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신인작가에 암보험부터 권해 세계 휩쓰는 K콘텐츠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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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17:38
웹툰 수출 증가율 전체 콘텐츠 중 1위 '효자'
반면 작가들은 경제적 어려움·건강악화 호소
'예술인 산재보험' 유명무실, 작가 혼자 감당
"예술인도 산재 당연 적용, 사업주가 책임져야"지난해 11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웹툰 잡 페스타'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웹툰 그리던 방에만 들어가면 공황 발작이 왔어요.”
7년 차 웹툰작가 A(30)씨는 몇 년 전부터 공황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약을 먹고 있다. 매주 65컷의 웹툰을 그려야 했는데, 한 컷 그리는 데만 최소 1시간이 걸렸다. 스토리 짜는 시간까지 합하면 일주일 작업 시간은 70~80시간을 훌쩍 넘겼다. 마감 전 하루나 이틀은 꼬박 밤을 새우는 일상이 2년 정도 계속되자 몸과 마음이 급격히 무너졌고, 그때부터 웹툰 작화를 포기하고 스토리와 콘티(그림 구성) 작업만 하고 있다. 그는 “웹툰 작가가 대부분 20, 30대인데 정신과 질환은 하나씩 있고, 지인 중 암 환자도 2명이나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K콘텐츠’의 이면이다.
음악, 게임, 영화, 만화 등 한국 콘텐츠 산업은 매출액과 수출액 모두 성장 곡선을 그리며 질주하고 있다. 특히 만화는 지난해 상반기 수출액이 8,900만 달러(약 1,2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71.3%나 증가해 전체 콘텐츠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플랫폼은 지난해 1~10월 전 세계 만화 앱 수익 1~4위를 휩쓰는 등 만화 종주국 일본, 콘텐츠 강국 미국까지 제치며 활약 중이다.
웹툰이 영상화되고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사업 영역도 넓어지면서 성장 잠재력도 크다. 이에 대학들도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대폭 확대하면서 2018년 18개에 불과하던 웹툰 관련 학과가 지난해에는 60여 개로 늘었다. '화려한 미래 먹거리'에 돈과 사람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2023년 상반기 콘텐츠 산업 동향.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하지만 웹툰 작가들의 창작 환경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정화인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장작노동자지회 사무장은 “웹툰 작가 연봉이 1억 원이라는 말이 떠돌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많이 버는 꿈의 직업처럼 비친다”며 “하지만 웹툰 독자라면 한 번쯤 봤을 ‘작가의 건강 사정으로 휴재한다’는 공지에서 어두운 실상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특히 10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50컷 정도였던 연재 분량이 70컷으로 늘면서 작업량도 함께 늘었고 작가들의 건강도 악화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은 하루 평균 10.5시간, 일주일 평균 5.8일 일한다. 이들의 애로 사항 1위는 ‘작업 및 휴식시간 부족’(83.6%)이었고 ‘경제적 어려움’(82.7%)과 ‘건강 악화’(82.5%)를 호소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과도한 작업, 악성 댓글 등으로 인한 정신 건강 문제도 심각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방안 연구’(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의 정신질환 경험률이 61.3%로 예술인 중 가장 높았다.
글로벌 조회 수 142억 회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장성락(당시 37세) 작가가 2022년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고강도 노동이 문제로 떠올랐다. 같은 해 웹툰 ‘록사나’ 작화 작가 ‘여름빛’이 웹툰 플랫폼의 연재 압박 때문에 태아를 유산한 후에도 계속 작업한 사실이 드러나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사과하기도 했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벌업'(왼쪽)과 '록사나'.
작가들은 일하다 얻은 병을 혼자 떠안아야 한다. 웹툰 작가 등이 가입할 수 있는 ‘예술인 산재보험’이 있지만 당사자들은 “있으나 마나 하다”고 말한다. ①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방식(임의가입)인 데다 ②‘예술활동 증명’을 받아야 하고 ③본인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약 때문에 프리랜서 예술인 중 가입자는 5%에 못 미친다. 정화인 사무장은 “웹툰 작가들 사이에는 일을 시작하면 질병에 걸리는 것이 필연적이니 사보험으로 대비하고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신인 작가에게 실비보험과 암보험 가입부터 적극 추천할 정도”라고 전했다.
이에 예술인들은 ①분야와 상관없이 모든 예술인이 ②자동으로 가입되고(당연가입) ③사업주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산재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20년 12월 예술인 고용보험법이 시행돼 예술인들도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 만큼, 산재보험 역시 당연히 적용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예술계는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와 2022년까지 산재보험 문제를 논의했지만 진전이 없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웹툰작가노조 등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작가들은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는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예술인 산재보험 당연 적용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임의가입을 고수하고 사고 위험이 큰 현장 스태프 중심으로 우선 적용하는 방식의 법제화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우려가 크다"며 "배달노동자 등 특수형태고용노동자 일부 직종이 산재보험 당연가입 대상이 된 것처럼 예술인도 당연가입해야 하고, 작가 등이 겪는 질병을 사고보다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가입으로 해야 사업주들도 예술인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고민하고 산재 예방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작가들은 경제적 어려움·건강악화 호소
'예술인 산재보험' 유명무실, 작가 혼자 감당
"예술인도 산재 당연 적용, 사업주가 책임져야"지난해 11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웹툰 잡 페스타'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웹툰 그리던 방에만 들어가면 공황 발작이 왔어요.”
