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벗은 ‘노병 정찰기’ 새 임무…“광물탐사를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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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10:35
연구용 ‘ER-2’ 항공기, 최근 ‘공중 광물 찾기’ 투입
U-2 정찰기 개조한 기체…분광기로 미 영토 훑어
미·중 기술경쟁 영향 받은 ‘공급망 재편’ 대응
2026년까지 전자제품 등에 필요한 물질 탐색하늘을 날고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 연구용 항공기 ER-2 모습. 대기관측에 주로 쓰였지만, 지난 9월부터는 미국 남서부 지역의 광물자원 탐사에 투입됐다. NASA 제공
1960년 5월1일, 소련군 방공부대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고공 정찰기인 U-2가 자국의 군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영공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U-2의 영공 침범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날 소련군의 대응 수위는 레이더를 통한 추적에만 그치지 않았다.
소련군은 우랄산맥 근처 스베르들롭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하늘로 파고들어 고도 21㎞를 날던 U-2 정찰기를 향해 지대공 미사일을 쐈다. 고도 21㎞는 국제선 여객기 순항 고도의 2배에 달하는 곳이다.
미사일은 U-2 후미에서 폭발했다. 기체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U-2는 지상으로 추락했고,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한 뒤 소련군에 생포됐다. 이 사건으로 미·소 냉전 수위는 한층 격화됐다.
1955년 첫 비행한 U-2 정찰기는 등장한 지 70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각종 첨단 기술이 들어가는 군용 장비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장수’다.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U-2 정찰기는 워낙 비행 고도가 높아 인공위성에 준할 정도의 넓은 시야로 땅을 관측할 수 있다. 날개가 매우 길어 장시간 임무 수행도 가능하다. 세월이 흘렀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비행기다.
그런데 ‘군복을 벗은’ U-2 정찰기가 최근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U-2를 과학 연구용으로 개조한 ‘ER-2’라는 비행기를 운영하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나선 것이다. NASA는 ER-2를 자국 영토에서 광물자원을 찾는 일에 투입했다. NASA가 국가경제와 직접 연관된 일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U-2가 미·소 냉전시대 정보 전쟁의 첨병이었다면 ER-2는 미·중 신냉전시대 경제 전쟁에서 기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첨병으로 나섰다.
구름 위를 비행 중인 U-2 정찰기. 고도 21㎞를 날 수 있는 고고도 비행 능력을 갖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U-2를 바탕으로 기체 크기를 좀 더 키운 과학 연구용 항공기 ER-2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미국 연방정부 제공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U-2 정찰기를 개조한 과학 연구용 항공기 ER-2를 이용해 지난 9월부터 자국 영토에 묻힌 광물자원 탐사에 나섰다고 공개했다. NASA가 보유한 총 2기의 ER-2 가운데 1기가 투입됐다.
ER-2 동체는 18.9m, 날개는 31.5m다. 동체와 날개 모두 U-2보다 4~5m 길다. 덩치를 키운 덕에 과학 탐사용 장비를 다량 실을 수 있다.
ER-2도 U-2처럼 고도 21㎞까지 상승할 수 있다. 조종사는 우주복과 비슷하게 생긴 여압복을 입는다. 여압복은 옷 내부에 공기를 불어넣어 대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에서도 조종사가 안정된 기압을 느끼도록 한다.
NASA에 따르면 ER-2가 투입될 상공은 사막 같은 건조지대가 펼쳐진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등 미국 남서부다.
ER-2는 이곳을 날면서 특수 분광기를 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땅속에 존재하는 광물에서 나오는 수백 개 파장의 빛을 분석하는 것이다. 사람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까지 종합해 입체적인 탐지를 한다.
이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미리 냄새를 맡아 라면인지, 돈가스인지 알아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중장비나 삽으로 땅을 일일이 파지 않아도 광물마다 달리 나오는 특유의 광선을 분석해 여러 광물의 매장 위치와 종류를 빠르고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우주비행사를 연상케 하는 여압복을 입은 조종사가 ER-2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NASA 제공
사실 ER-2 본래 임무는 대기 관측이다. 땅에서 가까운 대류권은 물론 고도 10㎞ 이상 성층권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등을 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워낙 높이 날기 때문에 인공위성에 들어갈 센서를 미리 시험하는 역할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돈’과 직결되지 않는 순수 과학연구 목적으로 쓰이는 비행기다.
이런 ER-2를 NASA가 국가경제와 직결되는 광물자원 탐사에 투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2차전지용 리튬 확보 경쟁처럼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공급망 재편 때문이다. 첨단 기술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공업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NASA는 ER-2로 어떤 광물자원을 찾으려는 것인지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달 초 발표한 공식자료를 통해 “노트북 컴퓨터, 휴대전화 등 일상적인 제품에 들어갈 광물을 확인해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이 탐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과 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미·중 간 신냉전이 시작된 현재, ER-2가 과거 U-2와는 다른 각도에서 미국의 안보 첨병으로서 역할하는 셈이다. ER-2를 이용한 광물 탐사는 1600만 달러(206억원)가 투입돼 2026년까지 진행된다. NASA는 수집한 자료로 광물자원 지도를 만들 예정이다.
