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민 창업가' 김성희 南北 빚어 한 술병에 담을래요
자유인216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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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 08:18
아이 키우며 일하고 싶어 창업…"한부모가장 채용 돕고파"
"탈북민, 지역 잘 녹아드는게 통일의 시작"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가 24일 오후 충북 음성군 하나도가 양조장에서 양조작업을 하고 있다. /충북 음성=박헌우 기자
한국에서 유일하게 북한식 술을 빚어 파는 사람이 있다. 바로 충청북도 음성에서 북한 전통주 제조업체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다. 김 대표는 엿기름으로 술을 발효·숙성하는 '고구려식 술'을 빚는다. 북한 술을 빚는 음성 사람. 북한땅 너머 만주벌판까지 뻗어나간 고구려도 한반도의 백제·신라와 한(一) 민족, 한(韓)민족 역사로 기록된 지금이다. 음성은 삼국시대 백제였기도, 고구려였기도, 종내 신라였기도 했던 곳이라 그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고 공교롭다.
김 대표는 지난 24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물과 농산물은 한국 것, 술 빚는 방법은 북한 거다. 한 병의 술에 통일을 담는다는 의미로 '하나도가'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밖에 20리터 물통 쌓여 있는 것 보이죠. 전국 방방곡곡 물 뜨러 다닌 흔적들이에요. 마시는 물 맛과 술을 빚고 나서 그 맛은 또 달라요. 결국 고향 땅 물과 가장 비슷해 터잡은 곳이 바로 이 음성이었죠."
197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2009년 한국에 왔다. 2018년부터 충북 음성에서 고향 친구와 양조장을 운영하며 전통주 제조·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창업을 결심한 데엔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니기 어려웠던 탓이 컸다. 딸 하나 잘 키워보자고 고향을 두고 한국에 온 만큼 "목숨 걸겠단 정신으로 창업했고 성공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창업 비기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답은 술이었다. "태좌주는 회령 최씨 집안 딸·며느리들에게만 비법이 전수되는 제삿술이에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북한에선 여자들이 술을 대놓고 마시면 손가락질 받아요. 집안 남자들이나 마시는 술을 다 자는 새벽에 할머니가 깨워 만들라 시키니 마지못해 배웠어요. 맛도 못 보면서 가마솥 뚜껑을 만져 물 온도를, 발효되는 정도를 팔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술 내릴 때 냄새로 술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해봐야 하는 거에요. 그 땐 좀 짜증났지만 온 몸으로 조기교육을 받았던 셈이죠."
창업 결심 후 2년은 준비기간이었다. 평일에 공장일을 하고도 두 시간 거리 서울로 달려가 창업 교육을 받았다. 함께 창업한 고향 친구와 '공동 육아'를 할 수 있었던 덕이었다. 먹고 입는 걸 아껴 모은 돈, 남북하나재단 영농정착지원사업 지원금으로 종잣돈을 마련해 2018년 음성에 하나도가를 차렸다.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탈북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잘 정착하는 게 통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사람들도 충분히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박헌우 기자
사선을 넘어 탈북했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한국 사회에 부단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조차도 가장 어려웠던 건 지역 사회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창업에 가장 중요한 건 내 기업이 이 지역에 발붙이는 거예요. 처음엔 어르신들이 제게 '빨갱이가 왜 여기까지 왔느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죠. 마을에 녹아들고 싶어 주말마다 찾아가 농사 일손을 도왔습니다. 생색 내기 싫고 폐 끼치기 싫어 물도 싸들고 갔어요. 어느 날엔가. 절 '빨갱이'라 부르던 어르신이 주신 생수가, 그 다음엔 달달한 음료수가 놓이더라고요. '고기 구워 먹게 네가 빚은 술 한 병 가져와보라' 할 때까지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지금은 이 분들이 저와 제 상품을 보증, 홍보해주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창업 다음해 사람들 간 만남을 끊어놓은 코로나19도 혹독한 시련이었다. 이런저런 도움으로 술을 팔았지만 전염병이 한창이었던 2019년 매출은 1800만 원 남짓. 인건비, 재료비를 빼면 마이너스였다. 두 손엔 끈기와 도전정신 밖에 남은 게 없었다. 하루 5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양조장 고정비를 충당했고 한 시간을 자면서도 술을 내렸다. "내가 5년 안에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이 기업은 산다, 토끼와 경주하는 거북이처럼 꾸준히 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창업 후 3년이 지나면 매출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등 이론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비교하면 한국에 지인하나 없는 전 좌절감만 들죠. 북한과 식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사람들이 내 술에 적응해 '맛있다'고 느끼기까진 3년은 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5년차 되던 2022년 입소문을 타면서 양조장을 직접 찾아와 술을 맛보고 사가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그때서야 '아, 이제 나 죽진 않겠구나' 체감했어요."
