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도시바'…일본 반도체 업계 '아이콘', 74년 만에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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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3 20:38
지난 20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
주변의 우려에도 무리한 원전 투자
현실적으로 경영 정상화는 어려울 듯
[아로마스픽(70)] 12.18~22
일본 반도체 업계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도시바는 지난 1949년 도쿄증권거래소에 명함을 내밀면서 승승장구했지만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지난 20일 상장 폐지됐다. AFP 연합뉴스
‘NEC(1위), 도시바(2위), 히타치(3위).’
‘일본 천하’였다. 그만큼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기세는 무서웠다. 세계 ‘톱10’으로 판세를 확대시킬 경우엔 더했다. 후지쓰(6위)와 미쓰비시(7위), 마쓰시타(10위, 현 파나소닉)까지 포진, 사실상 글로벌 시장이 일본에 접수된 모양새였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주도권을 가져온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보여줬던 일본 반도체 업계의 영향력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의 시장점유율(매출 기준) 집계 순위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됐다.
이 가운데 지난 1875년에 창업한 도시바의 상징성은 상당했다. NEC와 반도체 업계의 쌍두마차였던 도시바는 특히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 개발(1986년)에 성공,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했다. 정전 상태에서도 자료 보존이 가능한 낸드플래시는 인공지능(AI)에서부터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 등을 비롯해 최근 대세인 4차 산업 분야에선 필수다. 도시바는 이 밖에 세계 최초로 선보였던 노트북(1985년)과 자국 내에서 첫 출시한 컬러TV(1960년), 전기밥솥(1955년), 냉장고 및 세탁기(1930년) 등도 잉태시켰다. 그만큼 일본내에선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랬던 도시바가 7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수뇌부의 거듭된 오판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하면서다. 급기야 지난달엔 자국내 기업들로 구성된 사모펀드 일본산업파트너스(JIP)에게 2조 엔(약 18조 원)에 최종 인수됐다. 아울러 1949년 명함을 내밀었던 도쿄증권거래소에서도 지난 20일 상장 폐지됐다.
일본 시가현의 도시바 요카이치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생산 공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바 홈페이지 캡처
일찌감치 예고는 됐지만 일본 내에서 차지했던 도시바의 위상을 고려하면 상장 폐지 소식은 충격적이다. 오랫동안 일본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해왔던 터였다.
도시바의 모태는 148년 전 도쿄 긴자에서 문을 열었던 다나카제작소다. 일본 내 천재 발명가로 알려졌던 다나카 히사시게에 의해 설립된 이곳에선 증기선과 증기기관차, 대포 등을 제작했다. 이 제작소는 이후 대기업인 미쓰이에 인수돼 시바우라 제작소로 새 출발(1904년)한 데 이어 일본에선 최초로 백열전구를 선보였던 도쿄전기와 합병(1939년)하면서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아울러 반도체 부흥기였던 1984년부턴 ‘도시바’로 사명을 변경,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도시바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추락했다. ‘세계 최고 기업’이란 타이틀 속에 숨겨졌던 자만심이 경영진의 치명적인 오판을 유도하면서다. 서막은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인텔 공략을 위해 우군으로 낙점했던 삼성전자에 헐값으로 낸드플래시 기술 이전에 나서면서 위기를 자초한 것. 낸드플래시의 시장성을 간파하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던 삼성전자와 달리 둔감했던 도시바는 한눈만 팔았다. 이런 행보는 결과적으로 2002년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계기로 남겨졌다.
경영진의 무리수 또한 컸다. 2006년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했던 원전 육성 사업에 동참한 과정에서 미국 원전 설계 업체인 웨스팅하우스를 주변의 우려에도 시세(18억 달러) 보다 3배 수준인 54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 상황에서 터진 동일본 대지진(2011년)으로 벌어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는 도시바의 발목을 잡았다. 이 사고는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제조사였던 도시바에 원전 수출까지 차단시키면서다. 도시바는 결국 천문학적인 손실만 남긴 웨스팅하우스를 2017년 파산보호신청 명단에 올렸다.