U-2 정찰기 개조한 기체…분광기로 미 영토 훑어
미·중 기술경쟁 영향 받은 ‘공급망 재편’ 대응
2026년까지 전자제품 등에 필요한 물질 탐색하늘을 날고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 연구용 항공기 ER-2 모습. 대기관측에 주로 쓰였지만, 지난 9월부터는 미국 남서부 지역의 광물자원 탐사에 투입됐다. NASA 제공
1960년 5월1일, 소련군 방공부대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고공 정찰기인 U-2가 자국의 군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영공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U-2의 영공 침범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날 소련군의 대응 수위는 레이더를 통한 추적에만 그치지 않았다.
소련군은 우랄산맥 근처 스베르들롭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하늘로 파고들어 고도 21㎞를 날던 U-2 정찰기를 향해 지대공 미사일을 쐈다. 고도 21㎞는 국제선 여객기 순항 고도의 2배에 달하는 곳이다.
미사일은 U-2 후미에서 폭발했다. 기체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U-2는 지상으로 추락했고,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한 뒤 소련군에 생포됐다. 이 사건으로 미·소 냉전 수위는 한층 격화됐다.
1955년 첫 비행한 U-2 정찰기는 등장한 지 70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각종 첨단 기술이 들어가는 군용 장비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장수’다.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U-2 정찰기는 워낙 비행 고도가 높아 인공위성에 준할 정도의 넓은 시야로 땅을 관측할 수 있다. 날개가 매우 길어 장시간 임무 수행도 가능하다. 세월이 흘렀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비행기다.
그런데 ‘군복을 벗은’ U-2 정찰기가 최근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U-2를 과학 연구용으로 개조한 ‘ER-2’라는 비행기를 운영하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나선 것이다. NASA는 ER-2를 자국 영토에서 광물자원을 찾는 일에 투입했다. NASA가 국가경제와 직접 연관된 일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U-2가 미·소 냉전시대 정보 전쟁의 첨병이었다면 ER-2는 미·중 신냉전시대 경제 전쟁에서 기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첨병으로 나섰다.
구름 위를 비행 중인 U-2 정찰기. 고도 21㎞를 날 수 있는 고고도 비행 능력을 갖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U-2를 바탕으로 기체 크기를 좀 더 키운 과학 연구용 항공기 ER-2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미국 연방정부 제공
땅에서 나오는 광선 분석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U-2 정찰기를 개조한 과학 연구용 항공기 ER-2를 이용해 지난 9월부터 자국 영토에 묻힌 광물자원 탐사에 나섰다고 공개했다. NASA가 보유한 총 2기의 ER-2 가운데 1기가 투입됐다.
ER-2 동체는 18.9m, 날개는 31.5m다. 동체와 날개 모두 U-2보다 4~5m 길다. 덩치를 키운 덕에 과학 탐사용 장비를 다량 실을 수 있다.
ER-2도 U-2처럼 고도 21㎞까지 상승할 수 있다. 조종사는 우주복과 비슷하게 생긴 여압복을 입는다. 여압복은 옷 내부에 공기를 불어넣어 대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에서도 조종사가 안정된 기압을 느끼도록 한다.
NASA에 따르면 ER-2가 투입될 상공은 사막 같은 건조지대가 펼쳐진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등 미국 남서부다.
ER-2는 이곳을 날면서 특수 분광기를 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땅속에 존재하는 광물에서 나오는 수백 개 파장의 빛을 분석하는 것이다. 사람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까지 종합해 입체적인 탐지를 한다.
이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미리 냄새를 맡아 라면인지, 돈가스인지 알아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중장비나 삽으로 땅을 일일이 파지 않아도 광물마다 달리 나오는 특유의 광선을 분석해 여러 광물의 매장 위치와 종류를 빠르고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우주비행사를 연상케 하는 여압복을 입은 조종사가 ER-2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NASA 제공
기술 경쟁 위한 ‘임무 전환’
사실 ER-2 본래 임무는 대기 관측이다. 땅에서 가까운 대류권은 물론 고도 10㎞ 이상 성층권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등을 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워낙 높이 날기 때문에 인공위성에 들어갈 센서를 미리 시험하는 역할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돈’과 직결되지 않는 순수 과학연구 목적으로 쓰이는 비행기다.
이런 ER-2를 NASA가 국가경제와 직결되는 광물자원 탐사에 투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2차전지용 리튬 확보 경쟁처럼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공급망 재편 때문이다. 첨단 기술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공업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NASA는 ER-2로 어떤 광물자원을 찾으려는 것인지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달 초 발표한 공식자료를 통해 “노트북 컴퓨터, 휴대전화 등 일상적인 제품에 들어갈 광물을 확인해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이 탐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과 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미·중 간 신냉전이 시작된 현재, ER-2가 과거 U-2와는 다른 각도에서 미국의 안보 첨병으로서 역할하는 셈이다. ER-2를 이용한 광물 탐사는 1600만 달러(206억원)가 투입돼 2026년까지 진행된다. NASA는 수집한 자료로 광물자원 지도를 만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