김 대표는 온라인 스토어 뿐 아니라 오두산 통일전망대 매장에도 술을 납품하고 있다. 통일전망대는 북한에 대해 알고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인만큼 하나도가 매출 비중이 가장 큰 곳이다. 술은 그에게 남북한을 잇는 매개다. "북한에 적개심을 거두고 '북한 술 또 마셔보고 싶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소중히 여긴다"는 김 대표는 음력 설을 계기로 출시한 삼팔주에 '38도의, 남과 북을 가르는 38선을 열어내는 술'이란 이야기를 담았다.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가 빚는 술 삼팔주, 태좌주, 농태기. 김 대표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삼팔주를 소개하며 "미사일 쏘기보단 술 마시다 의기투합해 서로 마음이 열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이름에 녹였다"고 말했다. /음성=박헌우 기자
장사는 잘 되시느냐. "여전히 매출은 자신있게 말하기 힘든 수준"이란 김 대표의 희망은 5년 내 '연 매출 30억 달성'이다. 사업이 잘 돼 비교적 근무시간이 유동적인 자기 사업장에 탈북민 한부모가장들을 더 채용했으면 해서다. '매출 마이너스' 때부터 해 왔던 고아원 후원도, 탈북민 2세들이 한국사회에 잘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사회적 시선에 맞닥뜨리는 부모들 때문에 탈북민 자녀들이 위축된 모습을 자주 봐요. 한부모 가정일수록 더 그렇죠. 한부모 가장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꿈을 갖고 공부도 창업을 할 수 있게끔 더 많이 후원하고 싶어요. 탈북민 뿐 아니라 수많은 한부모 가장들이 자녀를 돌보면서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나라에서 정책적으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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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지역 잘 녹아드는게 통일의 시작"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가 24일 오후 충북 음성군 하나도가 양조장에서 양조작업을 하고 있다. /충북 음성=박헌우 기자
한국에서 유일하게 북한식 술을 빚어 파는 사람이 있다. 바로 충청북도 음성에서 북한 전통주 제조업체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다. 김 대표는 엿기름으로 술을 발효·숙성하는 '고구려식 술'을 빚는다. 북한 술을 빚는 음성 사람. 북한땅 너머 만주벌판까지 뻗어나간 고구려도 한반도의 백제·신라와 한(一) 민족, 한(韓)민족 역사로 기록된 지금이다. 음성은 삼국시대 백제였기도, 고구려였기도, 종내 신라였기도 했던 곳이라 그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고 공교롭다.
김 대표는 지난 24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물과 농산물은 한국 것, 술 빚는 방법은 북한 거다. 한 병의 술에 통일을 담는다는 의미로 '하나도가'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밖에 20리터 물통 쌓여 있는 것 보이죠. 전국 방방곡곡 물 뜨러 다닌 흔적들이에요. 마시는 물 맛과 술을 빚고 나서 그 맛은 또 달라요. 결국 고향 땅 물과 가장 비슷해 터잡은 곳이 바로 이 음성이었죠."
197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2009년 한국에 왔다. 2018년부터 충북 음성에서 고향 친구와 양조장을 운영하며 전통주 제조·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창업을 결심한 데엔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니기 어려웠던 탓이 컸다. 딸 하나 잘 키워보자고 고향을 두고 한국에 온 만큼 "목숨 걸겠단 정신으로 창업했고 성공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창업 비기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답은 술이었다. "태좌주는 회령 최씨 집안 딸·며느리들에게만 비법이 전수되는 제삿술이에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북한에선 여자들이 술을 대놓고 마시면 손가락질 받아요. 집안 남자들이나 마시는 술을 다 자는 새벽에 할머니가 깨워 만들라 시키니 마지못해 배웠어요. 맛도 못 보면서 가마솥 뚜껑을 만져 물 온도를, 발효되는 정도를 팔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술 내릴 때 냄새로 술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해봐야 하는 거에요. 그 땐 좀 짜증났지만 온 몸으로 조기교육을 받았던 셈이죠."
