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늘고 빈집 줄고... 백종원 없이도 성공한 동네
자유인206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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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 16:39
[서평] 서울공화국의 전복을 꿈꾸는 7인의 도전기, 윤찬영 작가 '로컬혁명'
355만 명. 지난해 충남 예산군을 찾은 관광객 숫자다. 군에 따르면 2022년에 비해 34만 명(10.6%) 증가했다. 지역 안팎에서는 '백종원 매직'이 통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자신의 자본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진행하는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자연스레 외지 방문객 유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청년 이탈과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놓긴 농촌지역으로선 기적과도 같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점점 쪼그라드는 '서울 밖'에서 지방소멸을 막고 살맛 나는 지역을 만들고자 일을 벌인 사람들은 백종원 대표 외에도 많다. 책 <로컬혁명>에는 이처럼 "서울공화국의 전복을 꿈꾸는 혁명가" 7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저출산·지역소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 <로컬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책을 써온 윤찬영 작가가 이들을 직접 인터뷰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사들을 단행본으로 엮어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인 그 역시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난해 7월 '기찻길옆골목책방'을 열고 이 공간을 중심으로 익산역 앞 골목을 되살리는 여러 활동을 계획 중이다.
공간과 관계가 생겨나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지역 활동가들의 사업이나 철학은 단 하나도 겹치는 게 없다. 로컬을 대하는 자세, 문제의식, 프로젝트의 방향이 저마다 달라서 글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각양각색의 실험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는 발길이 끊긴 충남 공주 제민천 서쪽 봉황동을 기점으로 골목의 풍경을 획기적으로 바꿔낸 인물이다. 처음에 그는 관광 관련 공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경력을 살려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세웠다. 그러다 꿈이 더 커졌다. 한 동네에 묵으며 문화·역사 자원과 카페·책방 등을 즐길 수 있는 '마을 스테이'를 만들고자 2019년 퍼즐랩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먹고, 자고, 일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꾸려지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서울·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사업인 '청년마을 만들기' 지역으로 뽑혔다. 한 해 동안 142명이 공주 청년마을 '자유도'를 찾아왔고, 이 중 20명 넘는 청년이 공주에 남아 창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거나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엔 40~50대를 대상으로 '중년마을'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띄웠다. 단순히 귀농·귀촌 교육을 제공하고 정착지원금을 준 뒤 끝나는 게 아니라, 한번 살아보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권 대표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이 되려면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봤다. 그 지역과 계속 연결될 수 있는 관계, 이른바 생활인구(관계인구) 늘리기가 로컬사업의 핵심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그가 운영하는 퍼즐랩은 관계에 초점을 맞춘 워케이션 프로그램인 '로그인 공주'와 '마을 MICE(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 사업'을 기획·준비하며 '마을 스테이'라는 꿈을 더 크고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빈집 넘치던 시골마을, 멋스러운 예술거리로 변하다
박경아 세간 대표는 버려진 빈집이 우후죽순 늘어가던 충남 부여 규암리의 작은 시골마을에 멋스러운 골목을 조성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전통 미술공예에 조예가 깊은 박 대표는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을 일상에 뿌리내리며 지키고자 대학교 4학년 때 서울에 관련 가게를 열었다. 그러나 매번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비싼 월세 때문에 몸살을 앓은 뒤로 '부동산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공부를 시작한 끝에 '자온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렇게 주민들이 떠난 빈 마을에 책방, 카페, 공방들을 열어 오고 싶고 살고 싶은 골목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박 대표는 마을에 버려진 오래된 집들을 되살려 한옥만의 멋을 느낄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옛 담배 가게와 살림집을 손 봐서 문을 연 '책방 세간', 일본식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100년 된 집에 차린 복합문화공간 '이안당', 술을 팔던 요정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카페 '수월옥', 버려진 양조장을 술집으로 되살린 '자온양조장' 등이 대표적이다.
낡을 공간을 찾아다니는 그를 처음엔 주민들이 투기꾼인 줄 알고 경계했지만, 달라지는 마을 풍경을 보고 그들의 생각도 달라졌다고. "해마다 7~8씩 들어오던 멸실 신청"에 눈에 띄게 줄었고, "다들 죽은 상권이라 여기던 마을"에 카페만 10개가 생기니 주민들도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을 터다. 부여읍에 있던 부여도서관도 이 마을로 이전이 결정될 정도로 규암리는 다시 사람이 찾아오는 동네로 변화 중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전북 군산에서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해가며 신선한 주목을 받고 있는 조권능 지방 대표 ▲인천 개항로를 '힙한' 놀이터로 재탄생시킨 이창길 개항로프로젝트 대장 ▲부산 영도에 '일하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끄티-봉래'를 세운 김철우 RTBP 얼라이언스 대표 ▲로컬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전북 임실치즈마을 운영위원장 ▲지역잡지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제주 'inn' 제작자인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등의 경험담이 실렸다.
