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집안의 맛이 보물됐네…전통주 지켜낸 명인들 [푸디인]

대 이은 집안의 맛이 보물됐네…전통주 지켜낸 명인들 [푸디인]

[푸디人-5] 전통주 명인들(feat. 주봉석 전통민속주협회 사무국장)

조선 시대에는 집집이 빚는 술인 ‘가양주’가 다양했다. 가장 접하기 쉬운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뿐만 아니라 산에서 나는 약초, 뱀 등 동물성 원료까지 다양하게 활용해 많은 술이 쏟아졌다. 고급 재료들은 왕실과 양반 가문이 독차지 했지만 백성들도 술의 미학(美學)을 탐닉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의 영향으로 대한제국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주세법을 1907년 최초 도입하면서 서서히 가양주는 쇠락해갔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총독부가 1916년 강화된 주세령으로 제한면허제를 시행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집에서 만드는 술에 대해서도 자가용 제조 면허를 받도록 했으며 자가용 술에 대해서는 시판하는 술보다 높은 세율을 매겼다. 또한 가양주를 타인에게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면허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이 그 면허를 이어받을 수 없게 해 사실상 조선의 가양주를 말살하려 했다.

그 결과, 면허자는 거의 남지 않게 되었고 많은 가양주들이 밀주가 되어 지하로 숨거나 사라졌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오던 전통주들은 한국전쟁 때 또다시 수난을 당했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생산 설비가 파괴되었다. 특히 남한의 전통주 경영자들과 기술자들은 인민군과 중공군의 표적이 되어 목숨을 잃거나 납치당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식량 사정이 궁핍해 쌀이 많이 소비되는 전통주 제조를 허가할 상황이 아니었고 1965년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전통주 생산은 중단됐다.

빛을 잃어가던 전통주는 1977년 식량사정 개선으로 탁주에 쌀 사용이 다시 허가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준비 과정에서 전통주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86년 ‘향토술 담그기’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국가지정 8대 민속주’의 판매를 허용했다.

이후 가문의 후손들과 전통주에 대한 남다른 집념을 가진 선구자들 덕분에 많은 전통주가 다시 세상에 나와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미약하나마 소개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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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경쟁, 안동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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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왼쪽)와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
제품명 :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 /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

식품유형 : 증류식소주

에탄올 함량 : 45%

제조사 : 민속주 안동소주 / 명인 안동소주

원재료 및 함량 : 쌀(국내산), 누룩(통밀) / 백미(국내산), 조제종국, 효모, 누룩, 정제효소제

특징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조옥화 명인) / 전통식품 명인 6호(박재서 명인)



안동에서 소주의 제조법이 발달한 것은 원나라의 한반도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13세기 원나라는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안동에 병참기지를 뒀다. 당시 원나라 병사들은 가죽 술부대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마셨을 만큼 소주는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동소주는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약 700년 넘게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안동소주 명인으로는 조옥화 명인과 박재서 명인이 있다.

지난 2020년 향년 98세로 별세한 조 명인은 ‘무형문화재’와 ‘명인’이란 타이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안동 식문화의 전설이다. 1983년 지역 고유의 술을 만들기 위해 친정집과 시집에서 배운 가양법 중 장점만 골라 조선 시대 임금에게 진상됐던 안동소주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공헌을 인정받아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안동소주 기능보유자), 2000년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명맥이 끊겼던 안동소주를 88올림픽을 앞두고 부활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여왕 생일상도 명인이 차렸다.

민속주 안동소주의 가장 큰 특징은 누룩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민속주라는 이름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만 사용할 수 있어 민속주 안동소주는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가 유일하다. 현재는 조옥화 여사의 아들 김연박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20-가호)에게 전승시켰다.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는 안동의 반남 박씨의 가양주로, 25대손인 박 명인이 정통성을 이어오고 있다. 박 명인은 1995년 전통식품 명인 6호로 지정되었다. 명인 안동소주는 막걸리 상태에서 증류한 일반 방식과는 달리 청주를 한번 더 발효시켜 증류한 술을 100일 이상 숙성시킴으로써 쌀 특유의 화근내를 제거하고 부드럽다.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는 안동소주 고유의 향과 맛을 지키는 반면,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는 향과 맛이 깔끔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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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이자 명인인 고 조옥화 여사와 박재서 명인
1300년 전 백제인이 마신 한산소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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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불소곡주와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오크블루(파란 빈티지)
제품명 : 오크불소곡주(오크블루)

식품유형 : 리큐르

에탄올 함량 : 43%

제조사 : 한산소곡주

원재료 및 함량 : 멥쌀(국내산), 누룩(밀:국내산), 정제수, 꿀(국내산), 들국화, 생지황, 메주콩, 생강, 홍고추

특징 :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식품명인 19호(우희열 명인)



