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도 야당도 ‘부동산 개발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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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8 08:45
與가 ‘메가 서울’로 호응 얻자
野, 신도시·구도심 개발 이어
수도권 철도 지하화까지 내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고민정 최고위원이 17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수도권 표심을 겨냥해 ‘메가 서울’ 구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민주당도 최근 총선용 부동산 공약을 여럿 내놓고 있다. /이덕훈 기자
내년 4·10 총선을 앞둔 여야(與野)가 전국 규모 부동산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수도권 표심(票心)을 겨냥한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의 서울 편입 논의를 시작하자 더불어민주당은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재정비 특별법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했다. 여당은 아예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응수했다. 야당은 서울 목동·상계동까지 개발 범주에 넣었고, 여당은 이에 질세라 하남·구리·광명 등의 추가 서울 편입론을 제시했다. 정부가 오산·용인·구리에 신규 택지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지난 15일, 민주당은 옛 지방 도심 개발에 각종 특혜를 주는 도시 재정비 촉진법을 제안했다. 민주당은 서울 지하철 5·9호선 연장을 비롯, 경인선 등 도시 철도 지하화 공약도 다시 꺼내 들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고강도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부동산 시장을 압박한 민주당이 총선용 부동산 공약을 마구잡이로 내놓는다는 지적이 크다. 대다수 정책은 정부·여당이 기존에 추진하던 내용이다. 이에 민주당 내에서조차 “우리가 국민의힘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더불어부동산당인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같은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에선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이 대선과 지방선거 패인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최근 지하철 1호선 등 수도권 도심 지상(地上) 철도를 지하화하는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서울·인천·부천 등지의 민주당 의원들도 이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별법은 지상 역사(驛舍) 건물을 개발 우선 지역으로 지정, 필요시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간 사업자에게 혜택을 주는 조항도 있다. 경부·경인·경의·경원·경춘·중앙선 철도를 모두 지하화한다면 수도권 전체가 공사판이 될 만큼 파급력이 큰 정책이다. 그러나 사업 비용이 막대한 데 비해 효용이 낮다는 이유로 역대 정부에서 현실화하지 못했다.
그래픽=이철원
수도권 지상 철도 지하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등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추산한 사업비는 45조2000억원 규모다. 이인영 의원은 “1호선 지하화는 2008년 총선 때, 민주당이 전국 최초로 공약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경부 대운하에 맞서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놓겠다며 철도 지하화를 내걸었다. 이후 총선 때마다 수도권 유권자를 의식한 여야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러나 수십조 원 재원을 마련할 대책도 없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선거 때마다 뒤따랐다. 정치권 관계자는 “15년 넘은 떡밥 공약”이라고 했다.
쇠락하는 지방의 옛 도심을 살리겠다는 취지의 도시 재정비 촉진법은 ‘수도권만 대한민국이냐’ ‘우리 지역 집값도 올려야 한다’ 등 지역 민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민주당 최인호 의원 등 국토위원들은 “원도심과 신도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용적률 상향 등 추가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민주당이 발의한 관련 개정안을 보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 중앙정부의 기반 시설 설치비 지원 비율 상한을 기존 50%에서 70%까지 높이는 조항도 있다.
민주당 내에선 “이런 토건(土建) 공약이 당 정체성과 맞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8월 발간한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에서 토지공개념 사상에 입각한 부동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역 의원 90여 명이 이름을 올린 이 보고서에서 민주당은 ‘중도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부동산 불로소득을 철저하게 환수하고 전 국민이 이를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집값 안정을 위한 적극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거나 주저하면서 실기(失期)했다”고 했다. 개발·과세·금융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약했다는 것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서민 주거 안정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던 민주당이 총선이 다가오자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 부동산 개발 법안을 쏟아내며 민간 사업자 혜택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김성수(정치외교학) 교수는 “여당이 메가 서울 공약을 발표하자 수도권 민심이 요동치는데 민주당이 굉장히 다급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고 했다. 야당 관계자는 “정부·여당을 상대로 치르는 선거라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7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금융사·정유사에 횡재세를 걷고 대학생 학자금 지원법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런 민주당을 향해 국민의힘은 포퓰리즘 공약을 던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역시 내년 예산안에 ▲명절 기간 전 국민 반값 여객선 운영 ▲타 지역 기업 인턴 참여 청년에게 체류비 지원 ▲청년 월세 확대 ▲노인 무릎 관절 수술비 지원 확대 ▲노인 임플란트 지원 확대 ▲소상공인 이자 감면 ▲이공 계열 장학금 확대 같은 등 선심성·현금성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세종대 임재만(부동산학) 교수는 “나라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총선을 앞두고 결국 부동산 개발 등 ‘선거용 법안’만 처리하려고 하는 행태는 투기를 부추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상 철도 지하화 같은 공약은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것”이라며 “표만 나온다면 당이 추구하는 가치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고 했다.
