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아니었다니! 윤석열 대통령께 사과드립니다[박세열 칼럼]
자유인151
정치
95
502
01.13 07:55
[박세열 칼럼] 인지부조화 해소를 위해 쓰는 칼럼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대통령의 발음 기관이 어떤 형태 조합을 통해 물리적으로 음성을 내었는지조차 법원에서 진위를 가려야 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 대통령의 발언 중 OOOO 자리를 '바이든은'으로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청각 기관을 항시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마법과 같은 세상으로 빨려들어갔다. 토끼굴에 빠진 엘리스처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성지호 부장판사)는 12일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MBC에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 첫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별지 기재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외교부가 요구한 정정보도문은 이렇다. "본 방송은 지난 2022.9.22. <뉴스데스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미국 의회 및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욕설 및 비속어 발언을 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이하 생략)"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 '바이든'이 아니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을까? 뭐라고 말했길래 140개 넘는 거의 모든 언론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바이든'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까? 답은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날리면'은 정확한가.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정작 이 발언을 한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단 한번도 본인 육성으로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형체 불분명한 언사에 대해 해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도 '감정 불가' 의견서가 제출됐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솔직하고 짓궂은 심경으로 말하면, 뉴스데스크에서 앵커가 정정보도문을 읊고 나서 "윤 대통령은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지 않았고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습니다"는 말을 1회 낭독하는 모습을 꼭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 블랙 코미디를 후대에 길이 길이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사태를 직시하자.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인류가 가진 최고의 난제 중 하나인 언어의 생성에 관한 고대의 비밀에 대해 고민해 볼 철학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KBS 보도 화면 갈무리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줬던, 70여년 전에 유행한 신비평 이론에 따르면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의 객관적인 증거는 오로지 "텍스트 위에 써진 단어들(words on the pages)"이다. 발화자(윤석열 대통령)의 의도나 사회적 지위, 문장이 발화된 장소나, 문장이 발화된 전후 시대적 맥락은 텍스트의 의미에 개입해선 안된다. 즉 발화자가 발화하는 순간, 그 문장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다. 이를 '음성'으로 확장하면 '음성 그 자체'를 대상으로 우리는 의미를 구분짓기 위한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음성' 그 자체를 텍스트로 옮기거나 하는 '불경한 짓'을 거두어야 한다. 대통령이 바이든을 만난 직후에 이 발언이 튀어 나왔다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그런 맥락 같은 건 대통령과 대통령실, 외교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정신적 착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신비평 이론에 의하면 '오류'로 걸어들어가는 지름길이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대통령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인간의 언어에서 모음이 힘이 세다는 걸 간파했다. A, E, I, O, U, 다섯 개의 모음에 색깔을 부여하고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라고 썼다.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선 "모든 감각의 규범을 철폐함으로써 미지해 도달해야 한다"며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랭보'의 시선으로 보면 대통령의 음성에서 간신히 구별 가능한 건 웅웅거리는 모음들이다. 모음은 발음과 언어의 의미를 구별짓는, 형태소보다 작으면서 형태소를 가능케 하는 첫번째 구분 도구다. 모음은 말 그대로 음성의 '어머니'이자, 퇴폐적이고 신비로운 '윙윙거림'들이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발음하는 대통령의 입술에서 '아이으믄'(전문가조차 감정불가라고 하니 이런 방식밖에 표기법이 없다)이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는데, 이 발성은 모음조차 명확하지 않아 평범한 사람 귀에 들리기엔 아와 어, 오와 으의 중간 어디엔가 발음의 좌표가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글자를 분절해서 보면 '바'로도, '날'로도 들리고, '이'로도, '리'로도 들리고, '든'으로도 '면'으로도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모음조차 불분명하니, 대통령의 음성은 듣는 사람에 따라 자음과 모음 조립이 가능한 숫자만큼 무한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이건 자연의 소리를 언어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짓이다. 이 무의미 앞에서 인류가 쌓아온 언어 해석의 맥락은 허무하고 천박하고 초라한 기술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그건 돼지 울음 소리, 소 울음 소리, 폭풍우 휘몰아치는 소리, 파도가 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은 것이 된다. 그런 소리들을 어떻게 '의미를 갖는 글자'로 바꿔치기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대통령의 '옥음'은 음성 그자체로만 보존해야 하는 특별한 작품이 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의 신성함을 누가 문자로 기록할 것인가. 해석의 독점권은 오로지 '신'에게만 허락되는데. 모든 규정과 해석은 불경한 시도다. 로고스여 영원하라.