한산소곡주는 1300년전 백제왕실에서 즐겨 마시던 술이며, 가장 오래된 술로 알려져 있는 특산품 중 하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다안왕(多晏王) 11년 318년에 추곡이 흉작 되자 민가에서 제조하는 가양주를 전면 금지하였다 전한다. 무왕37년(635년) 3월에는 조정신하들과 현 백마강 고란사 부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관과 함께 소곡주를 마시어 그 흥이 극치에 달했다 하고, 의자왕 16년(656) 3월에 왕이 음주 탐락 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소곡주라 이름 붙인 연유도 백제가 멸망하여 한을 달래기 위해 한산 건지산 주류성에서 백제 유민들이 흰 소복을 입고 술을 빚어 마셨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누룩을 적게 사용해 빚는다는 뜻으로 소곡주 또는 소국주라 불리기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란 애칭도 갖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소곡주의 매력에 빠져 과거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19세기 조선 실학자 이규경은 자신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감홍로, 백주, 호산춘과 함께 소곡주를 조선시대 4대 명주로 기록했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한산소곡주는 1979년 김영신 여사가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명맥을 잇게 됐다. 이후 김 여사의 며느리인 우희열 여사가 1997년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로 승계받았으며, 1999년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9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아들(나장연)과 술을 빚고 있으며, 인근에 60여곳의 양조장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한산소곡주는 엷은 담황색을 띠며 은은한 향과 혀끝을 감아도는 감칠맛이 일품이며 또한 아스파탐이나 올리고당 등 식품첨가물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순수한 곡주의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다. 술을 빚을 때 가을 국화를 넣어 달큰한 꽃향기가 나다가 은은한 생강 향이 나기도 한다.

특히 오크불소곡주(오크블루)는 오크통에서 불소곡주를 장기간 숙성해 누룩향을 낮추고 나무와 흙, 불이 만난 스모키한 향을 높였다. 2022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옛 문헌에는 미나리 전이나 떡을 한산소곡주 안주로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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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소곡주 우희열 명인
김정일 위원장도 극찬한 문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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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술
제품명 : 문배술

식품유형 : 소주

에탄올 함량 : 40%

제조사 : 문배주양조원

원재료 및 함량 : 증류원액(조(국산), 수수(국산), 효모, 국, 정제수)

특징 : 국가무형문화재 제86-1호, 대한민국 식품명인 7호(이기춘 명인)



문배술은 본래 평안남도 평양 지역에서 전해지던 향토주이다. 그 중 이병일 옹이 평양 근처에 양조장을 설립해 문배술을 제조했고 후에 그 아들인 이경찬 옹(1915~1993)이 3대 전수자로서 양조장을 이어받아 문배술과 감홍로를 생산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한동안 생산이 중단됐고 남한으로 피난 온 이경찬 옹은 다시 집안의 가업을 잇기 위해 서울에서 양조장을 설립해 ‘거북선’이라는 술을 내놨다. 그러나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또다시 술 생산이 금지되었다. 그렇게 명맥이 끊길 것 같았던 문배술은 1970년대 전통주 복원바람이 불면서 다시 제조할 수 있게 되었고, 양조비법을 수 대째 이어오던 문배술은 1986년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86-1호로 지정됐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된 전통주는 3가지인데 나머지 술은 면천두견주와 교동법주이다.

이경찬 옹은 첫째 아들 이기춘 명인에게 문배술을 전수했으며, 이기춘 명인의 아들 이승용씨가 현재 전수교육을 받고 있다. 4대 전수자 이기춘 명인은 대한민국식품명인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래 설명할 감홍로는 이경찬 옹의 딸인 이기숙 명인이 만들고 있다.

문배주는 찰수수, 메조를 누룩과 발효 후에 그 술을 증류하여 얻은 순수한 증류주이다.

한국 전통주로서는 특이하게 쌀을 전혀 쓰지 않고 밀(누룩), 수수, 조만으로 만들어지는데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평안도 지방에서 제법이 발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수가 주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중국 고량주와도 닮은 향과 맛이 난다.

발효 혼합물에 첨가된 곡류 이외의 전분 또는 설탕 같은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향을 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맑고 깨끗하다. 그런데도 문배주는 문배나무의 열매 향기가 나는 특이한 술이다. 문배는 가을 돌배의 한 종류로, 그 향은 일반 배보다 뛰어나다.

과실류의 꽃에서 느껴지는 상큼하고 농밀한 향은 입안 가득 긴 여운으로 남는다. 문배주는 도수 40%만 출시되다가 젊은 층이나 여성을 타겟으로 도수를 낮춰 23%, 25%도 출시하고 있다.

