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명랑하게 애국하며 살기···최규진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책에서 건진 문단]
자유인90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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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17:02
‘책에서 건진 문단’(책건문)은 경향신문 책 면 ‘책과 삶’ 머리기사의 확장판 이름입니다. 지면 서평은 ‘지면 제약’ 때문에 한두 문장만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건문’은 문단 단위로 내용을 소개합니다. 지면 서평도 더 쉽게 자세하게 풀었습니다. 지은이 뜻을 더 정확하게 전하려는 취지의 보도물입니다. 경향신문 칸업 콘텐츠입니다. 책 문단을 통째로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책에서 건진 문단]‘김건희와 미소지니’부터 ‘트렌스젠더 적대’, ‘넥슨 여혐’까지···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책에서 건진 문단’(책건문)은 경향신문 책 면 ‘책과 삶’ 머리기사의 확장판 이름입니다. 지...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12020650001
“동전에도, 우표에도, 책 표지와 깃발에도, 포스터에도, 그리고 담뱃갑에도, 어디에도 쫓아오고 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빅 브러더의 텔레스크린 일상 감시를 묘사하며 쓴 구절입니다. <1984>가 나오기 10년 전인 1939년 조선총독부 사무관인 도모토 하야오는 잡지 ‘조선’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의 눈길이 닿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선전매체로 이용한다. 보기를 들면, 현수막, 스탬프, 연초 카드, 그림엽서, 영화자막, 애드벌룬, 전광판, 달력, 지도 등이다. 조선전매국에서 담배 속에 시국에 관한 표어 등을 적은 카드를 넣어서 시국을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어디든 쫓아가 감시하고, 선전하려는 게 비슷합니다.
1929년 열린 조선박람회 포스터. 조선 궁궐은 식민지로 전락한 근대를 상징한다. 원 모양은 기계, 축산, 교육, 무역, 공업, 병원 이미지를 그렸다. 이 모든 영역이 발전했다는 걸 박람회에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배치다. 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
최규진(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교수)은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서해문집)에서 “(도모토의) 말은 일제의 선전 메커니즘을 아주 잘 보여준다. 또한, 모든 문화와 예술 영역은 통제의 대상이자 국민동원 수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선전은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번역어입니다. 최규진은 머리말에서 포스터와 선전의 뜻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선전이란 무엇일까. 크게 보면 “어떤 생각을 널리 유포하는 메커니즘이 곧 선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선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선전이란 자기 또는 자기 집단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상대방 또는 다른 집단을 끌어들이는 수단이다.” “선전이란 어떤 주장을 선포하고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요즈음에도 선전을 이와 비슷하게 정의하는 일이 많다. 보기를 들면 “선전이란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안해 낸 개념을 전파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선전 “국가 의지 전달, 지배 이데올로기 확산 장치”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제1차 세계대전 뒤부터 선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주축의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선전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죠.
원래 선전은 부정적인 뜻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최규진은 “18〜19세기 동안 대부분의 유럽 언어권에서 선전은 정치적 신념의 유포, 종교적 복음의 전파, 상업광고 등을 일컫는 중립적 의미로 쓰였다”고 말합니다.
1941년 9월 18일 자 부산일보에 실린 포스터. 제목은 “하늘, 시내가 가야 할 곳”이라고 적힌 포스터. 서구의 포스터를 차용했다. 서해문집 제공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선전이란 조작된 설득”이라는 부정적 느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침투하기 위해 동원하는 교활한 방법”이자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촉구하려고 그들의 인식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것”으로, “여론을 움직이려 할 때 쓰는 일련의 기술”이자 “정교하게 조작된 기만이며 속임수”로 여기곤 했죠.
그렇다고 국가나 지배계급이 선전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규진은 “선전은 감성에 호소한다. 그러나 선전을 단순히 비논리적 사기나 거짓말과 똑같은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선전이란 국가의 의지를 전달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주요한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피식민지 아들의 애국적 충정과 지배자 아버지의 따뜻함
일본을 비롯한 제국들이 이 의지 전달과 이데올로기 확산을 위해 쓴 주요 매체 중 하나가 포스터다. 일제는 구미 국가들의 “전쟁을 선전하고 전의를 높이려는, 의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메시지 매체의 성격이 강한 이른바 ‘대전(大戰) 포스터’ ”를 참조했습니다.
