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F-4 뜨면 질겁했다 …北 날래 내리라우 도망 바빠 [이철재의 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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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 05:54
60년 넘게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던 ‘팬텀기’가 퇴역을 명 받았다.
2019년 10월 1일 대구 공군기지(제 1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기념 행사에서 F-4E가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군 당국에 따르면 공군 제10 전투비행단(수원)의 제153 전투비행대대가 올 6월 F-4E 퇴역식을 열 예정이다. 이로써 F-4는 1969년 처음 도입된 뒤 65년 만에 영공수호 임무에서 해제된다. 153대대는 공군의 마지막 팬텀기 부대다.
153대대는 1979년 대구에서 창설된 뒤 F-4E를 쭉 운용해왔다. 1980년 청주 기지로 옮겼고, 2018년 수원 기지로 재이동했다.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라이트닝Ⅱ가 청주에 둥지를 틀게 돼 자리를 내준 것이다.
2022년 수원 공군 기지 제153 전투비행대대의 F-4E 팬텀Ⅱ. 오른쪽 날개 아래에 달린게 AGM-142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이다. 디펜스타임스
공군의 다른 F-4가 퇴역했는데도 135대대에서만 남은 이유는 전략목표 타격 임무 때문이다. 이 부대의 F-4E는 AGM-142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AGM-142는 사거리 80㎞의 정밀 유도무기로 한동안 대북 억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젠 AGM-142가 오래된데다가 더 강력한 최신 무기가 속속 들어오고 있으며 이를 쏘는 F-4E도 낡아, 전투기와 미사일 둘 다 퇴역절차를 밟게 됐다. 국산 전투기인 KF-21 보라매가 올해 양산체제로 들어가면서 F-4E를 대신할 계획이다.
팬텀기에 대한 ‘밀담’을 풀기에 앞서 두 가지. 하나. 팬텀(Phantomㆍ도깨비)은 F-4의 별명이다. 그런데 F-4는 두 번 째 팬텀이기 때문에 ‘팬텀Ⅱ’라 쓰는 게 맞다. 초대 팬텀은 1945년 첫 비행에 성공한 미국 해군의 FH-1이다. FH-1을 만든 맥도널은 나중에 F-4의 제조사 맥도널 더글러스가 된다.
2014년 11월 맥스선더 연합훈련 때 공군의 F-4E가 이륙하고 있다. 디펜스타임스
둘. F-4는 20년 넘게 생산되면서(1958~1981년) 진화해왔다. F-4A부터 F-4E(공군형 기준)까지 크게 5단계를 거쳤다. 퇴역식의 주인공이 될 F-4E는 F-4 개량형 중 최신이다. 그런데 괄호 안의 ‘공군형 기준’은 대체 무슨 뜻인가. 설명은 아래 박스기사에 있다.
1969년 8월 29일 F-4D 인수식. 이날 대구 공군기지에 F-4D 6대가 착륙했다.국가기록원
1969년 8월 30일 중앙일보의 ‘팬텀기의 안전관리’ 사설(社說) 내용이다. 전날인 8월 29일 F-4D 6대가 대구 기지에 내렸다. 중앙일보는 첨단 무기인F-4를 잘 관리하자고 제언한 것이다.
한국의 F-4 보유는 제조국인 미국 이외 영국ㆍ이란 다음이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첫째 가는 동맹국인 일본(1971년)이나, 늘 미국의 첨단 무기를 가장 먼저 받은 이스라엘(1969년 9월 5일)도 한국보다 늦었다. 더군다나 F-4D는 당시 F-4의 최신형이었다. 공군은 F-4D 덕분에 한동안 동북아시아 최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에 F-4를 줬을까.
1968년 북한의 특작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1ㆍ21 사태가 계기다. 그해 1월 23일 미국의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됐다. 한국은 안보위기라고 판단해 월남에 파병한 국군의 철군을 고려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2월 사이러스 밴스 전 국방부 차관을 특사로 보냈다. 한국은 F-4를 요구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보다 군용기가 2배나 많았고, 미그-21 등 최신 전투기도 갖고 있었다. 한국은 단번에 북한을 따라잡고, 아니 북한보다 앞설 ‘게임 체인저’가 필요했고, 그게 F-4였다.
미국은 한국을 달래려 1억 달러의 군사차관을 약속했다. 1968년 4월 18일에 하와이 호놀로루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한국군 현대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5월 28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이 군사차관으로 미국으로부터 중고 F-4D 16대를 사기로 합의했다.
