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김민기 대표 죽는날까지 하려 했는데…더 못 뛰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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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16:58
32년간 소극장 학전 운영…"오로지 해야할 일이라 생각했을 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하철 1호선' 4천회 공연"
학전 김민기 대표
2018년 2월 26일 학전 김민기 대표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2018 학전 신년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그동안 학전에서 열다섯 작품 정도를 쓰고 연출해 공연을 올렸는데, 일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2년간 대학로에 일군 터전을 돌아보는 김민기(72) 학전 대표의 소회는 땀을 닦으며 그간의 일을 돌아보는 농부처럼 소박했다.
한자로 배울 학(學)에 밭 전(田)자를 쓰는 소극장 학전은 김 대표의 평생 일터였다. 최근 학전의 문을 닫기로 결정한 그는 담담한 소회에 이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김 대표는 19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91년 3월 15일 문을 연 학전은 창립 33주년을 맞는 내년 3월 15일을 끝으로 폐관한다.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던 상황에서 김 대표의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 대표는 "코로나19 유행으로 급격하게 관객이 줄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폐관을 고민했다"며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더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본래 학전은 80년대 김 대표와 밀접한 관계였던 극단 연우무대가 입주할 공간이었다. 김 대표는 연우무대의 입주가 여의찮게 되자 본인이 극장 운영을 도맡아 지금까지 학전을 책임져왔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부른 그는 음반 계약금으로 극장의 문을 열었고 저작권료를 쏟아부어 학전을 운영했다. 늘 빠듯한 살림에 살던 집이 담보로 잡힐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극장 운영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운영상 어려움에도 극장을 놓지 않은 까닭을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오로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왔을 뿐입니다."
학전블루 소극장 앞 김광석 노래비
[촬영 이은정]
뚝심으로 대학로를 지킨 그의 손을 거쳐 수많은 예술인이 스타로 성장했다.
들국화, 유재하, 강산에, 동물원, 안치환 등 통기타 아날로그 가수들은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이끌어갔다. 특히 고(故) 김광석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김 대표는 "1991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에 격변을 일으키며 통기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을 때였다"며 "학전이 그들을 대거 유치하며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발원지가 됐고, 가장 대표적인 가수가 김광석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음악인에게는 관객이 필요하고 이들이 만나는 곳이 공연장이다. 음악은 들어줄 관객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연기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학전을 상징하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설경구와 황정민, 조승우 등 스타 배우들을 배출했다.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한 이래 8천회 공연, 누적 관객 70만명을 달성하며 뮤지컬계의 역사를 쓴 작품이다.
김 대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원작자인 독일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는 김 대표가 한국의 현실에 맞게 번안하고 연출한 작품의 독창성을 인정해 2000년부터 저작권료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개막한 새로운 시즌에서도 김 대표는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공연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학전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하철 1호선'의 4천번째 공연이 열렸던 2008년 12월 31일"이라며 "15년을 줄기차게 달려온 공연이라 의미가 컸다. 이번에 학전에서 열리는 공연이 마지막 '지하철 1호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전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학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대표는 다른 공연장이 좀처럼 올리지 않는 어린이극을 올리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아동·청소년 문화풍토로 보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왔다"며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에는 입시경쟁과 소모적인 오락만이 존재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숨통을 터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어린이극을 함께 감상하는 어른들을 향해서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잣대로만 보지 말고 그 자체로 보아주었으면 한다"며 "아이들도 온갖 고민과 소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했다.
학전은 폐관까지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김광석 노래 경연대회,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를 남겨뒀다. 마지막 공연은 학전과 인연을 맺은 가수들의 릴레이 콘서트가 될 예정이다.
학전의 33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김 대표는 끝까지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김민기 학전 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하철 1호선' 4천회 공연"
학전 김민기 대표
2018년 2월 26일 학전 김민기 대표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2018 학전 신년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그동안 학전에서 열다섯 작품 정도를 쓰고 연출해 공연을 올렸는데, 일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2년간 대학로에 일군 터전을 돌아보는 김민기(72) 학전 대표의 소회는 땀을 닦으며 그간의 일을 돌아보는 농부처럼 소박했다.
한자로 배울 학(學)에 밭 전(田)자를 쓰는 소극장 학전은 김 대표의 평생 일터였다. 최근 학전의 문을 닫기로 결정한 그는 담담한 소회에 이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김 대표는 19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91년 3월 15일 문을 연 학전은 창립 33주년을 맞는 내년 3월 15일을 끝으로 폐관한다.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던 상황에서 김 대표의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 대표는 "코로나19 유행으로 급격하게 관객이 줄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폐관을 고민했다"며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더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본래 학전은 80년대 김 대표와 밀접한 관계였던 극단 연우무대가 입주할 공간이었다. 김 대표는 연우무대의 입주가 여의찮게 되자 본인이 극장 운영을 도맡아 지금까지 학전을 책임져왔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부른 그는 음반 계약금으로 극장의 문을 열었고 저작권료를 쏟아부어 학전을 운영했다. 늘 빠듯한 살림에 살던 집이 담보로 잡힐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극장 운영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운영상 어려움에도 극장을 놓지 않은 까닭을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오로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왔을 뿐입니다."
학전블루 소극장 앞 김광석 노래비
[촬영 이은정]
뚝심으로 대학로를 지킨 그의 손을 거쳐 수많은 예술인이 스타로 성장했다.
들국화, 유재하, 강산에, 동물원, 안치환 등 통기타 아날로그 가수들은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이끌어갔다. 특히 고(故) 김광석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김 대표는 "1991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에 격변을 일으키며 통기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을 때였다"며 "학전이 그들을 대거 유치하며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발원지가 됐고, 가장 대표적인 가수가 김광석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음악인에게는 관객이 필요하고 이들이 만나는 곳이 공연장이다. 음악은 들어줄 관객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연기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학전을 상징하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설경구와 황정민, 조승우 등 스타 배우들을 배출했다.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한 이래 8천회 공연, 누적 관객 70만명을 달성하며 뮤지컬계의 역사를 쓴 작품이다.
김 대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원작자인 독일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는 김 대표가 한국의 현실에 맞게 번안하고 연출한 작품의 독창성을 인정해 2000년부터 저작권료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개막한 새로운 시즌에서도 김 대표는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공연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학전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하철 1호선'의 4천번째 공연이 열렸던 2008년 12월 31일"이라며 "15년을 줄기차게 달려온 공연이라 의미가 컸다. 이번에 학전에서 열리는 공연이 마지막 '지하철 1호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전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학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대표는 다른 공연장이 좀처럼 올리지 않는 어린이극을 올리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아동·청소년 문화풍토로 보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왔다"며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에는 입시경쟁과 소모적인 오락만이 존재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숨통을 터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어린이극을 함께 감상하는 어른들을 향해서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잣대로만 보지 말고 그 자체로 보아주었으면 한다"며 "아이들도 온갖 고민과 소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했다.
학전은 폐관까지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김광석 노래 경연대회,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를 남겨뒀다. 마지막 공연은 학전과 인연을 맺은 가수들의 릴레이 콘서트가 될 예정이다.
학전의 33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김 대표는 끝까지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김민기 학전 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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