징병검사 예행연습이었던 체력검사 장면. 청년 아래 저울을 바라보는 노인은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 미나미 지로다. 출처는 ‘매신 사진순보’. 서해문집 제공.
일제 포스터 주류가 이런 전의나 애국심 고취용입니다. 일제는 군국주의를 상업 광고 포스터에도 주입했다. 매일신보 1937년 12월11일자에 실린 광고는 총을 든 군인이 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 군인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매신 사진순보’ 1942년 4월 1일 자 표지 사진은 징병제에 대비한 체력검사를 하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1942년 체력검사는 징병제에 대비해 대상자에게 통지하고 그들을 동원하는 데 필요한 행정체계와 운영을 점검하고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고지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진해서 신고하라”라고 해서 행정의 빈틈을 메웠다. 체력검사는 청년의 체력만이 아니라 청년의 ‘사상 동향’도 함께 조사했다. 체력검사는 징병검사 예행연습이었다. 많은 조선인도 이미 체력검사를 징병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체력검사에 합격한 사람은 군대에 끌려간다”라고 잡담을 나누다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 그림 6은 체력 검사 사진이다. “체중계 위에 앳된 청년이 올라가 있고 미나미 지로 총독이 체중계 바늘을 바라본다. 이 사진은 피식민지 아들의 애국적 충정과 그를 따듯이 받아들이는 아버지로서의 지배자의 관계를 표현한다.”(미술사학자 서유리)
모두가 인적자원, 갓난아기도 미래 전력
일제는 갓난아기나 어린이들도 미래 전력으로 여겼습니다. 1928년 5월 28일 자 ‘조선신문’에 나온 ‘아동애호데이’ 포스터엔 “사랑하고 보호하자. 나라의 보내, 아동애호데이!”라는 구절을 적었습니다. 최규진은 “나라의 보배라는 말에는 국가주의사상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건강은 백만의 우군”이라는 표어와 함께 검도하는 소녀을 그렸다. 당시 교육당국은 “검도나 유도는 무사도 정신, 곧 일본정신을 일깨우며 전장에서 효용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출처:국립민속박물관
1939년 ‘동포애’ 6월호에 실린 포스터 표제는 ‘국민정신총동원 전국아동애호주간’입니다. “굳세게, 바르게, 귀엽게”라는 표어도 적었다. 그러나 그림 가득히 일장기를 그려서 일본 국가주의를 두드러지게 했다. 우람한 아이와 함께 철모와 비행기를 그려 넣어 ‘전쟁을 위한 아동’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 이 무렵 매체에서는 ‘국가의 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내 아이를 대할 때 국가에 쓰일 아동을 내가 맡아 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규진은 ‘인적자원’의 문제를 짚습니다.
일제는 중일전쟁 뒤부터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인적자원’이라는 말은 무섭다. 국력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되는 자원만이 인적자원으로 가치가 있으며 병자나 징애인은 ‘인적자원’에서 배제되었다. 또한 ‘인적자원’이라는 말에는 개성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를 실현하는 획일적인 인격과 능력을 요구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건강한 아동은 미래의 전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했다. 일제는 다산정책과 함께 유아사망률을 낮추고 모자보건을 살피겠다면서 아동애호주간 행사를 했다. 그러나 실질적 아동애호정책은 없었고 실행할 재정적 여력도 없었다. 일제가 병원 등을 동원해 벌인 ‘유유아 건강상담’과 같은 행사도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도 1990년대부터 ‘인적자원’이란 말을 즐겨 썼습니다. 2007년 4월 ‘인적자원개발 기본법’이란 이름의 법도 만들었지요. 제국주의건,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현실 국가들은 사람들을 ‘자원’ 취급하는 건 공통점인 듯합니다. 예전 법안 폐지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기자칼럼]사람인가 자본인가
포털사이트 뉴스 검색창에 ‘인적자원’을 쳐보면 40만건이 뜬다. 인적자원엔 ‘투자’ ‘개발’ ...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12132058025
자발적 신체 복종과 ‘착한 제국주의’
일제가 벌인 ‘유아 사망률 줄이기’나 ‘모자보건’은 언뜻 좋아 보이는 정책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런 사례를 들며 ‘발전’을 강조합니다. ‘최규진은 요즈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착한 제국주의론’을 퍼뜨리는 이론 체계로 봅니다. 착한 제국주의는 전쟁에 동원할 인적자원 확보 같은 이데올로기 수행을 가립니다. ‘몸’ ‘위생’ ‘건강’도 사람 자체의 건강보다는 인적자원 확보가 목표였습니다. 해방 뒤 한국에서도 쓰인 “건강은 국력”이라는 표어가 일제강점기 때 나온 것입니다.
