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로 우뚝 선 배지환 “162.5㎞ 스플리터에… 세계 최고 선수들의 무대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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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8 07:28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무대까지 올라왔어요.”
2023시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리츠 주전 선수로 자리 잡은 배지환(24)은 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힘든 시절을 보상받고 있다는 듯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한 배지환은 KT 강백호와 함께 2018 KBO 신인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다. 하지만 배지환은 한국 무대가 아닌 미국을 선택했다. 라이벌로 꼽혔던 강백호는 KBO리그에서 데뷔 첫해부터 스타 반열에 올라섰지만 배지환은 미국에서 배고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어갔다.
“처음엔 정말 외로웠어요. 일본 사람만 봐도 반가웠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불안정한 신분에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니 신발이나 피규어 수집하는 취미도 이어가기 힘들었어요.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마이너리그는 개막도 안 했어요. 1년을 허비하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배지환은 후회하지 않았다. “투수는 잘 모르겠지만 야수는 1년이라도 빨리 해외 무대에 나가는 게 유리한 것 같아요. 좋은 공을 많이 봐야 실력이 빨리 늘잖아요.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많은 선수가 어릴 때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빅리그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던 배지환에게 2022년 기회가 찾아왔다. 배지환은 데뷔 첫 시즌이었던 그해 10경기 타율 0.333(33타수 11안타)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2023시즌엔 개막전 선발 출전하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가장 큰 변화는 상대 투수들의 수준이었어요. 빅리그 투수들은 정말 살면서 본 적 없는 공을 뿌려댔어요. 미네소타 트윈스 마무리 투수 요한 듀란 공이 기억나요. 시속 101마일(시속 162.5㎞)짜리 스플리터였죠. 당연히 타석에서는 그냥 녹아버렸죠.”
이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배지환은 두각을 드러냈다. 4월5일 데뷔 첫 홈런을 터트렸고, 같은 달 12일에는 끝내기 3점포를 쏘아 올렸다. 26일 경기에서는 3안타 3도루를 기록하며 훨훨 날았다. 5월에도 타율 0.304를 기록한 배지환은 6월부터는 하락세를 겪었다. 6월 타율은 0.159로 부진했고, 7월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1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배지환은 111경기 타율 0.231, 2홈런 24도루로 시즌을 마쳤다.
“5월부터 체력저하가 오더라고요. 제가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고 긴 시즌을 처음 치르다 보니 체력에 대한 생각을 못 했어요.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무리를 하다가 결국 부상까지 당했죠.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만큼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손아섭(35) 선배나 강정호(36), 최지만(32) 선배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선배들 조언대로 내년엔 시즌을 치를수록 훈련량을 줄여 보려고요.”
빠른 발을 가진 배지환은 장타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타구가 조금만 깊어도 주루를 통해 거뜬하게 장타로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100m 기록은 안 재봤는데 1루까지 3.65초에 끊은 적이 있어요. 최고 기록이죠. 보통은 4.05초면 1루에 닿아요. 스피드는 자신 있으니 이제 장타력까지 갖춘 선수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인 욕심이지만요.”
모처럼 한국에 들어온 배지환은 고향 대구의 후배들을 찾아 타격과 수비 시범을 보이는 등 재능기부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선배인 정인욱(33) 선수가 팀을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 고마운 기억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기억을 주고 싶어요.”
새 시즌을 일찍 준비하기 위해 다음 달 11일 출국하는 배지환의 목표는 어떻게 될까. “단기 목표는 없어요.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고 싶어요. 또 훗날 ‘배지환 야구 재밌게 했지’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가 되길 바라죠. 그리고 나이나 병역 문제에 상관없이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하 일문일답
─발목 부상에 아쉽게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좀 괜찮은지.
아직 안 뛰어봐서 모르겠지만 중점을 두고 치료하고 있다.
─2019년 싱글A부터 한계단 한계단 올라왔다.
힘들게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무대까지 올라왔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확실한 건 레벨이 올라갈수록 수준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투수가 던지는 공은 정말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재활 때문에 트리플A 경기에 나섰는데 확실히 차이가 났다. 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인상적인 공이 있었나?