지방소멸 극복을 고민하는 지자체와 로컬 활동가 등에게는 7명의 사례가 좋은 벤치마킹 교과서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터뷰에 나선 인물들은 하나같이 '남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는' 사업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역마다 특성이나 주민 반응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공간을 만들고 정부 지원사업을 유치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의 교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로컬 사업은 "자신만의 눈으로 도시를 분석"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연재기사 보기 https://omn.kr/24bby
355만 명. 지난해 충남 예산군을 찾은 관광객 숫자다. 군에 따르면 2022년에 비해 34만 명(10.6%) 증가했다. 지역 안팎에서는 '백종원 매직'이 통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자신의 자본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진행하는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자연스레 외지 방문객 유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청년 이탈과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놓긴 농촌지역으로선 기적과도 같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점점 쪼그라드는 '서울 밖'에서 지방소멸을 막고 살맛 나는 지역을 만들고자 일을 벌인 사람들은 백종원 대표 외에도 많다. 책 <로컬혁명>에는 이처럼 "서울공화국의 전복을 꿈꾸는 혁명가" 7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 책 <로컬혁명> 앞표지 |
ⓒ 스탠다드북스 |
저출산·지역소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 <로컬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책을 써온 윤찬영 작가가 이들을 직접 인터뷰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사들을 단행본으로 엮어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인 그 역시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난해 7월 '기찻길옆골목책방'을 열고 이 공간을 중심으로 익산역 앞 골목을 되살리는 여러 활동을 계획 중이다.
공간과 관계가 생겨나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지역 활동가들의 사업이나 철학은 단 하나도 겹치는 게 없다. 로컬을 대하는 자세, 문제의식, 프로젝트의 방향이 저마다 달라서 글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각양각색의 실험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는 발길이 끊긴 충남 공주 제민천 서쪽 봉황동을 기점으로 골목의 풍경을 획기적으로 바꿔낸 인물이다. 처음에 그는 관광 관련 공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경력을 살려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세웠다. 그러다 꿈이 더 커졌다. 한 동네에 묵으며 문화·역사 자원과 카페·책방 등을 즐길 수 있는 '마을 스테이'를 만들고자 2019년 퍼즐랩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 공주 제민천 골목 풍경 |
ⓒ 퍼즐랩 |
먹고, 자고, 일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꾸려지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서울·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사업인 '청년마을 만들기' 지역으로 뽑혔다. 한 해 동안 142명이 공주 청년마을 '자유도'를 찾아왔고, 이 중 20명 넘는 청년이 공주에 남아 창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거나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엔 40~50대를 대상으로 '중년마을'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띄웠다. 단순히 귀농·귀촌 교육을 제공하고 정착지원금을 준 뒤 끝나는 게 아니라, 한번 살아보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권 대표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이 되려면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봤다. 그 지역과 계속 연결될 수 있는 관계, 이른바 생활인구(관계인구) 늘리기가 로컬사업의 핵심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그가 운영하는 퍼즐랩은 관계에 초점을 맞춘 워케이션 프로그램인 '로그인 공주'와 '마을 MICE(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 사업'을 기획·준비하며 '마을 스테이'라는 꿈을 더 크고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 청년마을에 참여한 청년들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
ⓒ 퍼즐랩 |
빈집 넘치던 시골마을, 멋스러운 예술거리로 변하다
박경아 세간 대표는 버려진 빈집이 우후죽순 늘어가던 충남 부여 규암리의 작은 시골마을에 멋스러운 골목을 조성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전통 미술공예에 조예가 깊은 박 대표는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을 일상에 뿌리내리며 지키고자 대학교 4학년 때 서울에 관련 가게를 열었다. 그러나 매번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비싼 월세 때문에 몸살을 앓은 뒤로 '부동산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공부를 시작한 끝에 '자온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렇게 주민들이 떠난 빈 마을에 책방, 카페, 공방들을 열어 오고 싶고 살고 싶은 골목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러 거리들의 흥망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거리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생겼어요. 좋은 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싼 임대료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일을 놓아야 하는 동료들을 보면 늘 안타깝기도 했죠. 그래서 그들이 마음 편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섰고, 사람들이 떠난 비어있는 마을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어요." - 52쪽
특히 박 대표는 마을에 버려진 오래된 집들을 되살려 한옥만의 멋을 느낄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옛 담배 가게와 살림집을 손 봐서 문을 연 '책방 세간', 일본식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100년 된 집에 차린 복합문화공간 '이안당', 술을 팔던 요정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카페 '수월옥', 버려진 양조장을 술집으로 되살린 '자온양조장' 등이 대표적이다.
낡을 공간을 찾아다니는 그를 처음엔 주민들이 투기꾼인 줄 알고 경계했지만, 달라지는 마을 풍경을 보고 그들의 생각도 달라졌다고. "해마다 7~8씩 들어오던 멸실 신청"에 눈에 띄게 줄었고, "다들 죽은 상권이라 여기던 마을"에 카페만 10개가 생기니 주민들도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을 터다. 부여읍에 있던 부여도서관도 이 마을로 이전이 결정될 정도로 규암리는 다시 사람이 찾아오는 동네로 변화 중이다.
▲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
ⓒ 세간 |
▲ 박경아 세간 대표가 옷을 만들고 있다 |
ⓒ 세간 |
책에는 이밖에도 ▲전북 군산에서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해가며 신선한 주목을 받고 있는 조권능 지방 대표 ▲인천 개항로를 '힙한' 놀이터로 재탄생시킨 이창길 개항로프로젝트 대장 ▲부산 영도에 '일하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끄티-봉래'를 세운 김철우 RTBP 얼라이언스 대표 ▲로컬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전북 임실치즈마을 운영위원장 ▲지역잡지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제주 'inn' 제작자인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등의 경험담이 실렸다.
지방소멸 극복을 고민하는 지자체와 로컬 활동가 등에게는 7명의 사례가 좋은 벤치마킹 교과서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터뷰에 나선 인물들은 하나같이 '남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는' 사업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역마다 특성이나 주민 반응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공간을 만들고 정부 지원사업을 유치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의 교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로컬 사업은 "자신만의 눈으로 도시를 분석"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연재기사 보기 https://omn.kr/24b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