7년 차 웹툰작가 A(30)씨는 몇 년 전부터 공황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약을 먹고 있다. 매주 65컷의 웹툰을 그려야 했는데, 한 컷 그리는 데만 최소 1시간이 걸렸다. 스토리 짜는 시간까지 합하면 일주일 작업 시간은 70~80시간을 훌쩍 넘겼다. 마감 전 하루나 이틀은 꼬박 밤을 새우는 일상이 2년 정도 계속되자 몸과 마음이 급격히 무너졌고, 그때부터 웹툰 작화를 포기하고 스토리와 콘티(그림 구성) 작업만 하고 있다. 그는 “웹툰 작가가 대부분 20, 30대인데 정신과 질환은 하나씩 있고, 지인 중 암 환자도 2명이나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K콘텐츠’의 이면이다.
'K콘텐츠'만 화려한 질주 중
음악, 게임, 영화, 만화 등 한국 콘텐츠 산업은 매출액과 수출액 모두 성장 곡선을 그리며 질주하고 있다. 특히 만화는 지난해 상반기 수출액이 8,900만 달러(약 1,2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71.3%나 증가해 전체 콘텐츠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플랫폼은 지난해 1~10월 전 세계 만화 앱 수익 1~4위를 휩쓰는 등 만화 종주국 일본, 콘텐츠 강국 미국까지 제치며 활약 중이다.
웹툰이 영상화되고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사업 영역도 넓어지면서 성장 잠재력도 크다. 이에 대학들도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대폭 확대하면서 2018년 18개에 불과하던 웹툰 관련 학과가 지난해에는 60여 개로 늘었다. '화려한 미래 먹거리'에 돈과 사람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2023년 상반기 콘텐츠 산업 동향.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웹툰 작가 10명 중 6명 "정신질환 경험"
하지만 웹툰 작가들의 창작 환경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정화인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장작노동자지회 사무장은 “웹툰 작가 연봉이 1억 원이라는 말이 떠돌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많이 버는 꿈의 직업처럼 비친다”며 “하지만 웹툰 독자라면 한 번쯤 봤을 ‘작가의 건강 사정으로 휴재한다’는 공지에서 어두운 실상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특히 10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50컷 정도였던 연재 분량이 70컷으로 늘면서 작업량도 함께 늘었고 작가들의 건강도 악화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은 하루 평균 10.5시간, 일주일 평균 5.8일 일한다. 이들의 애로 사항 1위는 ‘작업 및 휴식시간 부족’(83.6%)이었고 ‘경제적 어려움’(82.7%)과 ‘건강 악화’(82.5%)를 호소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과도한 작업, 악성 댓글 등으로 인한 정신 건강 문제도 심각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방안 연구’(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의 정신질환 경험률이 61.3%로 예술인 중 가장 높았다.
글로벌 조회 수 142억 회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장성락(당시 37세) 작가가 2022년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고강도 노동이 문제로 떠올랐다. 같은 해 웹툰 ‘록사나’ 작화 작가 ‘여름빛’이 웹툰 플랫폼의 연재 압박 때문에 태아를 유산한 후에도 계속 작업한 사실이 드러나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사과하기도 했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벌업'(왼쪽)과 '록사나'.
'있으나 마나 한' 예술인 산재보험 고쳐야
작가들은 일하다 얻은 병을 혼자 떠안아야 한다. 웹툰 작가 등이 가입할 수 있는 ‘예술인 산재보험’이 있지만 당사자들은 “있으나 마나 하다”고 말한다. ①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방식(임의가입)인 데다 ②‘예술활동 증명’을 받아야 하고 ③본인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약 때문에 프리랜서 예술인 중 가입자는 5%에 못 미친다. 정화인 사무장은 “웹툰 작가들 사이에는 일을 시작하면 질병에 걸리는 것이 필연적이니 사보험으로 대비하고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신인 작가에게 실비보험과 암보험 가입부터 적극 추천할 정도”라고 전했다.
이에 예술인들은 ①분야와 상관없이 모든 예술인이 ②자동으로 가입되고(당연가입) ③사업주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산재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20년 12월 예술인 고용보험법이 시행돼 예술인들도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 만큼, 산재보험 역시 당연히 적용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예술계는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와 2022년까지 산재보험 문제를 논의했지만 진전이 없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웹툰작가노조 등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작가들은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는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예술인 산재보험 당연 적용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임의가입을 고수하고 사고 위험이 큰 현장 스태프 중심으로 우선 적용하는 방식의 법제화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우려가 크다"며 "배달노동자 등 특수형태고용노동자 일부 직종이 산재보험 당연가입 대상이 된 것처럼 예술인도 당연가입해야 하고, 작가 등이 겪는 질병을 사고보다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가입으로 해야 사업주들도 예술인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고민하고 산재 예방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