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차에 사고 당한 날... 제발 술 먹고 차 몰지 마세요
자유인269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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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 15:40
나들이 길에 갑자기 차량 충돌, 휴일에 맞닥뜨린 끔찍한 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퇴 후 시골에 내려와 산 지 어느덧 일 년이다. 아내는 아직 도시에 할 일이 있어 주말에만 다녀간다. 쉬러 오려 해도 늘 일거리가 생긴다. 잔디마당에 꽃과 나무, 과실수는 집주인이 멀리 나가는 걸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다 보니 나도 요리가 즐거워져 바깥세상을 잊고 산다.
지난 해 가을, 하늘이 하도 고와서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전북 정읍에서 구절초 축제를 한다고 들었다. 사실 별채에 데크를 깔 계획이었는데 주문한 나사못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점수도 딸 겸 없던 계획을 세웠다. 일만 하다가 보내기 미안했고, 마침 내 생일이기도 했다. 처음엔 가까운 오서산을 가려다가 아내가 힘들까 싶어 행선지를 바꿨다. 억새에서 구절초로.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참게장정식으로 유명한 맛집을 알아두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차를 돌렸다. 휴대전화를 놓고 왔단다. 시간도 이르고 집에서 일찍 나섰기에 조급하지 않았다. 마침 교통도 원활해서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기로 했다. 거리도 비슷했다.
서천을 지나 도로공사 구간이 나타났다. 한쪽이 통제된 임시 편도 1차선, 앞에 뭔가 시커먼 게 나타났다. 건너편 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내 앞으로 다가온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어, 뭐야!" 툭 튀어나온 한마디와 함께 피할 틈 없이 맞닥뜨렸다. "우드득" 소리와 충격을 느꼈는데 차 밖으로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 대신 횡설수설했다. 처음 본 사람이 내게 뭐라 얘기한다. 보험회사 직원이란다. 묻는 말이 무슨 내용인지 분명치 않다. 블랙박스를 달라는 경찰, 구급차에 타라는 119구급대원의 말을 듣고도 비현실적인 현실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조금 전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간은 또박또박 사고의 순간을 향했고 마치 기다린 것처럼 우연은 거듭됐다. '일정을 바꾸지 않고 산에 갔다면, 시간에 맞춰 출발을 늦췄다면, 휴대전화를 놓고 오지 않았다면, 그냥 국도 대신 고속도로로 갔다면...' 이 모든 '만약에' 중 어느 하나라도 바뀌었다면 사고는 지워졌을까?
아인슈타인은 우연을 '신이 익명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럼 사고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나? 아니다.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어느 하나 달리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 이 사고에서 바뀌어야 할 단서는 상대방 운전자의 음주운전이었다.
달갑지 않게 휴일에 출동한 경찰, 소방대원, 보험회사 직원과 피곤한 표정의 응급실 의사도,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사고 차 뒤로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과 그럼에도 운전자를 차에서 꺼내주려 나섰던 선량한 모습의 사람들도, 이 백주의 음주운전이 필연이라면 너무 억울하고 허망하지 않을까?
출고 후 처음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에어백 덕분에 중상은 면했다. 연휴라 병원 대부분이 휴진이었고 우린 어쩔 수 없이 부러지고 멍든 몸으로 여러 장의 엑스레이(X-Ray) 사진과 함께 귀가했다. 참 얄궂게도 그새 데크 나사못이 배송돼 대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내는 골절된 손가락 통증을 견뎌내며 진통제를 털어 넣었고, 나도 쑤심을 증폭시키는 기침과 하품을 참아야 했다. 잘 모르는 지역 병원 몇 군데를 인터넷으로 뒤져 내일 갈 곳을 정하고 나니 두통과 오한이 찾아왔다. 땀에 젖어 뒤척이며 긴 밤 지새고, 다음 날에야 진단과 입원을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우린 내내 붙어 다녔다. 말 그대로 동병상련이었으니까. 병원 주변을 산책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느지막이 동지애가 두터워졌다.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필연이라면 이만한 게 다행이다. 더 큰 불행이 비켜 갔을 수도 있다.' 좀 섬뜩하긴 하지만 말이다.
