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실수들
자유인119
생활문화
7
1095
01.26 15:24
[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무섭게 짖는 개들, 주인 때문일 수도 있다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멍멍멍!"
밖에 나가서 사람과 개들을 보면 무서운 기세로 짖는 개들, 당신은 이 개들이 왜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 '교육을 안 시켜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분명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보단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보호자 자신도 모르게 경비견이 되도록 평생을 교육시켜 온 것'이라고 말이다. 경비견은 보통 재산이나 영역, 사람을 지키는 업무를 하는 개를 말한다. 통상 보호자 외 사람에게 경계심이 강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우리는 흔히 보호자가 정확하게 각을 잡고, 간식을 한 손에 들거나 목줄을 들고 '신호'를 줘야만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려견과 사는 하루 내내 사람들은 반려견들에게 학습을 시키고 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자꾸 안아주기만 하면 개는 '자기 공간'이라 인식해 더 짖는다
살다 보면 과거 조상님들이 했던 말들이 퍽 와닿아 신기한 경우가 많다. 흔히들 하는,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말 개의 핵심을 간파한 말이다. 개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에선 자신감이 더 생기고, 공간에 따라 행동이 전혀 달라지는 동물이다.
방문 교육을 갔을 때의 일이다. 문을 열자마자 5kg 남짓한 믹스견이 안전문을 힘차게 뛰어넘어와 "어딜 감히 내 집에 들어와?"라는 듯 나를 물었다. 내 오른쪽 무릎 흉터는 그 친구가 만든 작품이다. 두 번째 수업엔 조금 다르게 시도해봤다. 아파트 단지 앞인 바깥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자, 10분 후쯤 보호자와 믹스견 친구가 함께 나왔다.
그런데 나를 보자 그 개는 이번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종적으로 변해 행동했다. 이런 개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자기가 가장 힘을 받을 만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개라는 동물이다.
개들의 행동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 공간, 영역에 대해 이해도가 있으면 훨씬 교육하기가 좋아진다. 문제는 보호자의 품을 자기 영역처럼 생각하는 개들이 많다는 것이다. 평소에 반려견이 쉬고 자는 곳이 보호자의 품, 보호자 주변이라서 그렇다. 그러다 보면 반려견에겐 보호자와 함께 하는 공간이 자신감 있는 '내 영역'처럼 인식돼 버린다.
물론 보호자가 안아주고 같이 자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별다른 이유 없이 자주 안아주기만 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는 반려견에게 '내 품에서 더 자신감을 받아 경계하라'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려견이 보호자 곁이 안정된 곳이라고 생각하면 평소보다 더 짖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와 인간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인간이 집단, 사회생활을 할 때 무언가를 믿고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나에게 한없이 잘해주긴 하는데,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고, 계속해서 말을 쉬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직접 해낼 수 있는데도, 필요 이상으로 계속 괜찮냐 물으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배려와 관심이 지나치면 상대는 신뢰를 잃어버린다. 개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보호자들은 개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게 보호자의 의무(?)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줄을 짧게 꽉 잡는 건 반려견에게 짖으라고 신호 주는 것
보호자에겐 애정의 표현이었겠지만, 결국 개에겐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반려견은, 특히 도시 생활에서는 자신이 경계해야 하는 대상을 만날 때마다 보호자보다 먼저 판단하고 앞서 나가는 개가 되기 쉽다. 보호자의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다.
반려견이 다른 개, 타인을 경계하는 것이 고민이 된다고 해 교육을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반려견의 보호자들은 보통 말을 많이 하고, 행동이 우왕좌왕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견을 경비견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보호자가 자꾸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중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개들은 자연스레 경비견 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외부에 산책을 나가면 다른 대상을 보고 짖는 개들도 많다. 줄을 몇 번만 착용해보면 개들은 산책이 보호자와 함께하는 순간이며, 그리고 줄을 맨 상태에선 자기가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도 안다. 이런 경우, 오프리쉬(줄이 없는) 상태보다 더욱 거센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 줄이 있는 상황에서 개들에게 '짖으라'는 신호를 주는 행동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보호자들이 줄을 지나치게 꽉 짧게 잡는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미리부터 짧게 잡는다면? 이건 개들에게 "짖을 준비를 해라, 나의 경비견"이라고 신호를 주는 것과 같다.