대통령의 '음성'이 구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통령의 발음이 내포한 어떤 '착란'적 틈을 비집고 대통령실과 정부가 권위를 앞세워 그 자체로 구별 가능하지 않은 '모음의 우물거림'의 자리에 '날리면'이라는 단어를 쿠데타처럼 대동하고 등장했다. 그리고 법원은 마침내 그 쿠데타를 절반 가량 인정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법원을 동원해 확립한 'OOO=날리면'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60% 정도는 '날리면'이 '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들로, 30% 정도는 '날리면'이 '날리면'으로 들리는 사람들로, 10% 정도는 아예 이 말을 해석할 가치를 못 느끼거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건 교정돼야만 한다. 이제 후속 조치를 해야 할 시간이다. MBC가 '정정 보도'를 한다고 해서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제 '바이든'으로 기록된 모든 활자 매체와 과거 방송들, 유튜브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하나하나 정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은 시작일 뿐이다. 외교부는 모든 매체가 보도한 '바이든'을 정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실행하길 바란다.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자 이제 저 어색한 문장은 이렇게 완성되고 공인되어 '유한한 인간들'에게 '말씀'으로 차분히 내려오신다.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저 문장은 우리 인간들을 더욱 겸손하게 해 주는 것 같다. 들리는대로(들렸다고 착각하는대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규정해버리는 건, 우리의 감각을 맹신하는 우리 자신이 가진 문제이고 인간의 한계다. 어쩌면 인간의 감각 기관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미숙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저 문장은 차라리 하나의 언어예술 작품처럼 대해야 마땅하다. 언어예술 작품은 통상의 방식으로 청음해서 독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명심하면서.
우린 불경하게도 대통령의 웅얼거림을 함부로 인지하고 분석하려는 죄를 지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오처럼, '그래도 바이든'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지하 세계로 숨어들 것이다. 이 나라에선 '바이든'으로 들은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이제 '바이든'은 전설처럼 구전으로만 전해질 것이다. '바이든'으로 들은 전 국민의 3분의 2가 집단적으로 청각 기관이 문제를 일으킨 사건으로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이 '집단 청각 장애'의 원인을 어떤 훌륭한 학자가 맹렬히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하나 써 주었으면 한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피해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과를 드리면서 법원의 노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인지부조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런 정신착란적 글을 선보이게 돼 독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 뿐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대통령의 발음 기관이 어떤 형태 조합을 통해 물리적으로 음성을 내었는지조차 법원에서 진위를 가려야 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 대통령의 발언 중 OOOO 자리를 '바이든은'으로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청각 기관을 항시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마법과 같은 세상으로 빨려들어갔다. 토끼굴에 빠진 엘리스처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성지호 부장판사)는 12일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MBC에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 첫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별지 기재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외교부가 요구한 정정보도문은 이렇다. "본 방송은 지난 2022.9.22. <뉴스데스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미국 의회 및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욕설 및 비속어 발언을 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이하 생략)"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 '바이든'이 아니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을까? 뭐라고 말했길래 140개 넘는 거의 모든 언론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바이든'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까? 답은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날리면'은 정확한가.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정작 이 발언을 한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단 한번도 본인 육성으로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형체 불분명한 언사에 대해 해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도 '감정 불가' 의견서가 제출됐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솔직하고 짓궂은 심경으로 말하면, 뉴스데스크에서 앵커가 정정보도문을 읊고 나서 "윤 대통령은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지 않았고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습니다"는 말을 1회 낭독하는 모습을 꼭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 블랙 코미디를 후대에 길이 길이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사태를 직시하자.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인류가 가진 최고의 난제 중 하나인 언어의 생성에 관한 고대의 비밀에 대해 고민해 볼 철학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줬던, 70여년 전에 유행한 신비평 이론에 따르면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의 객관적인 증거는 오로지 "텍스트 위에 써진 단어들(words on the pages)"이다. 