올가을엔 구절초를 만나 구구절절 얘기해야겠다. 널 만나러 오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고. 우리가 이렇게 웃는 낯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퇴 후 시골에 내려와 산 지 어느덧 일 년이다. 아내는 아직 도시에 할 일이 있어 주말에만 다녀간다. 쉬러 오려 해도 늘 일거리가 생긴다. 잔디마당에 꽃과 나무, 과실수는 집주인이 멀리 나가는 걸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다 보니 나도 요리가 즐거워져 바깥세상을 잊고 산다.
지난 해 가을, 하늘이 하도 고와서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전북 정읍에서 구절초 축제를 한다고 들었다. 사실 별채에 데크를 깔 계획이었는데 주문한 나사못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점수도 딸 겸 없던 계획을 세웠다. 일만 하다가 보내기 미안했고, 마침 내 생일이기도 했다. 처음엔 가까운 오서산을 가려다가 아내가 힘들까 싶어 행선지를 바꿨다. 억새에서 구절초로.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참게장정식으로 유명한 맛집을 알아두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차를 돌렸다. 휴대전화를 놓고 왔단다. 시간도 이르고 집에서 일찍 나섰기에 조급하지 않았다. 마침 교통도 원활해서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기로 했다. 거리도 비슷했다.
서천을 지나 도로공사 구간이 나타났다. 한쪽이 통제된 임시 편도 1차선, 앞에 뭔가 시커먼 게 나타났다. 건너편 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내 앞으로 다가온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어, 뭐야!" 툭 튀어나온 한마디와 함께 피할 틈 없이 맞닥뜨렸다. "우드득" 소리와 충격을 느꼈는데 차 밖으로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 대신 횡설수설했다. 처음 본 사람이 내게 뭐라 얘기한다. 보험회사 직원이란다. 묻는 말이 무슨 내용인지 분명치 않다. 블랙박스를 달라는 경찰, 구급차에 타라는 119구급대원의 말을 듣고도 비현실적인 현실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 |
ⓒ 김은상 |
조금 전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간은 또박또박 사고의 순간을 향했고 마치 기다린 것처럼 우연은 거듭됐다. '일정을 바꾸지 않고 산에 갔다면, 시간에 맞춰 출발을 늦췄다면, 휴대전화를 놓고 오지 않았다면, 그냥 국도 대신 고속도로로 갔다면...' 이 모든 '만약에' 중 어느 하나라도 바뀌었다면 사고는 지워졌을까?
아인슈타인은 우연을 '신이 익명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럼 사고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나? 아니다.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어느 하나 달리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 이 사고에서 바뀌어야 할 단서는 상대방 운전자의 음주운전이었다.
달갑지 않게 휴일에 출동한 경찰, 소방대원, 보험회사 직원과 피곤한 표정의 응급실 의사도,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사고 차 뒤로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과 그럼에도 운전자를 차에서 꺼내주려 나섰던 선량한 모습의 사람들도, 이 백주의 음주운전이 필연이라면 너무 억울하고 허망하지 않을까?
출고 후 처음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에어백 덕분에 중상은 면했다. 연휴라 병원 대부분이 휴진이었고 우린 어쩔 수 없이 부러지고 멍든 몸으로 여러 장의 엑스레이(X-Ray) 사진과 함께 귀가했다. 참 얄궂게도 그새 데크 나사못이 배송돼 대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내는 골절된 손가락 통증을 견뎌내며 진통제를 털어 넣었고, 나도 쑤심을 증폭시키는 기침과 하품을 참아야 했다. 잘 모르는 지역 병원 몇 군데를 인터넷으로 뒤져 내일 갈 곳을 정하고 나니 두통과 오한이 찾아왔다. 땀에 젖어 뒤척이며 긴 밤 지새고, 다음 날에야 진단과 입원을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우린 내내 붙어 다녔다. 말 그대로 동병상련이었으니까. 병원 주변을 산책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느지막이 동지애가 두터워졌다.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필연이라면 이만한 게 다행이다. 더 큰 불행이 비켜 갔을 수도 있다.' 좀 섬뜩하긴 하지만 말이다.
올가을엔 구절초를 만나 구구절절 얘기해야겠다. 널 만나러 오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고. 우리가 이렇게 웃는 낯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