결핵 예방 포스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38년과 1939년 일제는 여러 결핵 예방 포스터를 배포했습니다. 중일전쟁 전인 1936년엔 욱일기 모양을 배경으로 “결핵예방. 쬐어라, 햇볕”이라고 적었다. 중일전쟁이 벌어지고 나서는 국가주의 성격을 더 강하게 드러냅니다. 다시 ‘인적자원’이란 말이 나옵니다. “인적자원을 좀먹는 결핵을 예방하자!”라는 표어입니다. 최규진은 “조선총독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에서 건강한 ‘인적자원’을 확보하려고 결핵예방운동을 했다. ‘건강동원’인 셈”이라고 말합니다.
건강동원 대상엔 ‘눈’도 들어갔습니다. 일제는 1939년부터 눈 보호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눈의 기념일’행사도 열었습니다.
일제는 “전쟁을 할 때는 적을 정찰하고 전투를 치를 때 또는 생산 확충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다. 그러므로 눈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최규진은 “다시 말하면 ‘눈의 기념일’은 눈이라는 ‘신체 무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날이었던 셈”이라고 말합니다. 1942년 경기도 위생과는 “총후도 눈을 보호하자”는 내용의 포스터를 뿌렸다.
‘미성년자 금주금연법’도 청소년 건강을 신경 써 만든 법같아 보입니다만, 최규진은 “지원병제와도 관계가 깊다 앞으로 군인이 될 청소년의 신체를 관리하려는 뜻이었다. ‘지원병제가 실시되니 청소년들의 체위 향상을 위하여 청소년의 건강을 해롭게 하는 음주끽연을 금지한다’라는 뜻이 담겼다”고 말합니다.
국가 권력의 위생 선전을 두고 최규진은 “‘청결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체’를 창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근로’란 천황에게 봉사하는 행위”
책은 ‘젠더’와 ‘노동’ 문제도 끄집어냅니다.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말을 쓴 것의 근원을 찾은 것은 이번 책의 학술 성과입니다.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만들고 5월5일부터 시행했다. “전쟁에는 사람(man), 돈(money), 자재(materials)라는 3M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람, 곧 병력과 노동력이 있어야 전쟁을 치를 수 있다.” 그리하여 일제는 “중일전쟁 1주년을 계기로” 근로보국대를 만들어 노동력을 동원했다. ‘노동보국대’가 아니라 ‘근로보국대’라고 했다. 왜 일제는 노동이라는 말을 꺼리고 근로라는 말을 좋아했을까. 그 까닭을 알려면 일제의 ‘황국근로관’을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노동이란 단순한 노동자의 노동이 아니라 황국민의 노동이다. 따라서 그 바탕에는 사봉(仕奉)이 있다. 이것은 자유주의적·마르크스주의적 노동관이나 나치즘적 노동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현재 노동이라는 말 대신에 근로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이 글에서 ‘사봉’이란 무엇을 뜻할까. 사봉이란 “일에 봉사한다”라는 뜻이며 고전에도 나오는 말이다. 봉사라는 말과 거의 같다. 그러나 일본에서 ‘사봉’이라는 말은 기독교적 봉사나 나치즘의 민족 동포에 대한 ‘봉사’와 같은 뜻이 아니라 천황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노동이라는 말 대신에 쓰는 ‘근로’란 천황에게 봉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 일제는 사람들이 ‘근로봉사’를 하면서 ‘국가관념 함양’,‘희생봉공’, ‘비상시 국민의식 철저’ 따위의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일본에서 노동이란 단순한 노동자의 노동이 아니라 황국민의 노동이다. 따라서 그 바탕에는 사봉(仕奉)이 있다. 이것은 자유주의적·마르크스주의적 노동관이나 나치즘적 노동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현재 노동이라는 말 대신에 근로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이 글에서 ‘사봉’이란 무엇을 뜻할까. 사봉이란 “일에 봉사한다”라는 뜻이며 고전에도 나오는 말이다. 봉사라는 말과 거의 같다. 