일례로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하나, 줄을 1m도 안 되는 줄로 짧게 다니는 보호자님이 계셨다. 심지어 다른 개가 보이면 그마저도 더 짧게 잡는다. 그래서 줄을 2m 정도로 조금 더 여유 있게 하고, 멀리서부터 타견을 보면 줄을 느슨하게 하고 보는 연습을 기초로 했다. 그 기초 과정만으로도 반려견의 긴장이 굉장히 줄어들었고, 이후 다른 교육과 병합하여 한 뒤 매우 편안한 상태로 현재 산책을 하고 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즉 기본 예의이자 매너인 '펫티켓'이 없는 활동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이타적이어서 매순간 긴장하는 것도 반려견에게는 일종의 경비견 훈련을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산책 때나 외부에 나갈 때 개들이 매는 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으론 목에 채우는 목줄과 몸통에 채우는 하네스가 있다. 어떤 줄이 무조건 좋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반려견들은 하네스가 독이 될 때가 많다.
훈련사들이 출전하는 대회 중 경비견 훈련 과목이 있는데, 여기서 보면 반려견의 몸을 뒤에서 당기는 것만으로도 개들은 자신감이 커져 짖고는 한다. 사람도 갈등이 생겼을 때 누가 뒤에서 말리면 "아 이것 좀 놔봐"라며 오히려 더 싸우려 들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평소에 보호자가 하네스로 뒤에서 반려견을 당긴다면, 그건 반려견에게 경비견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개들이 왜 타인이나 타견을 보고 짖는 걸까? 원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경계하는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인 경우가 많다. 짖는 순간 피해를 주기 싫어서 보호자가 반려견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재빨리 도망간다고 생각해 보자. 개들의 입장에서 이는 "나의 짖음이 매우 효과 있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왔네!"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더 험하게 짖는 경비견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개들을 의인화해서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개는 사람의 의도와는 상반되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를 사랑한다고는 해도 개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해가 없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를 사랑하는 첫 번째 길은 개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 해보는 것이다. 경비견 훈련을 시켰으면서 개를 붙들고 화를 내지 말고, 개의 입장에서부터 생각하고 움직여보자.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진짜 이해하고 사랑하는 길일 수 있다.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멍멍멍!"
밖에 나가서 사람과 개들을 보면 무서운 기세로 짖는 개들, 당신은 이 개들이 왜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 '교육을 안 시켜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분명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보단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보호자 자신도 모르게 경비견이 되도록 평생을 교육시켜 온 것'이라고 말이다. 경비견은 보통 재산이나 영역, 사람을 지키는 업무를 하는 개를 말한다. 통상 보호자 외 사람에게 경계심이 강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우리는 흔히 보호자가 정확하게 각을 잡고, 간식을 한 손에 들거나 목줄을 들고 '신호'를 줘야만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려견과 사는 하루 내내 사람들은 반려견들에게 학습을 시키고 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자꾸 안아주기만 하면 개는 '자기 공간'이라 인식해 더 짖는다
▲ 힘차게 짖는 반려견 현대 보호자들의 가장 많은 고민 중 하나는 짖고 달려드는 행동들이다. |
ⓒ pixabay |
살다 보면 과거 조상님들이 했던 말들이 퍽 와닿아 신기한 경우가 많다. 흔히들 하는,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말 개의 핵심을 간파한 말이다. 개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에선 자신감이 더 생기고, 공간에 따라 행동이 전혀 달라지는 동물이다.
방문 교육을 갔을 때의 일이다. 문을 열자마자 5kg 남짓한 믹스견이 안전문을 힘차게 뛰어넘어와 "어딜 감히 내 집에 들어와?"라는 듯 나를 물었다. 내 오른쪽 무릎 흉터는 그 친구가 만든 작품이다. 두 번째 수업엔 조금 다르게 시도해봤다. 아파트 단지 앞인 바깥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자, 10분 후쯤 보호자와 믹스견 친구가 함께 나왔다.
그런데 나를 보자 그 개는 이번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종적으로 변해 행동했다. 이런 개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자기가 가장 힘을 받을 만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개라는 동물이다.
개들의 행동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 공간, 영역에 대해 이해도가 있으면 훨씬 교육하기가 좋아진다. 문제는 보호자의 품을 자기 영역처럼 생각하는 개들이 많다는 것이다. 평소에 반려견이 쉬고 자는 곳이 보호자의 품, 보호자 주변이라서 그렇다. 그러다 보면 반려견에겐 보호자와 함께 하는 공간이 자신감 있는 '내 영역'처럼 인식돼 버린다.