지난 1986년 당시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던 도시바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경영진의 오판이 이어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도시바 홈페이지 캡처
이런 상황에도 도시바의 새 주인인 JIP 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장담할 순 없지만) 혹독한 체질 개선 등을 통해 5년 이후 도시바 재상장에 나서겠다”는 게 JIP 측의 방침이다. 이를 위해 JIP는 도시바의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 자산 매각 등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반도체 부문 등을 매각한 도시바는 현재 상하수도 및 발전소와 관련된 인프라, 전기차 등에서 전력 제어용으로 쓰이는 파워반도체 연관 사업만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현실이다. 우선 JIP에서 도시바 인수에 투입된 2조 엔(약 18조 원) 중 은행에서 빌린 1조4,000억 엔(12조6,000억 원)을 도시바가 갚아야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도시바의 현재 신용 상태를 감안하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단 얘기다. 지난 2015년 밝혀진 약 2,200억 엔(2조 원) 상당의 분식회계 사태는 도시바엔 치명상을 입혔다. 대규모 원전 투자 실패로 돌아온 손실을 감추기 위한 부적절한 꼼수였다.
복잡한 사내 내부 사정도 걸림돌이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도시바의 각 사업 부문별로 실타래처럼 얽힌 구성원들의 계파 관계는 회사 정상화에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가전에서부터 원자력, 컴퓨터(PC) 등을 비롯한 각 분야 최고경영자(CEO)는 끊임없이 바뀌면서 경영권 다툼까지 벌여왔다. 각 계파에 연관된 구성원들은 향후 전개될 정상화 작업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바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는 양자컴퓨터 시대에선 필수적인 100건 이상의 양자 암호 관련 특허를 보유하면서 기술 경쟁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장 폐지로 이어진 과정에서 나타난 요인들을 고려하면 경영 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허재경 선임기자
주변의 우려에도 무리한 원전 투자
현실적으로 경영 정상화는 어려울 듯
[아로마스픽(70)] 12.18~22
편집자주
4차 산업 혁명 시대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결 지능형 사회 구현도 초읽기다. 이곳에서 공생할 인공지능(AI), 로봇(Robot), 메타버스(Metaverse), 자율주행(Auto vehicle/드론·무인차), 반도체(Semiconductor), 보안(Security) 등에 대한 주간 동향을 살펴봤다.일본 반도체 업계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도시바는 지난 1949년 도쿄증권거래소에 명함을 내밀면서 승승장구했지만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지난 20일 상장 폐지됐다. AFP 연합뉴스
‘NEC(1위), 도시바(2위), 히타치(3위).’
‘일본 천하’였다. 그만큼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기세는 무서웠다. 세계 ‘톱10’으로 판세를 확대시킬 경우엔 더했다. 후지쓰(6위)와 미쓰비시(7위), 마쓰시타(10위, 현 파나소닉)까지 포진, 사실상 글로벌 시장이 일본에 접수된 모양새였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주도권을 가져온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보여줬던 일본 반도체 업계의 영향력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의 시장점유율(매출 기준) 집계 순위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됐다.
이 가운데 지난 1875년에 창업한 도시바의 상징성은 상당했다. NEC와 반도체 업계의 쌍두마차였던 도시바는 특히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 개발(1986년)에 성공,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했다. 정전 상태에서도 자료 보존이 가능한 낸드플래시는 인공지능(AI)에서부터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 등을 비롯해 최근 대세인 4차 산업 분야에선 필수다. 도시바는 이 밖에 세계 최초로 선보였던 노트북(1985년)과 자국 내에서 첫 출시한 컬러TV(1960년), 전기밥솥(1955년), 냉장고 및 세탁기(1930년) 등도 잉태시켰다. 그만큼 일본내에선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랬던 도시바가 7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수뇌부의 거듭된 오판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하면서다. 급기야 지난달엔 자국내 기업들로 구성된 사모펀드 일본산업파트너스(JIP)에게 2조 엔(약 18조 원)에 최종 인수됐다. 아울러 1949년 명함을 내밀었던 도쿄증권거래소에서도 지난 20일 상장 폐지됐다.
