛이다. 절레절레 흔들며 마마이트 선전문구를 보니 "Are you a lover or a hater?" 아차 싶다.
병 뒷면 원료와 제조방법을 읽어보니 맥주를 만들고 남은 효소로 만든 발효식품이다. 맥주는 물, 홉 그리고 이스트로 만드는 자연발효주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스트가 점점 커가면서 많은 양이 생산되는데 이것을 따로 모아 단백질 섞은 물과 혼합하여 끓여주면 찐득한 마마이트가 탄생한다. 호불호가 강하지만 이 마마이트를 빵에 발라먹기도 하고 트러플을 섞어 음식에 맛을 더하는 소스로 쓰기도 한다.
처음 영국에 와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내 몫으로 받아 들고는 깜짝 놀랐다. 물론 각자의 기호에 따라 넣고 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햄, 베이컨, 계란프라이, 해시브라운이라는 감자튀김, 구운 토마토와 버섯, 베이크빈스, 블랙푸딩이라는 꼭 우리나라 순대 비슷한 음식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함께 토스트랑 발라먹을 잼, 마멀레이드 그리고 홍차가 제공된다.
양도 많고 무엇보다 단백질이 가득 담긴 이 아침식사를 먹은 날, 저녁 식사 시간까지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대체 야채는 언제 먹어?" 남편에게 물으니 "감자도 야채야" 하면서 웃는다. 이렇게 매일 아침 식사를 하면 근육질의 슈퍼맨이라도 될 것만 같다.
영국 식사는 단백질, 탄수화물이 많지만, 비타민이나 식이섬유, 유산균이 부족하다. 직접 살면서 보니 영국 식문화가 이해되기도 한다. 지금이야 남부 유럽에서 싱싱한 야채들을 얼마든지 수입해서 먹지만, 옛날 영국은 비와 바람이 많고 일조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채소를 길러 먹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신 푸른 초원에서 소, 돼지, 양 등 목축업이 비교적 쉽고, 감자, 당근 같은 구황작물이나 콩, 양배추 같은 채소들이 쉽게 자란다. 여름이면 딸기나 구스베리 같은 베리류가 잘 자라고 가을이면 동네마다 사과 수확에 한창이다.
영국 사람들은 평소 느끼함을 잡기 위해 생선이나 감자튀김에 식초를 뿌려 먹는다. 맥도널드 가면 사이드 메뉴가 있듯이 피시 앤 칩스 매장에는 주로 양파 피클 그리고 계란 피클이 있다. 하루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1 파운드를 내고 계란 피클을 사이드로 주문했다.
짝꿍은 먹고 나서 트림하지 말라고 놀리는데, 농담이 아닌 것 같다. 계란 노른자 단백질과 시큼한 식초맛이 만나 오묘하지만 피시 앤 칩스의 느끼함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 난 나쁘지 않다. 발효식품이다 보니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잼은 아니고 그렇다고 시럽도 아닌 피클과 소스 중간 즈음 처트니(Chutney)가 있다. 주로 과일에 식초와 설탕을 넣어 만드는데 우리나라 유자청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요즘 칠리 처트니가 유행이다.
고추의 매운맛이 등급별로 나눠져 있는데 달지만 제법 입안 매운 기운이 감돈다. 유산균이 아주 풍부해 소화에도 좋고 무엇보다 치즈 얹은 크래커에 처트니 한 스푼 올리면 열량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맛이다.
영국 남서부에는 '애플사이다'라는 달콤한 5도짜리 술이 유명하다. 이태원에서 영국 친구가 사이다라는 말에 음료를 시켰다가 "이건 레모네이드잖아" 실망했던 이유다. 달콤한 탄산 같은 부드러운 목 넘김에 정신을 놓았다가는 알딸딸 취하기 십상이다.
사과 식초도 많이들 만든다. 이 밖에도 우스터 지방의 우스터소스, 워체스터 브라운소스, 지역 머스터드 소스 등 제법 유명한 브랜드화된 소스들이 있다. 샌드위치나 아침식사할 때 많이들 곁들여 먹는 발효 소스들이다.
김치, 고추장, 된장뿐만 아니라 홍어도 삭혀 먹는 대한민국 사람이 보기에는 아직도 영국 땅에 알리고 싶은 발효 식품이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 지도 하나쯤 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게제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치는 요즘 영국에서 음식 유행 좀 따른다 하는 사람이라면 아는 척하고 싶어 하는 식품이다. 해외여행 가서도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곳에서 대단한 변화다.
▲ 김치는 요즘 영국에서 음식 유행 좀 따른다 하는 사람이라면 아는?척하고?싶어 하는?식품이다. |
ⓒ 김명주 |
트렌디한 레스토랑에 가보면 김치를 소스로 만들어 햄버거나 핫도그 등에 뿌려 먹기도 하고 아예 음식을 만들 때 새로운 알싸함을 첨가하려고 김치를 다져 넣기도 한다.
우리 옆집 이웃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반색을 하며 김치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 하기도 하고, 음식에 비교적 보수적이신 시아버지께 김치부대찌개를 끓여드렸더니 이제는 그 맛이 가끔 생각난다 하시기도 한다.
영국 발효식품은 뭐가 있더라? 치즈,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 밀과 효모를 넣어 만드는 발효식 맥주와 식빵은 너무나 다들 잘 알고 계실 것 같다. 내가 영국으로 이사 와서 발견한 현지 발효식품을 소개해보겠다.