발화자(윤석열 대통령)의 의도나 사회적 지위, 문장이 발화된 장소나, 문장이 발화된 전후 시대적 맥락은 텍스트의 의미에 개입해선 안된다. 즉 발화자가 발화하는 순간, 그 문장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다. 이를 '음성'으로 확장하면 '음성 그 자체'를 대상으로 우리는 의미를 구분짓기 위한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음성' 그 자체를 텍스트로 옮기거나 하는 '불경한 짓'을 거두어야 한다. 대통령이 바이든을 만난 직후에 이 발언이 튀어 나왔다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그런 맥락 같은 건 대통령과 대통령실, 외교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정신적 착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신비평 이론에 의하면 '오류'로 걸어들어가는 지름길이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대통령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인간의 언어에서 모음이 힘이 세다는 걸 간파했다. A, E, I, O, U, 다섯 개의 모음에 색깔을 부여하고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라고 썼다.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선 "모든 감각의 규범을 철폐함으로써 미지해 도달해야 한다"며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랭보'의 시선으로 보면 대통령의 음성에서 간신히 구별 가능한 건 웅웅거리는 모음들이다. 모음은 발음과 언어의 의미를 구별짓는, 형태소보다 작으면서 형태소를 가능케 하는 첫번째 구분 도구다. 모음은 말 그대로 음성의 '어머니'이자, 퇴폐적이고 신비로운 '윙윙거림'들이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발음하는 대통령의 입술에서 '아이으믄'(전문가조차 감정불가라고 하니 이런 방식밖에 표기법이 없다)이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는데, 이 발성은 모음조차 명확하지 않아 평범한 사람 귀에 들리기엔 아와 어, 오와 으의 중간 어디엔가 발음의 좌표가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글자를 분절해서 보면 '바'로도, '날'로도 들리고, '이'로도, '리'로도 들리고, '든'으로도 '면'으로도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모음조차 불분명하니, 대통령의 음성은 듣는 사람에 따라 자음과 모음 조립이 가능한 숫자만큼 무한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이건 자연의 소리를 언어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짓이다. 이 무의미 앞에서 인류가 쌓아온 언어 해석의 맥락은 허무하고 천박하고 초라한 기술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그건 돼지 울음 소리, 소 울음 소리, 폭풍우 휘몰아치는 소리, 파도가 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은 것이 된다. 그런 소리들을 어떻게 '의미를 갖는 글자'로 바꿔치기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대통령의 '옥음'은 음성 그자체로만 보존해야 하는 특별한 작품이 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의 신성함을 누가 문자로 기록할 것인가. 해석의 독점권은 오로지 '신'에게만 허락되는데. 모든 규정과 해석은 불경한 시도다. 로고스여 영원하라.
대통령의 '음성'이 구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통령의 발음이 내포한 어떤 '착란'적 틈을 비집고 대통령실과 정부가 권위를 앞세워 그 자체로 구별 가능하지 않은 '모음의 우물거림'의 자리에 '날리면'이라는 단어를 쿠데타처럼 대동하고 등장했다. 그리고 법원은 마침내 그 쿠데타를 절반 가량 인정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법원을 동원해 확립한 'OOO=날리면'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60% 정도는 '날리면'이 '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들로, 30% 정도는 '날리면'이 '날리면'으로 들리는 사람들로, 10% 정도는 아예 이 말을 해석할 가치를 못 느끼거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건 교정돼야만 한다. 이제 후속 조치를 해야 할 시간이다. MBC가 '정정 보도'를 한다고 해서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제 '바이든'으로 기록된 모든 활자 매체와 과거 방송들, 유튜브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하나하나 정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은 시작일 뿐이다. 외교부는 모든 매체가 보도한 '바이든'을 정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실행하길 바란다.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자 이제 저 어색한 문장은 이렇게 완성되고 공인되어 '유한한 인간들'에게 '말씀'으로 차분히 내려오신다.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저 문장은 우리 인간들을 더욱 겸손하게 해 주는 것 같다. 들리는대로(들렸다고 착각하는대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규정해버리는 건, 우리의 감각을 맹신하는 우리 자신이 가진 문제이고 인간의 한계다. 어쩌면 인간의 감각 기관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미숙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저 문장은 차라리 하나의 언어예술 작품처럼 대해야 마땅하다. 언어예술 작품은 통상의 방식으로 청음해서 독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명심하면서.
우린 불경하게도 대통령의 웅얼거림을 함부로 인지하고 분석하려는 죄를 지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오처럼, '그래도 바이든'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지하 세계로 숨어들 것이다. 이 나라에선 '바이든'으로 들은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이제 '바이든'은 전설처럼 구전으로만 전해질 것이다. '바이든'으로 들은 전 국민의 3분의 2가 집단적으로 청각 기관이 문제를 일으킨 사건으로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이 '집단 청각 장애'의 원인을 어떤 훌륭한 학자가 맹렬히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하나 써 주었으면 한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피해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과를 드리면서 법원의 노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인지부조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런 정신착란적 글을 선보이게 돼 독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