1969년 8월 29일 F-4D 인수식. 이날 대고 공군기지에 F-4D 6대가 착륙했다.국가기록원
1972년 한국이 보유 중인 F-5A/B 36대를 월남에 보내는 대신 미국은 F-4D 18대를 빌려줬다. 임대 조건은 가격 무료, 기간 무기한이었다.
1975년에도 안보위기가 불거졌다. 북한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했다. 양국은 4월 28일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중국의 북한 통일전선 전략 지지를 밝혔다.
초계임무 수행 중인 방위성금헌납기 F-4D 5대. 공군
다음 날인 4월 2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년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무모한 불장난을 저지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할 때 이장 더 북한이 남침할 것이다, 안 할 것이다, 남침 위험이 있다, 없다는 경제 분석이나 토론을 할 때는 지났다”는 내용의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면서 베트남이 공산화했다.
안보위기 속에서 국민은 앞다퉈 방위성금을 냈다. 그 액수가 163억원이었다. 이 중 71억원으로 F-4D 5대를 샀다. ‘방위성금헌납기’였다. 6ㆍ25 직전인 1950년 5월 14일에도 국민성금 3억 5020만원(약 30만 달러)을 모아 캐나다로부터 T-6 훈련기 10대를 구매한 적 있었다.
1975년 12월 12일 수원 기지에서 헌납식이 열렸고, 식후 방위성금헌납기 5대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12개 주요 도시를 2시간 동안 순회비행했다. 방위성금을 낸 국민에게 신고하는 의미였다.
공군 F-4E가 드래그 슈트(감속 낙하산)을 펼치고 착륙하고 있다. 공군
이후 공군은 F-4E와 정찰기 RF-4C를 차례로 들여와 한때 222대의 F-4(F-4D 92대, F-4E 103대, RF-4C 27대)를 보유했다. 일부는 부품을 대려고 미리 확보한 기체였다. F-4는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고, 1990년대 이후 F-16ㆍKF-16과 F-15K, F-35A가 차례로 들어온 뒤에도 든든한 맏형 노릇도 했다.
F-4는 1960~1970년대 최강의 전투기였다. 공중전은 물론 지상이나 해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도 탁월했다. 미국의 F-4는 핵투발 능력도 갖췄다.
2010년 4월 8일 독도 상공에서 F-15K 편대와 F-4D 편대가 초계비행을 하고 있다. F-4D가 영공수호 임무를 F-15K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의 비행이었다. 공군
전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F-4의 매력을 잘 안다. 우선 기체가 거대하다. 둔중하지만, 날렵하게 날아다니면서, 그것도 고기동을 펼치는 게 팬텀기다. 1만 7900파운드짜리 터보제트 엔진 두 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추력 덕분이다.
폭격기 못잖은 무장량(7.25t)도 갖췄다. 정밀폭격 능력도 있다. 그래서 F-4는 전투기면서도 폭격기 임무도 맡은 멀티플레이어였다. 현대 공군에선 F-4 같은 유형의 전투기를 전폭기(전투기+폭격기ㆍFighter-Bomber)로 분류하며, 요즘엔 다목적 전투기(Multirole Fighter)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러나 F-4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공군의 정비사들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F-4의 생명을 연장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도 날기엔 벅찼다. F-4D는 2010년, RF-4C는 2014년 각각 자리에서 물러났다. 2022년 5월 26일 대한항공이 F-4E의 창정비 사업을 최종 종료했다. 그리고 올해 F-4E가 사라진다.
2008년 4월 29일 충남 계룡시가 공군의 협조를 받아 연화교차로에 F-4 전투기를 공중부양 전시하려고 옮기고 있다. 이 전투기 전시는 계룡시가 국방도시의 면모를 부각하려고 기획했다. 중앙포토
2023년 10월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F-4E 편대가 관중 앞에서 비행했다. 이게 사실상의 고별비행이었다.
F-4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많다. 가장 섭섭한 사람이 F-4 조종사들일 게다.
2015년 8월 통합화력 격멸훈련에서 F-4E 편대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F-4E는 폭격기 못잖은 폭장량을 자랑한다. 중앙포토
윤우 항공우주력 연구원장(예비역 공군 소장ㆍ공사 28기)도 그 중 하나다. 그는 2400시간 넘게 F-4를 탄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다.