野, 신도시·구도심 개발 이어
수도권 철도 지하화까지 내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고민정 최고위원이 17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수도권 표심을 겨냥해 ‘메가 서울’ 구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민주당도 최근 총선용 부동산 공약을 여럿 내놓고 있다. /이덕훈 기자
내년 4·10 총선을 앞둔 여야(與野)가 전국 규모 부동산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수도권 표심(票心)을 겨냥한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의 서울 편입 논의를 시작하자 더불어민주당은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재정비 특별법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했다. 여당은 아예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응수했다. 야당은 서울 목동·상계동까지 개발 범주에 넣었고, 여당은 이에 질세라 하남·구리·광명 등의 추가 서울 편입론을 제시했다. 정부가 오산·용인·구리에 신규 택지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지난 15일, 민주당은 옛 지방 도심 개발에 각종 특혜를 주는 도시 재정비 촉진법을 제안했다. 민주당은 서울 지하철 5·9호선 연장을 비롯, 경인선 등 도시 철도 지하화 공약도 다시 꺼내 들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고강도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부동산 시장을 압박한 민주당이 총선용 부동산 공약을 마구잡이로 내놓는다는 지적이 크다. 대다수 정책은 정부·여당이 기존에 추진하던 내용이다. 이에 민주당 내에서조차 “우리가 국민의힘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더불어부동산당인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같은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에선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이 대선과 지방선거 패인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최근 지하철 1호선 등 수도권 도심 지상(地上) 철도를 지하화하는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서울·인천·부천 등지의 민주당 의원들도 이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별법은 지상 역사(驛舍) 건물을 개발 우선 지역으로 지정, 필요시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간 사업자에게 혜택을 주는 조항도 있다. 경부·경인·경의·경원·경춘·중앙선 철도를 모두 지하화한다면 수도권 전체가 공사판이 될 만큼 파급력이 큰 정책이다. 그러나 사업 비용이 막대한 데 비해 효용이 낮다는 이유로 역대 정부에서 현실화하지 못했다.
수도권 지상 철도 지하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등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추산한 사업비는 45조2000억원 규모다. 이인영 의원은 “1호선 지하화는 2008년 총선 때, 민주당이 전국 최초로 공약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경부 대운하에 맞서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놓겠다며 철도 지하화를 내걸었다. 이후 총선 때마다 수도권 유권자를 의식한 여야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러나 수십조 원 재원을 마련할 대책도 없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선거 때마다 뒤따랐다. 정치권 관계자는 “15년 넘은 떡밥 공약”이라고 했다.
쇠락하는 지방의 옛 도심을 살리겠다는 취지의 도시 재정비 촉진법은 ‘수도권만 대한민국이냐’ ‘우리 지역 집값도 올려야 한다’ 등 지역 민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민주당 최인호 의원 등 국토위원들은 “원도심과 신도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용적률 상향 등 추가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민주당이 발의한 관련 개정안을 보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 중앙정부의 기반 시설 설치비 지원 비율 상한을 기존 50%에서 70%까지 높이는 조항도 있다.
민주당 내에선 “이런 토건(土建) 공약이 당 정체성과 맞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8월 발간한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에서 토지공개념 사상에 입각한 부동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역 의원 90여 명이 이름을 올린 이 보고서에서 민주당은 ‘중도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부동산 불로소득을 철저하게 환수하고 전 국민이 이를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집값 안정을 위한 적극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거나 주저하면서 실기(失期)했다”고 했다. 개발·과세·금융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약했다는 것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서민 주거 안정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던 민주당이 총선이 다가오자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 부동산 개발 법안을 쏟아내며 민간 사업자 혜택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김성수(정치외교학) 교수는 “여당이 메가 서울 공약을 발표하자 수도권 민심이 요동치는데 민주당이 굉장히 다급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고 했다. 야당 관계자는 “정부·여당을 상대로 치르는 선거라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7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금융사·정유사에 횡재세를 걷고 대학생 학자금 지원법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런 민주당을 향해 국민의힘은 포퓰리즘 공약을 던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역시 내년 예산안에 ▲명절 기간 전 국민 반값 여객선 운영 ▲타 지역 기업 인턴 참여 청년에게 체류비 지원 ▲청년 월세 확대 ▲노인 무릎 관절 수술비 지원 확대 ▲노인 임플란트 지원 확대 ▲소상공인 이자 감면 ▲이공 계열 장학금 확대 같은 등 선심성·현금성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세종대 임재만(부동산학) 교수는 “나라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총선을 앞두고 결국 부동산 개발 등 ‘선거용 법안’만 처리하려고 하는 행태는 투기를 부추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상 철도 지하화 같은 공약은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것”이라며 “표만 나온다면 당이 추구하는 가치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