그러나 일본에서 ‘사봉’이라는 말은 기독교적 봉사나 나치즘의 민족 동포에 대한 ‘봉사’와 같은 뜻이 아니라 천황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노동이라는 말 대신에 쓰는 ‘근로’란 천황에게 봉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 일제는 사람들이 ‘근로봉사’를 하면서 ‘국가관념 함양’,‘희생봉공’, ‘비상시 국민의식 철저’ 따위의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천황’이란 표현이 거슬리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은 생전 여러 강연에서 ‘일왕’ 표기에 문제를 제기한 적 있습니다. ‘천황’이란 말을 쓰는 게 존경심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천황’이란 말을 써야 ‘천황제 관료독재 국가’라는 일본 국가의 성격과 아시아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여성 상품화의 기원
반관반민 단체인 ‘경성협찬회’가 만든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보고’ 포스터는 춘앵무를 추는 기생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포스터죠. 최규진은 “화려한 색과 현란한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족두리를 쓴 기생은 ‘풍속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욕망의 대상이자 식민지의 은유가 되기도 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을 상품화한 포스터도 나왔다. ‘시정 5년 기념 모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 보고’ 포스터. ‘매일신보’ 1915년 4월 22일자. 서해문집 제공
이미 일본인은 조선 하면 기생을 떠올리는 데 길들어 있었기 때문에 이 포스터에도 기생 이미지를 활용했을 것이다. 이 기생 이미지는 정치적 선전 수단이면서 공진회를 상업적으로 포장하여 관광객과 관람객을 유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오늘날 상품광고와 관광포스터 등에서 여성을 상업화하여 응시의 대상으로 연출하는 것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포스터는 근정전과 경회루는 어둡고 쓸쓸하게, 공진회의 근대적 건물은 환하고 북적이게 그려 ‘옛 조선’과 ‘새로운 식민지’를 대비하기도 합니다.
인천 송도 바다에서 훈련하는 이화여고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엔 “황국의 처, 황국의 어머니가 될 여학생에게 바다의 지식을 넓히는” 훈련을 한다고 적었습니다. 여학생들을 ‘전쟁 인적자원’을 낳고 기르며 내조하는 대상으로 여긴 것입니다.
감정노동도 여성에게
일제는 1942년 “조선에서 처음으로 만든 색채가 아름다운 사진 벽신문” 몇십만 장을 인쇄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붙입니다. 여자 여럿이 활짝 웃는 모습을 배경으로 해 “서로 무뚝뚝함과 찌푸린 표정보다는 따뜻한 친절과 예의를, 밝은 미소를 가게 앞에, 창구에, 직장에 넘쳐나게 해서 더욱 밝게, 강하게, 유쾌하게 총후의 모든 힘을 발휘하고 정진하여 장기전을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글을 일본어로 적었다습니다. 일제는 ‘친절 운동’을 하면서 포스터나 벽신문에선 주로 웃는 여성을 그렸죠.
1942년 제작된 ‘벽신문’은 여성의 감정노동을 강조한다. 매일신보, 경성일보 등에 실렸다. 서해문집 제공
왜 그랬을까? 친절이라는 가치를 활짝 웃는 여성의 이미지로 가시화한 것은 젠더적 분할을 보여준다. 또한, 대인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겨냥한 탓이기도 하다. ‘명랑은 직업을 가진 여성의 재산이다. 고객에게 친절하라’. 그렇게 여성 노동자에게 감정노동을 더 많이 요구했다. 성질 죽이고 일해야 하는 감정노동이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감정 관리를 좀 더 체계적으로 조직했다. “가정은 항구와 같아서 남편과 아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어야 하는데 주부가 명랑해야 한다”라는 논리도 있었다.
국가의 요구를 명랑하게 받아들여라!
최규진은 일제의 친절·명랑 운동을 “정부 정책을 고분고분 따르라는 뜻”이라고 했다. 군국주의와도 이어졌습니다. “친절은 전력(戰力)이다! 결전생활을 친절로써 이겨내자”라고 적은 광고가 예죠.