Q : F-4 비행경력이 어떻게 되나.
F-4D를 주로 몰았고, 지휘비행을 하면서 F-4E와 RF-4C를 탔다.
Q : F-4의 매력은.
F-4는 당대 최강이었고, 최첨단이었다. 넉넉하게 설계돼 나중에 업그레이드할 여력이 충분했고, 그래서 장수할 수 있었다. 후방석에 동료(레이더를 맡은 레이더 요격장교(RIO))와 비행 중 상의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Q : 비행특성은 어땠나.
정말 까다로웠다. F-4를 자유자재로 비행하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F-5의 경우 200시간이면 익숙해지는데, F-4는 800시간이 넘어야 했다. F-4를 몰다 추락할 뻔한 적 있다. 무리하게 기동했는데 갑자기 엔진이 꺼진 것이다. 다행히 다시 회복했다. 그러나 한 번 손에 익으면 F-4는 천하무적이었다.
Q : 북한이 F-4를 두려워했다고 들었다.
F-4가 초계비행하면 북한 공역이 깨끗해졌다. 레이더로 아군 F-4의 출격을 알게 된 북한 전투기가 무서워 모 기지로 급히 회항하면서 였다. 무전에서 “빨리 내리라우(착륙하라)”라는 북한 교신도 있었다고 한다.
Q : F-4 퇴역이 섭섭하지 않나.
전역 후 가끔 수원 기지 근처를 지나다 F-4E를 보면 정말 반가웠다. 공군이 F-4E 퇴역식에 나도 불러줬으면 한다. 오랜 지기가 떠날 때 배웅하고 싶다.
군사 전문지 디펜스타임스의 안승범 편집장은 “상남자라면 F-4”라면서 “우락부락한 인상과 울퉁불퉁한 몸매의 마초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F-4는 엔진의 독특한 굉음은 다른 전투기가 따라 할 수 없다. 앞으로 그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 해군 조종사들은 F-4를 라이노(Rhino·코뿔소)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안승범 편집장은 “1969년 F-4D의 도입은 2019년 F-35A의 도입보다 공군 발전에 더 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며 “F-4 보유로 공군은 전술 공군에서 전략 공군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2012년 청주 공군기지에서 공군의 F-4E 팬텀Ⅱ 18대가 코끼리 행진을 하고 있다. 공군
에비에이션위크의 한국통신원 김민석씨는 “본사 편집자가 F-4 매니어”라면서 “편집자는 ‘한국이 퇴역한 F-4 중 1대를 남겨둔 뒤 돈을 낸 사람을 후방석에 태워 비행하는 관광상품을 만들면 엄청나게 돈을 벌 것’이라고도 얘기했다”고 전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공군 제10 전투비행단(수원)의 제153 전투비행대대가 올 6월 F-4E 퇴역식을 열 예정이다. 이로써 F-4는 1969년 처음 도입된 뒤 65년 만에 영공수호 임무에서 해제된다. 153대대는 공군의 마지막 팬텀기 부대다.
마지막으로 남은 ‘도깨비’ 부대
공군의 다른 F-4가 퇴역했는데도 135대대에서만 남은 이유는 전략목표 타격 임무 때문이다. 이 부대의 F-4E는 AGM-142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AGM-142는 사거리 80㎞의 정밀 유도무기로 한동안 대북 억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젠 AGM-142가 오래된데다가 더 강력한 최신 무기가 속속 들어오고 있으며 이를 쏘는 F-4E도 낡아, 전투기와 미사일 둘 다 퇴역절차를 밟게 됐다. 국산 전투기인 KF-21 보라매가 올해 양산체제로 들어가면서 F-4E를 대신할 계획이다.
팬텀기에 대한 ‘밀담’을 풀기에 앞서 두 가지. 하나. 팬텀(Phantomㆍ도깨비)은 F-4의 별명이다. 그런데 F-4는 두 번 째 팬텀이기 때문에 ‘팬텀Ⅱ’라 쓰는 게 맞다. 초대 팬텀은 1945년 첫 비행에 성공한 미국 해군의 FH-1이다. FH-1을 만든 맥도널은 나중에 F-4의 제조사 맥도널 더글러스가 된다.
둘. F-4는 20년 넘게 생산되면서(1958~1981년) 진화해왔다. F-4A부터 F-4E(공군형 기준)까지 크게 5단계를 거쳤다. 퇴역식의 주인공이 될 F-4E는 F-4 개량형 중 최신이다. 그런데 괄호 안의 ‘공군형 기준’은 대체 무슨 뜻인가. 설명은 아래 박스기사에 있다.