물론 보호자가 안아주고 같이 자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별다른 이유 없이 자주 안아주기만 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는 반려견에게 '내 품에서 더 자신감을 받아 경계하라'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려견이 보호자 곁이 안정된 곳이라고 생각하면 평소보다 더 짖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와 인간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인간이 집단, 사회생활을 할 때 무언가를 믿고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나에게 한없이 잘해주긴 하는데,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고, 계속해서 말을 쉬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직접 해낼 수 있는데도, 필요 이상으로 계속 괜찮냐 물으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배려와 관심이 지나치면 상대는 신뢰를 잃어버린다. 개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보호자들은 개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게 보호자의 의무(?)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줄을 짧게 꽉 잡는 건 반려견에게 짖으라고 신호 주는 것
▲ 반려견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 차분하고 침착하며 판단이 정확한 사람과 있을 때, 개들은 안심한다. |
ⓒ 최민혁 |
보호자에겐 애정의 표현이었겠지만, 결국 개에겐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반려견은, 특히 도시 생활에서는 자신이 경계해야 하는 대상을 만날 때마다 보호자보다 먼저 판단하고 앞서 나가는 개가 되기 쉽다. 보호자의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다.
반려견이 다른 개, 타인을 경계하는 것이 고민이 된다고 해 교육을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반려견의 보호자들은 보통 말을 많이 하고, 행동이 우왕좌왕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견을 경비견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보호자가 자꾸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중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개들은 자연스레 경비견 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외부에 산책을 나가면 다른 대상을 보고 짖는 개들도 많다. 줄을 몇 번만 착용해보면 개들은 산책이 보호자와 함께하는 순간이며, 그리고 줄을 맨 상태에선 자기가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도 안다. 이런 경우, 오프리쉬(줄이 없는) 상태보다 더욱 거센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 줄이 있는 상황에서 개들에게 '짖으라'는 신호를 주는 행동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보호자들이 줄을 지나치게 꽉 짧게 잡는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미리부터 짧게 잡는다면? 이건 개들에게 "짖을 준비를 해라, 나의 경비견"이라고 신호를 주는 것과 같다.
일례로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하나, 줄을 1m도 안 되는 줄로 짧게 다니는 보호자님이 계셨다. 심지어 다른 개가 보이면 그마저도 더 짧게 잡는다. 그래서 줄을 2m 정도로 조금 더 여유 있게 하고, 멀리서부터 타견을 보면 줄을 느슨하게 하고 보는 연습을 기초로 했다. 그 기초 과정만으로도 반려견의 긴장이 굉장히 줄어들었고, 이후 다른 교육과 병합하여 한 뒤 매우 편안한 상태로 현재 산책을 하고 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즉 기본 예의이자 매너인 '펫티켓'이 없는 활동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이타적이어서 매순간 긴장하는 것도 반려견에게는 일종의 경비견 훈련을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산책 때나 외부에 나갈 때 개들이 매는 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으론 목에 채우는 목줄과 몸통에 채우는 하네스가 있다. 어떤 줄이 무조건 좋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반려견들은 하네스가 독이 될 때가 많다.
훈련사들이 출전하는 대회 중 경비견 훈련 과목이 있는데, 여기서 보면 반려견의 몸을 뒤에서 당기는 것만으로도 개들은 자신감이 커져 짖고는 한다. 사람도 갈등이 생겼을 때 누가 뒤에서 말리면 "아 이것 좀 놔봐"라며 오히려 더 싸우려 들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평소에 보호자가 하네스로 뒤에서 반려견을 당긴다면, 그건 반려견에게 경비견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개들이 왜 타인이나 타견을 보고 짖는 걸까? 원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경계하는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인 경우가 많다. 짖는 순간 피해를 주기 싫어서 보호자가 반려견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재빨리 도망간다고 생각해 보자. 개들의 입장에서 이는 "나의 짖음이 매우 효과 있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왔네!"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더 험하게 짖는 경비견이 될 수 있다.
▲ 개와 걷는 길 개의 행동을 고치려 먼저 하지 말고, 그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발을 맞출 수 있다. |
ⓒ 최민혁 |
사람들은 개들을 의인화해서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개는 사람의 의도와는 상반되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를 사랑한다고는 해도 개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해가 없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를 사랑하는 첫 번째 길은 개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 해보는 것이다. 경비견 훈련을 시켰으면서 개를 붙들고 화를 내지 말고, 개의 입장에서부터 생각하고 움직여보자.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진짜 이해하고 사랑하는 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