일본 시가현의 도시바 요카이치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생산 공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바 홈페이지 캡처
경영진의 잇따른 ‘오판’ … 몰락은 ‘자업자득’
일찌감치 예고는 됐지만 일본 내에서 차지했던 도시바의 위상을 고려하면 상장 폐지 소식은 충격적이다. 오랫동안 일본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해왔던 터였다.
도시바의 모태는 148년 전 도쿄 긴자에서 문을 열었던 다나카제작소다. 일본 내 천재 발명가로 알려졌던 다나카 히사시게에 의해 설립된 이곳에선 증기선과 증기기관차, 대포 등을 제작했다. 이 제작소는 이후 대기업인 미쓰이에 인수돼 시바우라 제작소로 새 출발(1904년)한 데 이어 일본에선 최초로 백열전구를 선보였던 도쿄전기와 합병(1939년)하면서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아울러 반도체 부흥기였던 1984년부턴 ‘도시바’로 사명을 변경,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도시바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추락했다. ‘세계 최고 기업’이란 타이틀 속에 숨겨졌던 자만심이 경영진의 치명적인 오판을 유도하면서다. 서막은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인텔 공략을 위해 우군으로 낙점했던 삼성전자에 헐값으로 낸드플래시 기술 이전에 나서면서 위기를 자초한 것. 낸드플래시의 시장성을 간파하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던 삼성전자와 달리 둔감했던 도시바는 한눈만 팔았다. 이런 행보는 결과적으로 2002년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계기로 남겨졌다.
경영진의 무리수 또한 컸다. 2006년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했던 원전 육성 사업에 동참한 과정에서 미국 원전 설계 업체인 웨스팅하우스를 주변의 우려에도 시세(18억 달러) 보다 3배 수준인 54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 상황에서 터진 동일본 대지진(2011년)으로 벌어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는 도시바의 발목을 잡았다. 이 사고는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제조사였던 도시바에 원전 수출까지 차단시키면서다. 도시바는 결국 천문학적인 손실만 남긴 웨스팅하우스를 2017년 파산보호신청 명단에 올렸다.
지난 1986년 당시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던 도시바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경영진의 오판이 이어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도시바 홈페이지 캡처
부활을 꿈꾸지만…전망은 불투명
이런 상황에도 도시바의 새 주인인 JIP 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장담할 순 없지만) 혹독한 체질 개선 등을 통해 5년 이후 도시바 재상장에 나서겠다”는 게 JIP 측의 방침이다. 이를 위해 JIP는 도시바의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 자산 매각 등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반도체 부문 등을 매각한 도시바는 현재 상하수도 및 발전소와 관련된 인프라, 전기차 등에서 전력 제어용으로 쓰이는 파워반도체 연관 사업만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현실이다. 우선 JIP에서 도시바 인수에 투입된 2조 엔(약 18조 원) 중 은행에서 빌린 1조4,000억 엔(12조6,000억 원)을 도시바가 갚아야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도시바의 현재 신용 상태를 감안하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단 얘기다. 지난 2015년 밝혀진 약 2,200억 엔(2조 원) 상당의 분식회계 사태는 도시바엔 치명상을 입혔다. 대규모 원전 투자 실패로 돌아온 손실을 감추기 위한 부적절한 꼼수였다.
복잡한 사내 내부 사정도 걸림돌이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도시바의 각 사업 부문별로 실타래처럼 얽힌 구성원들의 계파 관계는 회사 정상화에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가전에서부터 원자력, 컴퓨터(PC) 등을 비롯한 각 분야 최고경영자(CEO)는 끊임없이 바뀌면서 경영권 다툼까지 벌여왔다. 각 계파에 연관된 구성원들은 향후 전개될 정상화 작업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바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는 양자컴퓨터 시대에선 필수적인 100건 이상의 양자 암호 관련 특허를 보유하면서 기술 경쟁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장 폐지로 이어진 과정에서 나타난 요인들을 고려하면 경영 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허재경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