다급해진 미국의 파격적 제안
" 29일 대구 공군기지에서는 최신예 전투기 Fㆍ4D「팬텀」기 6대의 인수식이 거행됐다. 「팬텀」기가 공군에 도입됐다는 것은 우리 공군 발전의 또 하나의 이정표다. 우리의 영공방위는 물론, 북괴 도발에 대결해서 적극적인 전쟁억지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최신설기를 가지게 되는 우리 공군의 자체분투가 또한 요구된다. 안전관리를 또한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1969년 8월 30일 중앙일보의 ‘팬텀기의 안전관리’ 사설(社說) 내용이다. 전날인 8월 29일 F-4D 6대가 대구 기지에 내렸다. 중앙일보는 첨단 무기인F-4를 잘 관리하자고 제언한 것이다.
한국의 F-4 보유는 제조국인 미국 이외 영국ㆍ이란 다음이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첫째 가는 동맹국인 일본(1971년)이나, 늘 미국의 첨단 무기를 가장 먼저 받은 이스라엘(1969년 9월 5일)도 한국보다 늦었다. 더군다나 F-4D는 당시 F-4의 최신형이었다. 공군은 F-4D 덕분에 한동안 동북아시아 최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에 F-4를 줬을까.
1968년 북한의 특작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1ㆍ21 사태가 계기다. 그해 1월 23일 미국의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됐다. 한국은 안보위기라고 판단해 월남에 파병한 국군의 철군을 고려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2월 사이러스 밴스 전 국방부 차관을 특사로 보냈다. 한국은 F-4를 요구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보다 군용기가 2배나 많았고, 미그-21 등 최신 전투기도 갖고 있었다. 한국은 단번에 북한을 따라잡고, 아니 북한보다 앞설 ‘게임 체인저’가 필요했고, 그게 F-4였다.
미국은 한국을 달래려 1억 달러의 군사차관을 약속했다. 1968년 4월 18일에 하와이 호놀로루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한국군 현대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5월 28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이 군사차관으로 미국으로부터 중고 F-4D 16대를 사기로 합의했다.
1972년 한국이 보유 중인 F-5A/B 36대를 월남에 보내는 대신 미국은 F-4D 18대를 빌려줬다. 임대 조건은 가격 무료, 기간 무기한이었다.
십시일반 성금으로 사 온 전투기
1975년에도 안보위기가 불거졌다. 북한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했다. 양국은 4월 28일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중국의 북한 통일전선 전략 지지를 밝혔다.
다음 날인 4월 2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년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무모한 불장난을 저지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할 때 이장 더 북한이 남침할 것이다, 안 할 것이다, 남침 위험이 있다, 없다는 경제 분석이나 토론을 할 때는 지났다”는 내용의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면서 베트남이 공산화했다.
안보위기 속에서 국민은 앞다퉈 방위성금을 냈다. 그 액수가 163억원이었다. 이 중 71억원으로 F-4D 5대를 샀다. ‘방위성금헌납기’였다. 6ㆍ25 직전인 1950년 5월 14일에도 국민성금 3억 5020만원(약 30만 달러)을 모아 캐나다로부터 T-6 훈련기 10대를 구매한 적 있었다.
1975년 12월 12일 수원 기지에서 헌납식이 열렸고, 식후 방위성금헌납기 5대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12개 주요 도시를 2시간 동안 순회비행했다. 방위성금을 낸 국민에게 신고하는 의미였다.
이후 공군은 F-4E와 정찰기 RF-4C를 차례로 들여와 한때 222대의 F-4(F-4D 92대, F-4E 103대, RF-4C 27대)를 보유했다. 일부는 부품을 대려고 미리 확보한 기체였다. F-4는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고, 1990년대 이후 F-16ㆍKF-16과 F-15K, F-35A가 차례로 들어온 뒤에도 든든한 맏형 노릇도 했다.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한 ‘상남자’
F-4는 1960~1970년대 최강의 전투기였다. 공중전은 물론 지상이나 해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도 탁월했다. 미국의 F-4는 핵투발 능력도 갖췄다.
전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F-4의 매력을 잘 안다. 우선 기체가 거대하다. 둔중하지만, 날렵하게 날아다니면서, 그것도 고기동을 펼치는 게 팬텀기다. 1만 7900파운드짜리 터보제트 엔진 두 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추력 덕분이다.