문배주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공식 건배주로 쓰였다. 당시 문배술이 나오자 김정일 위원장은 “문배술은 평양 주암산 물로 만들어야 제맛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7년과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공식 만찬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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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문배주 양조원 대표 이기춘
대통령 단골 명절 선물 이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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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주
제품명 : 이강주

식품유형 : 리큐르

에탄올 함량 : 25%

제조사 : 전주이강주

원재료 및 함량 : 정제수, 쌀(국산), 정맥(국산), 배(국산, 4%), 생강(국산, 0.1%), 울금, 계피, 꿀, 효모, 누룩 조효소제

특징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 대한민국 식품명인 9호(조정형 명인)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감홍로, 죽력고와 함께 이강주를 조선의 3대 명주라 꼽는다. 이 책은 조선의 풍속과 전통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쉽게 쓴 세시풍속 상식사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면천두견주와 경성과하주를 포함해 5대 명주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이강주는 조선시대부터 상류층에서 즐겨 마셨던 고급술로 다양한 문헌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강주는 전통 소주에 배와 생강이 들어간다고 하여 이강주라고 불린다. 예전에는 술보다는 약의 의미가 강해 ‘고아내려 만든다’라는 의미로 이강고라고도 불렸다.

배의 시원한 청량감, 알싸한 생강, 노란빛을 내는 한약재 울금, 달고 매운 계피, 목 넘김을 부드럽게 해주는 꿀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예로부터 전라도에서 이강주의 재료인 울금을 재배해 왕실에 올렸기에 전라도 곳곳에서 이강주를 많이 빚었다. 또한 태조 이성계와 동고동락을 같이 한 조인옥의 영향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손이 전주의 부사로 오게 되어 집안의 비법으로 이강주를 빚었다. 지금은 조정형 명인이 이어가고 있다.

조 명인은 25년간 주류회사 공장장으로 일하다가 이강주의 복원에 매달렸고 1987년 이강주를 복원했다. 198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1996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9호에 지정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2005년 설 설물로, 문재인 대통령 때인 2020년에도 설 선물로 이강주가 낙점되는 등 대통령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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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주 조정형 명인
토끼를 꼬시기 위한 자라의 덫 ‘감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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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홍로
제품명 : 감홍로

식품유형 : 일반증류주

에탄올 함량 : 40%

제조사 : 농업회사법인 감홍로

원재료 및 함량 : 정제수, 쌀(국내산), 조(외국산), 용안육, 계피, 진피, 정향, 생강, 감초, 자초

특징 : 전통식품명인 제43호(이기숙 명인)



평안도 지역에서 생산된 전통 약소주의 하나인 감홍로(甘紅露)는 ‘맛이 달고 붉은 빛을 띠는 이슬 같은 술’이란 뜻이다.

감홍로에는 용안육, 계피, 진피, 정향, 생강, 감초, 지초 등의 한약재가 들어가 조선시대에는 약을 대신해 마실 정도로 약주로도 활용됐다. 꽃향기와 계피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높은 도수와 강렬한 향에 놀라지만 달콤함이 입 안에 계속 머물며 여운을 남긴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의 저서 ‘경도잡지’에서는 감홍로를 조선의 명주로 꼽고 있으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도 언급되고 있다. 19세기 유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의 감홍로가 있다”고 했고,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주를 언급하면서 그중 감홍로를 첫째로 둘만큼 그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또한 별주부전에서는 토끼의 간이 필요했던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토선생, 용궁에 가면 감홍로도 있다”고 말하며 토끼를 꼬신다. 그리고 춘향전에서 성춘향이 이몽룡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마시는 술도 바로 감홍로가이다.

현재는 2012년 전통식품명인 제43호 지정된 이기숙 명인이 감홍로를 지켜내고 있다. 이 명인의 부친은 문배술과 감홍로를 생산한 이경찬 옹으로 이 명인의 친오빠가 문배술 명인인 이기춘 명인이다.

과거 평양 사람들은 돼지 내장을 재료로 만든 내포중탕과 어울려 먹었다고 전해진다. 최근 조사연구에 따르면 초콜릿케이크가 가장 궁합이 잘 맞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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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홍로 이기숙 명인

4 Comments
자유인202 2023.12.10 17:55  
만물 일제타령 어휴 지역술도가들도 집안 전통누룩 안쓰고 입국이니 백국이니 개량누룩써서 대량생산 균일 술맛으로 본인들이 바꾼거다
공장형태의 큰 주조회사도 일제부터 시작된것도 맞고
쌀이야 원래 귀해서 원조 밀등을 써서 만들다보니 숙취가 심한 막걸리 등이 나왔던것도 맞고
대량생산 개량누룩등은 어떤것이든 그리되는게 순리고
저렇게 전통지켜오는 분들 계시는것도 자연스러운거고
그저 무조건 일제 타령하는거 좀 웃기지않나
자유인78 2023.12.10 17:55  
소곡주~~ 사랑해요 ^^~ 너무 맛있어요 ㅎㅎ
자유인59 2023.12.10 17:55  
식량부족때문에~ 춘궁기에는 아사자들이 넘쳐 쌀을 원료로 술을 담그는 게 위법이었다. 전두환대통령 때! 비로소 쌀막걸리를 허용해 지금의 민속주가 되살아난 거다. 뭐? 노구리재앙이? 그 것들은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덜렁 올려놓았을 뿐...
자유인294 2023.12.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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