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선 미사일 받고 南에는 관계 회복? '알쏭달쏭' 러시아 속내
자유인8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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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 06:26
핵심요약
얼마 전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이 화성-11가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설명하는 자료. 미국 미들버리 국제대학원 산하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 제공우크라에선 북한 탄도미사일, 주한대사는 "한러관계 회복 원해"?
노태우 정부 '북방외교'로 유지되던 한러관계, 우크라 전쟁으로 흔들려
경제적·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한러 상호 영향력 작지 않아
'가치외교'로만 생각해 보면 한러관계 당장 회복 어렵지만 방치도 안 돼
'가치외교' 자체가 미국의 중국 견제…우리 외교 선택지 좁아질 우려
영리하게 러시아 입장 등 이용할 필요…"미국과도 이해관계 절충해야"
노태우 정부 '북방외교'로 유지되던 한러관계, 우크라 전쟁으로 흔들려
경제적·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한러 상호 영향력 작지 않아
'가치외교'로만 생각해 보면 한러관계 당장 회복 어렵지만 방치도 안 돼
'가치외교' 자체가 미국의 중국 견제…우리 외교 선택지 좁아질 우려
영리하게 러시아 입장 등 이용할 필요…"미국과도 이해관계 절충해야"
#1 새해 초 러시아가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몇몇 도시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서방 정보기관과 연구원들이 잔해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과 함께 북한제 화성-11가형(KN-23, 이른바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사용됐다고 결론내렸다. 마침 북한 최선희 외무상이 얼마 전 러시아를 찾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방북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2 새해 한국에 부임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러시아 대사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1의 미사일 관련 이야기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한국은 장기적으로 러시아를 강한 이웃이자 좋은 친구로 두고 싶어한다"며 "한국이 러시아의 비우호국 중 우호국으로 되돌아가는 첫 사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SBS와 인터뷰에서도 "우리 쪽에서 부과하지 않은 제재, 그리고 직항로 단절이 복원되길 기대한다"며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복원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얼핏 듣기엔 상호모순 같은 위의 두 이야기는 모두 새해 들어 실제 일어난 일들을 서술한 내용이다. 러시아가 한국과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북한과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여전히 같은 입장이 유지되고 있어서 의문을 낳고 있다.
일단은 경제적 측면이 있다. 외교부가 펴낸 '2021 러시아 개황'에 따르면 러시아는 코로나19로 침체됐던 2020년에도 한국과 223억달러 규모를 주고받아 한국의 교역 대상국 가운데 12위를 기록했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일환으로 우리나라는 1990년 소련과 수교했고, 그간 적지 않은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논란도 많지만 소련에 빌려줬던 차관 대신 러시아제 무기체계를 들여와 국산 무기 개발에 활용했던 '불곰사업'이 대표적이다. 1996년 러시아가 북한과의 동맹조약을 파기한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산업 측면에선 러시아 국민 라면으로 자리잡은 팔도의 '도시락'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한국이 대러제재에 참여, 한러관계가 경색되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는 가동을 멈춘 러시아 현지 공장을 매각하고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가격은 1만 루블, 우리 돈으로 14만원 정도다. 2년 내로 지분을 다시 구매할 수 있다는 '바이백' 옵션이 붙기는 했다.
러시아 현지엔 현대차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LG전자 공장도 있는데 이 또한 개점휴업 상태이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현지법인도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큰 문제이지만 그러잖아도 전쟁으로 인해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경제 측면에서도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한국대사관 경제공사)은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국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중시하고 있고, 또 남북한 양측에 모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며 "한국이 더 이상 러시아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적대적인 태도'란 지정학적 측면에서의 의미를 띤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라시아 대륙국가로서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중국이 부상하면서 러시아의 국력으로 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현대차가 철수한 자리를 중국 자동차들이 차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영향력을 꺾을 수는 없으니 남은 방법은 다른 나라를 이용하는 쪽이다. 대표적인 예로, 러시아가 한국에 제시하고 있는 '레드라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이다.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해 포탄 '우회 지원'은 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살상 무기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대륙과 해양세력 사이에 낀 한반도의 중요성을 러시아 입장에서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우리 또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는 상황을 반영한 행보인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러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그에 따라 필요한 소통을 계속 해오고 있다"며 "한러관계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뿐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양쪽이 서로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9월 13일 러시아를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사실 큰 틀에서 보면,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과 협력해서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북한보다는 한국에서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많다"며 "최근의 북러 밀착은 한국이 미국에 과도하게 붙는 것을 북한을 통해 조심스럽게 조정하려는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 나갈지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가치외교' 측면에서만 생각해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고 북러 군사협력 등을 생각해 봐도 당장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북러간 밀착에서 엿볼 수 있듯 북한을 어느 정도 제어하려면 이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대로 방치되거나, 과도하게 악화된다면 그것 또한 위험하다.
애시당초 '가치외교'라는 말 자체가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에 가깝다. 미중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대신, 미국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지하고 있으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는 '유도' 격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우리의 외교적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점에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권보람 선임연구원은 2022년 1월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KIMS Periscope'에 쓴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외교와 한국'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프레임을 선포한 뒤 미국의 외교적 부담은 더욱 커졌다"며 "자국이 설파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모순되게 행동할 때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마저도 이러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예외가 되긴 어렵다.
박병환 소장은 "미국을 따르더라도 한러관계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미국)이더라도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면 치열하게 이해관계의 절충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이 외교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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