폭격기 못잖은 무장량(7.25t)도 갖췄다. 정밀폭격 능력도 있다. 그래서 F-4는 전투기면서도 폭격기 임무도 맡은 멀티플레이어였다. 현대 공군에선 F-4 같은 유형의 전투기를 전폭기(전투기+폭격기ㆍFighter-Bomber)로 분류하며, 요즘엔 다목적 전투기(Multirole Fighter)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러나 F-4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공군의 정비사들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F-4의 생명을 연장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도 날기엔 벅찼다. F-4D는 2010년, RF-4C는 2014년 각각 자리에서 물러났다. 2022년 5월 26일 대한항공이 F-4E의 창정비 사업을 최종 종료했다. 그리고 올해 F-4E가 사라진다.
2023년 10월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F-4E 편대가 관중 앞에서 비행했다. 이게 사실상의 고별비행이었다.
한 번 뜨면 북한 전투기들 모두 피해
F-4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많다. 가장 섭섭한 사람이 F-4 조종사들일 게다.
윤우 항공우주력 연구원장(예비역 공군 소장ㆍ공사 28기)도 그 중 하나다. 그는 2400시간 넘게 F-4를 탄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다.
Q : F-4 비행경력이 어떻게 되나.
Q : F-4의 매력은.
Q : 비행특성은 어땠나.
Q : 북한이 F-4를 두려워했다고 들었다.
Q : F-4 퇴역이 섭섭하지 않나.
군사 전문지 디펜스타임스의 안승범 편집장은 “상남자라면 F-4”라면서 “우락부락한 인상과 울퉁불퉁한 몸매의 마초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F-4는 엔진의 독특한 굉음은 다른 전투기가 따라 할 수 없다. 앞으로 그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 해군 조종사들은 F-4를 라이노(Rhino·코뿔소)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안승범 편집장은 “1969년 F-4D의 도입은 2019년 F-35A의 도입보다 공군 발전에 더 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며 “F-4 보유로 공군은 전술 공군에서 전략 공군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에비에이션위크의 한국통신원 김민석씨는 “본사 편집자가 F-4 매니어”라면서 “편집자는 ‘한국이 퇴역한 F-4 중 1대를 남겨둔 뒤 돈을 낸 사람을 후방석에 태워 비행하는 관광상품을 만들면 엄청나게 돈을 벌 것’이라고도 얘기했다”고 전했다.
마지막 5195번째 F-4의 생산국은 일본
F-4 팬텀Ⅱ는 1958년 첫 비행을 마친 뒤 1981년까지 5195대가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다. 원래 미 해군의 항공모함 함재기로 개발됐다. 비슷한 시기 차기 전투기를 찾던 미 공군도 F-4를 선택했다. 미 해병대도 F-4를 몰았다. F-35 라이트닝Ⅱ가 해ㆍ공군, 해병대의 합동 타격 전투기(JSF)로 개발됐는데, F-4가 JSF 1세대인 셈이다.
박경민 기자
F-4는 처음에 기관포를 달지 않았다. 당시 흐름 미사일 만능론이 대세였고, 기총을 탑재하면 발사 반동 때문에 레이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첫 실전인 베트남 전쟁에서 당시 공대공 미사일은 발사하는 족족 적기를 떨어뜨리지 못했다. 선회력이 좋은 미그-21 등 월맹 전투기들이 가시권 안의 공대공 전투에서 F-4를 격추하곤 했다. 미국은 황급히 F-4D에 기관포 포드를 따로 장착했고, F-4E에 와서는 기관포를 기체에 내장했다.
2016년 12월 21일 미국 뉴멕시코주 홀로먼 공군 기지에서 제82 비행시험대대 제 1분견대 소속 조종사들이 보관 중이던 F-4E를 이륙시키려고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이 부대는 마지막 F-4부대였다. F-4를 무인 표적기로 개조해 활용했다. 이날 비행은 QF-4의 퇴역식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이날 이후 미국의 F-4는 모두 퇴역했다. 미 공군
F-4는 미국과 전 세계 11개 미국의 동맹국에서 운용됐다. 제조국 미국에선 F-4가 레이더 등 적 방공시설을 상대하는 F-4G와일드위즐로 오래 쓰다가 1996년 4월 마지막 F-4G 부대가 해체됐다. 남은 F-4는 무인 표적기 임무의 QF-4로 비행하다 이마저도 2016년 12월 21일 퇴역됐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F-4E 카이. 일본 항공자위대
일본은 1969년 한국의 F-4 도입에 놀라 F-4EJ 138대와 RF-4E 비무장 정찰기 14대를 자국에서 면허생산해 1971년부터 실전배치했다. 최후 생산 F-4는 1981년 5월 21일 일본의 F-4EJ였다.