이것은 약병인가, 소스병인가. 슈퍼마켓 소스 매대에서 발견한 마마이트(Marmite)를 처음 만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설명을 보니 빵에 발라도 먹고 음식 할 때 첨가해서 써도 되는 영국 전통 발효식품이란다.
▲ 외국 사람이 청국장 냄새 맡으면 이런 마음이려나. 그만큼 묵직한 냄새인데 또 전혀 다른 맛이다. |
ⓒ 김명주 |
나는 김치와 된장, 온갖 발효식품의 나라 후예인데 당연히 먹어봐야지 한 병 집어온다. 장 봐온 물건들을 부엌 제자리에 다 정리하고 돌아서니 이 마마이트 병만 어디로 가야 할지 덩그러니 남아 있다. '빵에다 발라 먹어보라 했지?' 병마개를 여는 순간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외국 사람이 청국장 냄새 맡으면 이런 마음이려나. 그만큼 묵직한 냄새인데 또 전혀 다른 맛이다. 절레절레 흔들며 마마이트 선전문구를 보니 "Are you a lover or a hater?" 아차 싶다.
병 뒷면 원료와 제조방법을 읽어보니 맥주를 만들고 남은 효소로 만든 발효식품이다. 맥주는 물, 홉 그리고 이스트로 만드는 자연발효주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스트가 점점 커가면서 많은 양이 생산되는데 이것을 따로 모아 단백질 섞은 물과 혼합하여 끓여주면 찐득한 마마이트가 탄생한다. 호불호가 강하지만 이 마마이트를 빵에 발라먹기도 하고 트러플을 섞어 음식에 맛을 더하는 소스로 쓰기도 한다.
처음 영국에 와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내 몫으로 받아 들고는 깜짝 놀랐다. 물론 각자의 기호에 따라 넣고 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햄, 베이컨, 계란프라이, 해시브라운이라는 감자튀김, 구운 토마토와 버섯, 베이크빈스, 블랙푸딩이라는 꼭 우리나라 순대 비슷한 음식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함께 토스트랑 발라먹을 잼, 마멀레이드 그리고 홍차가 제공된다.
양도 많고 무엇보다 단백질이 가득 담긴 이 아침식사를 먹은 날, 저녁 식사 시간까지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대체 야채는 언제 먹어?" 남편에게 물으니 "감자도 야채야" 하면서 웃는다. 이렇게 매일 아침 식사를 하면 근육질의 슈퍼맨이라도 될 것만 같다.
영국 식사는 단백질, 탄수화물이 많지만, 비타민이나 식이섬유, 유산균이 부족하다. 직접 살면서 보니 영국 식문화가 이해되기도 한다. 지금이야 남부 유럽에서 싱싱한 야채들을 얼마든지 수입해서 먹지만, 옛날 영국은 비와 바람이 많고 일조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채소를 길러 먹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신 푸른 초원에서 소, 돼지, 양 등 목축업이 비교적 쉽고, 감자, 당근 같은 구황작물이나 콩, 양배추 같은 채소들이 쉽게 자란다. 여름이면 딸기나 구스베리 같은 베리류가 잘 자라고 가을이면 동네마다 사과 수확에 한창이다.
영국 사람들은 평소 느끼함을 잡기 위해 생선이나 감자튀김에 식초를 뿌려 먹는다. 맥도널드 가면 사이드 메뉴가 있듯이 피시 앤 칩스 매장에는 주로 양파 피클 그리고 계란 피클이 있다. 하루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1 파운드를 내고 계란 피클을 사이드로 주문했다.
짝꿍은 먹고 나서 트림하지 말라고 놀리는데, 농담이 아닌 것 같다. 계란 노른자 단백질과 시큼한 식초맛이 만나 오묘하지만 피시 앤 칩스의 느끼함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 난 나쁘지 않다. 발효식품이다 보니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잼은 아니고 그렇다고 시럽도 아닌 피클과 소스 중간 즈음 처트니(Chutney)가 있다. 주로 과일에 식초와 설탕을 넣어 만드는데 우리나라 유자청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요즘 칠리 처트니가 유행이다.
고추의 매운맛이 등급별로 나눠져 있는데 달지만 제법 입안 매운 기운이 감돈다. 유산균이 아주 풍부해 소화에도 좋고 무엇보다 치즈 얹은 크래커에 처트니 한 스푼 올리면 열량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맛이다.
▲ 영국의 애플 사이다. 달콤한 탄산 같은 부드러운 목 넘김에 정신을 놓았다가는 알딸딸 취하기 십상이다. |
ⓒ 김명주 |
영국 남서부에는 '애플사이다'라는 달콤한 5도짜리 술이 유명하다. 이태원에서 영국 친구가 사이다라는 말에 음료를 시켰다가 "이건 레모네이드잖아" 실망했던 이유다. 달콤한 탄산 같은 부드러운 목 넘김에 정신을 놓았다가는 알딸딸 취하기 십상이다.
사과 식초도 많이들 만든다. 이 밖에도 우스터 지방의 우스터소스, 워체스터 브라운소스, 지역 머스터드 소스 등 제법 유명한 브랜드화된 소스들이 있다. 샌드위치나 아침식사할 때 많이들 곁들여 먹는 발효 소스들이다.
김치, 고추장, 된장뿐만 아니라 홍어도 삭혀 먹는 대한민국 사람이 보기에는 아직도 영국 땅에 알리고 싶은 발효 식품이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 지도 하나쯤 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게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