최규진은 “국가의 요구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친절과 명랑 운동의 핵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광수도 1945년 “국민학교 5~6년생 계집애들이 골무와 바늘을 가지고 더운 여름방학 날에 교실에 모여서 하루 종일 군복의 호크와 단추”를 다루는 모습을 두고 “조그마한 손가락들이 바늘구멍투성이가 되지만 이 딸들이 싫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는가. 이 얼마나 귀엽고 명랑한 일인가”라고 적었죠.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에게도 군복을 만들게 하는 것, 그것이 명랑 운동의 본질이었다. 친절 운동은 단순한 서비스 강화 운동이 아니었다. 온갖 어려움을 달게 받아들이며 전쟁을 명랑하게 뒷받침하라는 뜻이었다. ‘명랑’은 일제 말 동원정책 때 즐겨 썼던 어휘였지만 해방 이후 단독정부 수립에 즈음하여 다시 사용했다. 그 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등에서도 ‘명랑화’ 운동을 했다.
책은 일제가 포스터를 제작·배포한 1915년부터 패망한 1945년 8월까지 나온 포스터를 ‘계몽’ ‘홍보’ ‘사상동원’ ‘전쟁동원’이라는 네 범주로 나눠 분석합니다.
이 책은 대작이고 역작입니다. 주와 참고문헌만 100쪽입니다. 포스터, 삽화, 사진 등 도판은 총 961장입니다. 이 중 포스터가 대략 60%고요. 최규진은 “기존 책이나 논문에서 나온 적 없는 도판이 60%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책은 옛사람의 시각적 체험을 더 잘 이해하도록 현존 자료, 즉 컬러 포스터를 많이 실었습니다.
도서관도 민심 선도 기구
포스터를 그저 나열한 책은 아닙니다. 최규진은 “포스터에는 ‘거대 담론’에 가려졌던 ‘작은 역사’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식민지 조선에 살던 이들의 ‘일상 생활사’도 많이 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독서’입니다. 일제는 1910년대 무단통치를 하다가 1920년대 조선인을 식민지배에 순응하도록 ‘문화지배정책’을 강화합니다. 도서관 등을 확충했죠. “‘사회교육’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기관”이라 여긴 겁니다. 도서관은 “민심을 선도하기 위한 국가 기구”였죠.
책엔 익숙한 문구 하나가 나옵니다. 조선도서관연구회가 1933년 10월 내 ‘조선지도서관’ 표지엔 일본 여성이 책 읽는 모습 아래, ‘人, 書を作り書は人を作る’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뜻이죠. 교보문고 표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교보 창업주가 어떻게 이 표어를 만들었는지는 모릅니다. 참고로 교보 창업주인 대산 신용호의 아버지 신예범은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신용호도 중국에서 사업할 때 독립운동자금을 댔지요.
일제의 ‘계몽을 위한 포스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최규진은 맺음말에서 ‘착한 제국주의’의 본 모습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이데올로기 없는 선전은 없다
이데올로기 없는 선전은 없다. 포스터가 ‘계몽’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이데올로기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른바 계몽 프로젝트, 다시 말하면 ‘문명화’ 기획에는 식민지인에게 열등감을 심어 주어 저절로 순종하게 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곤 했다. 결국 계몽의 포스터는 “근대성으로 유혹하는” 장치였다. 그 포스터는 위생, 건강, 친절 등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피식민자의 저항 에너지를 누그러뜨리고 포섭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식민권력이 위생과 건강을 챙겨 주며 생명을 보호하려 한 것은 식민지인의 생명이 그들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인의 생명은 필요할 때면 언제나 쉽게 희생될 수 있었다. 말뿐인 ‘사회복지’도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계몽의 포스터가 그려 내는 ‘착한 제국주의’의 본 모습은 늘 그러했다.
책은 ‘백정’들의 인권운동인 ‘형평사 운동’의 포스터 같은 ‘저항의 포스터’도 넣었습니다. 결론에선 ‘저항’ 의미를 이렇게 풀어갑니다.
인간은 꼭두각시가 아니다. 아무리 선전해 댄들 인간의 자의식 모두를 말살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선전을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스스로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도 물이 흐르듯, 이름 없는 대중은 때때로 ‘눈에 띄지 않는 저항’으로 체제를 거스른다. “나는 저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무거운 억압과 거친 탄압 속에서도 저항의 틈새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에서 희망을 본다.
최규진은 책의 메시지를 일제강점기에 한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로 이어내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배적으로 만들려 했던’ 일제의 프로파간다를 오늘날의 자본주의 프로파간다에 빗대어 생각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