창업 결심 후 2년은 준비기간이었다. 평일에 공장일을 하고도 두 시간 거리 서울로 달려가 창업 교육을 받았다. 함께 창업한 고향 친구와 '공동 육아'를 할 수 있었던 덕이었다. 먹고 입는 걸 아껴 모은 돈, 남북하나재단 영농정착지원사업 지원금으로 종잣돈을 마련해 2018년 음성에 하나도가를 차렸다.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탈북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잘 정착하는 게 통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사람들도 충분히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박헌우 기자
사선을 넘어 탈북했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한국 사회에 부단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조차도 가장 어려웠던 건 지역 사회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창업에 가장 중요한 건 내 기업이 이 지역에 발붙이는 거예요. 처음엔 어르신들이 제게 '빨갱이가 왜 여기까지 왔느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죠. 마을에 녹아들고 싶어 주말마다 찾아가 농사 일손을 도왔습니다. 생색 내기 싫고 폐 끼치기 싫어 물도 싸들고 갔어요. 어느 날엔가. 절 '빨갱이'라 부르던 어르신이 주신 생수가, 그 다음엔 달달한 음료수가 놓이더라고요. '고기 구워 먹게 네가 빚은 술 한 병 가져와보라' 할 때까지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지금은 이 분들이 저와 제 상품을 보증, 홍보해주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창업 다음해 사람들 간 만남을 끊어놓은 코로나19도 혹독한 시련이었다. 이런저런 도움으로 술을 팔았지만 전염병이 한창이었던 2019년 매출은 1800만 원 남짓. 인건비, 재료비를 빼면 마이너스였다. 두 손엔 끈기와 도전정신 밖에 남은 게 없었다. 하루 5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양조장 고정비를 충당했고 한 시간을 자면서도 술을 내렸다. "내가 5년 안에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이 기업은 산다, 토끼와 경주하는 거북이처럼 꾸준히 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창업 후 3년이 지나면 매출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등 이론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비교하면 한국에 지인하나 없는 전 좌절감만 들죠. 북한과 식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사람들이 내 술에 적응해 '맛있다'고 느끼기까진 3년은 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5년차 되던 2022년 입소문을 타면서 양조장을 직접 찾아와 술을 맛보고 사가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그때서야 '아, 이제 나 죽진 않겠구나' 체감했어요."
김 대표는 온라인 스토어 뿐 아니라 오두산 통일전망대 매장에도 술을 납품하고 있다. 통일전망대는 북한에 대해 알고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인만큼 하나도가 매출 비중이 가장 큰 곳이다. 술은 그에게 남북한을 잇는 매개다. "북한에 적개심을 거두고 '북한 술 또 마셔보고 싶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소중히 여긴다"는 김 대표는 음력 설을 계기로 출시한 삼팔주에 '38도의, 남과 북을 가르는 38선을 열어내는 술'이란 이야기를 담았다.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가 빚는 술 삼팔주, 태좌주, 농태기. 김 대표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삼팔주를 소개하며 "미사일 쏘기보단 술 마시다 의기투합해 서로 마음이 열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이름에 녹였다"고 말했다. /음성=박헌우 기자
장사는 잘 되시느냐. "여전히 매출은 자신있게 말하기 힘든 수준"이란 김 대표의 희망은 5년 내 '연 매출 30억 달성'이다. 사업이 잘 돼 비교적 근무시간이 유동적인 자기 사업장에 탈북민 한부모가장들을 더 채용했으면 해서다. '매출 마이너스' 때부터 해 왔던 고아원 후원도, 탈북민 2세들이 한국사회에 잘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사회적 시선에 맞닥뜨리는 부모들 때문에 탈북민 자녀들이 위축된 모습을 자주 봐요. 한부모 가정일수록 더 그렇죠. 한부모 가장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꿈을 갖고 공부도 창업을 할 수 있게끔 더 많이 후원하고 싶어요. 탈북민 뿐 아니라 수많은 한부모 가장들이 자녀를 돌보면서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나라에서 정책적으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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