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립여당 기반 '창가학회' 이케다 명예회장 별세... 정치권 영향에 촉각
자유인137
세계
5
968
2023.11.19 21:14
공명당 전신 창립자... 추후 분리
600만 명 조직표로 선거 영향
자민-공명 연립 정권 영향 촉각일본 신흥종교이자, 현재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창가학회의 이케다 다이사쿠 명예회장이 15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8년 촬영한 이케다 회장의 생전 모습.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신흥종교 '창가학회'의 이케다 다이사쿠(95)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에 일본 정계가 술렁이고 있다. 선거 때 지역구는 자민당, 비례표는 공명당에 집중적으로 투표했던 창가학회 신도들이 구심점을 잃어 여권의 선거 조직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명당의 창립자이기도 한 고인은 창가학회 신도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여겨져 왔다.
창가학회는 1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케다 명예회장이 지난 15일 밤 도쿄 신주쿠구의 자택에서 향년 95세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전후 1947년 창가학회에 입회한 고인은 1960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3대 회장이 됐다. 그의 회장 재임 중 창가학회의 일본 회원 수는 140만여 가구에서 800만여 가구로 늘어나는 등 교세가 급속히 확장했다.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한 노동자와 서민을 대상으로 물질적·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꿈꾸라며 포교한 것이 호소력을 발휘했다.
소년 시절 태평양전쟁을 경험하며 강한 반전 의식을 가졌던 고인은 국제 교류와 평화 운동에 앞장서 유엔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정치권과 오랜 교류를 해 왔고, 한국에 대해서도 '일본이 조선 침략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가학회 회장이 된 이듬해 공명당의 전신인 공명정치연맹을 창설하는 등 '평화 사회 건설'이란 이념을 위해 종교뿐 아니라 정치에도 관여했다.
2007년 4월 13일 원자바오(왼쪽) 당시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는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 이달 15일 별세한 고인은 생전 중국 유력 정치인들과 깊은 교류를 맺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정교 분리 여론에 따라 공명당과 분리됐으나, 창가학회는 선거 때마다 발휘되는 신자들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일본 정계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민당 우호 단체로 공인된 20여 곳의 종교단체 중 '신토정치연맹'의 규모가 가장 크지만 선거에서 득표력은 수십만 표에 그친다. 반면 창가학회의 득표력은 정점일 때 850만 표에 달했다. 신자의 고령화 등으로 조직력이 약해진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도 비례대표 득표 수가 618만 표였다. 중의원 선거구당 1만~2만 표에 이르는 공명당의 조직표는 야당과의 경쟁이 치열한 지역구의 자민당 의원에겐 낙선과 당선을 가르는 생명줄이다.
18일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뿐 아니라, 야당 대표들까지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추도사를 발표한 것도 창가학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 준다. 기시다 총리는 "별세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고인은 국내외에서 평화, 문화, 교육 진흥에 힘쓰면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애도했다.
정신적 지주를 잃은 공명당의 조직력이 급속히 약해질 경우, 기시다 정권 출범 이후 삐걱거리고 있는 자민·공명당 연립 정권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공명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제 개정이나 '반격 능력' 보유를 담은 안보3문서 개정 등 자민당의 방위력 강화 추진 과정에서 '브레이크' 역할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최근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등 당내 보수파의 불만이 컸다.
특히 기시다 내각 발족 후 자민당 내에서 공명당 대신 국민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모색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자, 올해 공명당은 도쿄 지역에서 자민당과의 선거 협력을 일시 중단한 적도 있다. 지지통신은 "연립정권 안정에 이케다 명예회장의 역할이 컸다"며 향후 연정의 앞날을 우려하는 한 자민당 인사의 말을 전했다.
600만 명 조직표로 선거 영향
자민-공명 연립 정권 영향 촉각일본 신흥종교이자, 현재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창가학회의 이케다 다이사쿠 명예회장이 15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8년 촬영한 이케다 회장의 생전 모습.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신흥종교 '창가학회'의 이케다 다이사쿠(95)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에 일본 정계가 술렁이고 있다. 선거 때 지역구는 자민당, 비례표는 공명당에 집중적으로 투표했던 창가학회 신도들이 구심점을 잃어 여권의 선거 조직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명당의 창립자이기도 한 고인은 창가학회 신도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여겨져 왔다.
생전 "일본은 조선 침략 사과해야" 주장도
창가학회는 1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케다 명예회장이 지난 15일 밤 도쿄 신주쿠구의 자택에서 향년 95세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전후 1947년 창가학회에 입회한 고인은 1960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3대 회장이 됐다. 그의 회장 재임 중 창가학회의 일본 회원 수는 140만여 가구에서 800만여 가구로 늘어나는 등 교세가 급속히 확장했다.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한 노동자와 서민을 대상으로 물질적·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꿈꾸라며 포교한 것이 호소력을 발휘했다.
소년 시절 태평양전쟁을 경험하며 강한 반전 의식을 가졌던 고인은 국제 교류와 평화 운동에 앞장서 유엔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정치권과 오랜 교류를 해 왔고, 한국에 대해서도 '일본이 조선 침략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가학회 회장이 된 이듬해 공명당의 전신인 공명정치연맹을 창설하는 등 '평화 사회 건설'이란 이념을 위해 종교뿐 아니라 정치에도 관여했다.
2007년 4월 13일 원자바오(왼쪽) 당시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는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 이달 15일 별세한 고인은 생전 중국 유력 정치인들과 깊은 교류를 맺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총선 때마다 창가학회 조직표 영향력 커
이후 정교 분리 여론에 따라 공명당과 분리됐으나, 창가학회는 선거 때마다 발휘되는 신자들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일본 정계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민당 우호 단체로 공인된 20여 곳의 종교단체 중 '신토정치연맹'의 규모가 가장 크지만 선거에서 득표력은 수십만 표에 그친다. 반면 창가학회의 득표력은 정점일 때 850만 표에 달했다. 신자의 고령화 등으로 조직력이 약해진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도 비례대표 득표 수가 618만 표였다. 중의원 선거구당 1만~2만 표에 이르는 공명당의 조직표는 야당과의 경쟁이 치열한 지역구의 자민당 의원에겐 낙선과 당선을 가르는 생명줄이다.
18일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뿐 아니라, 야당 대표들까지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추도사를 발표한 것도 창가학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 준다. 기시다 총리는 "별세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고인은 국내외에서 평화, 문화, 교육 진흥에 힘쓰면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애도했다.
자민·공명당 연립정권 영향에 촉각
정신적 지주를 잃은 공명당의 조직력이 급속히 약해질 경우, 기시다 정권 출범 이후 삐걱거리고 있는 자민·공명당 연립 정권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공명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제 개정이나 '반격 능력' 보유를 담은 안보3문서 개정 등 자민당의 방위력 강화 추진 과정에서 '브레이크' 역할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최근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등 당내 보수파의 불만이 컸다.
특히 기시다 내각 발족 후 자민당 내에서 공명당 대신 국민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모색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자, 올해 공명당은 도쿄 지역에서 자민당과의 선거 협력을 일시 중단한 적도 있다. 지지통신은 "연립정권 안정에 이케다 명예회장의 역할이 컸다"며 향후 연정의 앞날을 우려하는 한 자민당 인사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