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굴껍데기로 '24억 대박'…통영 숨통 틔운 '기적의 남자'
자유인32
IT과학
13
540
01.04 18:00
━
혁신창업의 길 62. PMI바이오텍
‘바다의 우유’ 굴이 제철이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굴 생산 대국이다. 연간 30만t을 생산해, 3000억원에 가까운 시장을 만들어낸다(2022년 기준). 국내 굴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경남, 특히 통영ㆍ거제 일대는 요즘 굴을 수확하는 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볕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굴 양식으로 소득을 올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양식장 주변 어촌 사람들은 악취 풍기는 ‘산’을 이룬 굴 껍데기로 고통을 호소한다. 다른 조개류와 달리, 생산량의 대부분을 현지에서 껍데기를 벗겨낸 뒤 유통하는 굴의 특성 때문이다. 국내 굴 껍데기 발생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연간 발생하는 패각, 즉 조개껍데기 36만t 중 80%인 29만t이 굴 껍데기다. 이 때문에 지난해까지는 연간 18만t의 굴 껍데기를 해상에 투기하거나 아니면 땅에 묻는 방법을 써왔다. 그나마 나머지 11만t은 발전소와 제철소에서 쓰는 석회석의 대체재로 사용한다. 굴 껍데기를 태우고 분쇄해 농가의 비료로 쓰는 방법도 있지만, 남아있는 염분으로 피해를 본 농민들이 외면하고 있다. 굴 껍데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환경오염물질(VOC) 역시 기후위기 시대의 또 다른 공해다. 결국, 굴 껍데기 처리는 한국 사회에서 풀지 못한 ‘난제’ 중 하나인 셈이다.
━
버려진 굴 껍데기의 변신
세밑,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달 거제 PMI바이오텍을 찾았다. 통영에 가까운 어촌에 접어들자 마을 곳곳에 거칠게 무언가를 쌓아놓은 듯한 희뿌연 색 더미들이 보였다. 비에 씻긴 탓에 악취는 풍기지 않았지만, 굴 껍데기 더미가 분명했다. 푸른 페인트를 칠한 높이 10m, 건평 1650㎡(약 500평)의 PMI바이오텍 공장엔 빗줄기 속에서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남도의 외진 곳까지 내려와 고생한 탓일까. 햇볕에 그을린 듯한 얼굴에 수더분한 인상을 한 박정규(56) 대표가 기자를 맞았다. 박 대표는 연세대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화학연구원에 입사해 20년간 연구경력을 쌓은 소재 연구자다.
━
사회 현안 해결을 연구주제로
Q : 어쩌다 굴 껍데기를 자원화하는 연구를 하게 됐나.
A : 원래는 나노소재 연구를 주로 해왔다. 하지만 2018년 초로 기억한다. 우연히 남해안 어촌의 굴 껍데기 처리가 심각하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 그래도 창업은 또 다른 이야기인데.
A : 오기가 좀 발동했던 것 같다. 굴 껍데기 자원화라는 사회 현안 해결을 주제로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신청했지만 떨어졌다. 당시 굴 껍데기를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발전소나 제철소 공정에 사용하는 연구가 채택됐다. 매년 엄청난 규모로 발생하는 굴 껍데기를 처리하기엔 내 기술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과제 선정이 안 됐으니, 일과 시간 이후 별도의 시간을 내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내가 내 기술로 회사를 세워 내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표는 현재 휴직 상태이긴 하지만 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신분이기도 하다. 화학연구원은 창업자에게 3년까지 급여를 지급하고, 이후 3년까지 무급 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연구자가 원할 경우 창업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영국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은 “공공 분야에서 수행하는 연구가 실험실 수준에서만 그치는 경우도 있는데, PMI바이오텍은 출연연의 기술 이전과 창업을 통해 사회 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
탄소 중립 위한 친환경 기술력
Q : PMI바이오텍만의 기술력은 뭔가.
A : 기존의 고열을 이용한 열처리 방식이 아닌 묽은 염산을 이용한 용액 공정으로 굴 껍데기에서 식품첨가물로 쓸 수 있는 프리미엄급 탄산칼슘을 추출한다. 용해 때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반응시키면 순도 99.5%의 탄산칼슘이 추출되고, 여기서 또 부가가치가 더 높은 구연산칼슘까지 만들어 낸다.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아 친환경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만 말하면 간단한 기술처럼 들리겠지만,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기술이라 자부한다.
박 대표는 2020년 12월 자본금 1000만원으로 스타트업 PMI바이오텍을 시작했다. 특허 기술이 있었기에 투자금을 모으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초기 17억원을 포함해 최근까지 58억원을 모았다. 17개 정부 출연 과학기술 연구기관을 담당하는 기술지주사 한국과학기술지주뿐 아니라 미래기술지주ㆍ하나증권 등 9개 투자기관이 참여했다. 애초엔 전국에서 굴 생산량이 제일 많은 통영에 회사를 세우고 싶었지만, 통영시는 열로 태우는 소각방식의 굴 껍데기 자원화 시설 건설을 위해 150억원의 예산을 이미 책정해 놓은 상태였다. 국내 최대 굴 생산지인 통영으로선 당장 골칫거리인 ‘굴 껍데기산’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박 대표가 통영 대신 이웃 거제에 둥지를 튼 이유다. 거제시는 PMI바이오텍에 여러 행정업무 협조를 약속했다.
Q : 창업 이후 지금까지 어려운 점은.
A : 2020년 말에 법인을 설립하고 2022년 11월 지금의 파일럿 생산을 위한 300t 규모의 공장을 완공했다. 이후 시운전을 거쳐 지난해 5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방식을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는데도 각종 인허가 과정이 너무 복잡해 힘들었다. 굴 껍데기에 대한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굴 껍데기는 원래 폐기물법에 따라 관리되는 ‘쓰레기’로 분류됐지만, 2022년 7월 수산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수산부산물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버려지는 굴 껍데기로 식품첨가물을 만드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이 있어 시장 개척에 어려운 점이 많다. 반면 해외에서는 암석이 아닌 천연물에서 고순도 칼슘제품을 뽑아낸다는 점에 대해 아주 긍정적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매출의 90% 이상이 수출이다.
━
산업용 칼슘으로 제품군 넓힐 계획
PMI바이오텍은 현재로선 고순도 식품첨가물용 칼슘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조만간 생산시설 확대를 통해 산업용 칼슘까지 제품군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칼슘제품은 자동차용 플라스틱 충진재로도 쓸 수 있다. 플라스틱 제품의 단가도 낮추고 강도도 더 높일 수 있다. 최근 국내 한 자동차 메이커의 기술 심사도 통과했다. 박 대표는 “산업용 물꼬가 터지면 식품 첨가물과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양의 굴 껍데기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며 “최종적으로는 연간 10만t까지 산업용 칼슘분말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한 해 국내에 쏟아져 나오는 굴 껍데기의 3분의 2 이상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판건 미래기술지주 대표는 “PMI바이오텍은 한국화학연구원과 대학의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설립된 스타트업” 이라며 “기존에 쓰지 않던 용액공정을 통해 에너지를 아주 적게 사용하면서 동시에 환경오염까지 획기적으로 줄이고 유용한 물질을 얻을 수 있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전망이 밝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