2020년 11월 27일 일본 이바라키(茨城)현 햐쿠리(百里) 공군기지에서 있었던 F-4EJ카이(改) 퇴역식. 이 기지의 301비행대는 F-4EJ 카이를 몰던 마지막 전투부대였다. 일본은 이듬해인 2021년 비행개발실험단에서 마지막 F-4가 퇴역했다. 일본 항공자위대
일본은 F-4EJ 96대를 개량했는데 이게 F-4EJ카이(改ㆍ개량형)다. 한국도 F-4 개량계획이 있었지만, 전력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 실행하지 못했다. 일본의 F-4EJ카이는 2021년 모두 퇴역했다.
튀르키예 공군의 F-4E. 위키피디아
한국에서 F-4가 물러나면 F-4 운용국은튀르키예ㆍ그리스ㆍ이란만 남는다. 잠깐, 이란이라고? 맞다. 중동의 이란, 이란이다.
이스라엘 공군의 F-4E 쿠르나스(히브리어로 망치). 이스라엘 국방부
지금이야 미국과 원수지간이지만,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전까지 중동에서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었다. 1968년 9월 8일 시작으로 F-4D 32대, F-4E 177대, RF-4E 16대 등 모두 226대를 보유했다. 미국에서 빌려왔다 돌려준 RF-4E 8대를 포함하면 234대다. 미국 제외 F-4 최대 보유국가였다.
이란 공군의 지하 F-4 기지 '독수리 44'. 이란군
이란의 F-4는 이란ㆍ이라크 전쟁 때 용맹을 떨쳤으며, 요즘도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ISIS를 폭격하곤 한다. 현재 58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F-4는 처음에 기관포를 달지 않았다. 당시 흐름 미사일 만능론이 대세였고, 기총을 탑재하면 발사 반동 때문에 레이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첫 실전인 베트남 전쟁에서 당시 공대공 미사일은 발사하는 족족 적기를 떨어뜨리지 못했다. 선회력이 좋은 미그-21 등 월맹 전투기들이 가시권 안의 공대공 전투에서 F-4를 격추하곤 했다. 미국은 황급히 F-4D에 기관포 포드를 따로 장착했고, F-4E에 와서는 기관포를 기체에 내장했다.
F-4는 미국과 전 세계 11개 미국의 동맹국에서 운용됐다. 제조국 미국에선 F-4가 레이더 등 적 방공시설을 상대하는 F-4G와일드위즐로 오래 쓰다가 1996년 4월 마지막 F-4G 부대가 해체됐다. 남은 F-4는 무인 표적기 임무의 QF-4로 비행하다 이마저도 2016년 12월 21일 퇴역됐다.
일본은 1969년 한국의 F-4 도입에 놀라 F-4EJ 138대와 RF-4E 비무장 정찰기 14대를 자국에서 면허생산해 1971년부터 실전배치했다. 최후 생산 F-4는 1981년 5월 21일 일본의 F-4EJ였다.
일본은 F-4EJ 96대를 개량했는데 이게 F-4EJ카이(改ㆍ개량형)다. 한국도 F-4 개량계획이 있었지만, 전력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 실행하지 못했다. 일본의 F-4EJ카이는 2021년 모두 퇴역했다.
한국에서 F-4가 물러나면 F-4 운용국은튀르키예ㆍ그리스ㆍ이란만 남는다. 잠깐, 이란이라고? 맞다. 중동의 이란, 이란이다.
지금이야 미국과 원수지간이지만,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전까지 중동에서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었다. 1968년 9월 8일 시작으로 F-4D 32대, F-4E 177대, RF-4E 16대 등 모두 226대를 보유했다. 미국에서 빌려왔다 돌려준 RF-4E 8대를 포함하면 234대다. 미국 제외 F-4 최대 보유국가였다.
이란의 F-4는 이란ㆍ이라크 전쟁 때 용맹을 떨쳤으며, 요즘도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ISIS를 폭격하곤 한다. 현재 58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