사석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 선수들과 차이가 많이나느냐는 질문 같은 것 들이다. 사실 직접 비교는 어렵다. 뛰어보지 않아서 한국 투수의 수준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정말 살면서 본 적 없는 공을 던진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기억나는 공은 101마일짜리 였다. 그런데 이 공이 스플리터다. 미네소타 듀란이 던졌는데 타석에서 그대로 녹아버렸다.
─어린시절 타지생활을 했는데 외롭지 않았는지.
일본사람마나 봐도 반가웠고 제 또래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때가 힘들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마이너리그는 개막도 안하고 1년을 쉬었다. 1년을 허비하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어린 아들을 외국에 보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적극 지지해 주셨다. 미국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미국생활하면서 음식은 좀 어땠나.
메이저리그 올라와서는 너무 좋다. 큰 도시 다니면서 맛있는 집에가서 사먹고 또 밀키트도 잘 돼 있어서 편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팀 요리사에게 얘기하면 해주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이런 외로움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원래는 신발이나 피규어 같은 것들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짐이 감당이 안됐다. 그래서 이 취미는 없어졌다. 피츠버그에서는 자연스럽게 집돌이가 된 것 같다. 게임을 주로 하는데 파 크라이를 최근 재미있게 했다.
─함께 최대어라고 불렸던 강백호는 데뷔 초부터 스타반열에 올랐다. 조급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은데.
제가 지금은 위너 아닌가. 길게 봤다. 제가 야구를 정말 오래한다고 해도 나이 40정도가 될텐데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만 했다.
─최근 이정후가 좋은 조건으로 빅리그에 가기도 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전 한국 무대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 적 없다. 투수는 잘 모르겠지만 야수는 무조건 일찍 나가는 게 좋다. 1년이라도 어릴 때 해외 무대에 나가서 좋은 공을 많이 봐야 실력이 빨리 늘 수 있다. 많은 선수가 어릴 때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이정후는 어떤 성적을 낼 것 같나.
조급하지 않게 팬들이 길게 봐주셨으면 한다. 김하성 선수도 2년 동안 마이너리그를 가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을 냈지만 결국 대체가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됐다. 분명 잘할 선수니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야구선수다보니까 (이정후와) 몇 번 마주친 적 있다. 어렸을 때라서 ‘아버님(이종범)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게임에서 ‘94 이종범’을 자주 쓴다고도 했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가 운동을 좋아하신다. 조기축구도 하시고 사회인야구도 하신다. 처음에는 저도 축구도 했고 야구도 했다. 그런데 야구가 더 잘 맞아서 시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취미로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피츠버그에서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나 다름없이 활약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었을 거 같은데.
부상이 가장 컸다. 풀시즌을 치렀을 때 내 모습이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몸 관리를 잘 해야겠다.
─4월에 홈런을 2개나 때렸다. 5월에는 타율도 3할대였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5월부터는 부담을 많이 느꼈다. 결국 체력적인 부담이 발목 부상으로 연결됐다고 생각한다.
─데뷔 첫 홈런과 끝내기 홈런 중 뭐가 더 기억에 남나.
끝내기 홈런이다. 첫 홈런도 기분 좋았지만 끝내기 홈런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홈런으로 경기가 끝나고 우리팀 승리로 확정됐다.
─2024시즌은 어떤 부분을 집중에서 훈련할 계획인지.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한경기 한경기는 힘들지 않지만 장기 레이스를 치러야하다보면 체력안배가 중요하다. 손아섭 선배나 같이 뛴 적은 없지만 강정호 선배나 최지만 선배한테 많은 조언을 구한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시즌을 치를수록 훈련량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특히 내가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
─내야와 외야, 어디든 가리지 않고 경기에 나선다. 수비 위치가 바뀌면 예민해지는 선수들도 많던데.
그게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타순이나 수비에 구애받지 않는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외야는 활동 개입이 적다보니까 체력적으로 유리한 만큼 타격에서도 뭔가를 보여줘야한다. 내야는 항상 긴장하고 집중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어느 포지션도 상관 없다.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빠른가.
100m 달리기 기록은 재보지 않아서 얼마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번트를 대고 1루까지 달렸을 때 3.65초에 끊은 적이 있다. 보통 타석에서 4.05초면 1루에 도착한다. 스피드는 자신이 있으니 이제 장타력을 갖춘 선수가 되고 싶다. 개인적인 욕심이다. 이종범 선배님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고 지금은 추신수 선배이나 강정호 선배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재능기부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어릴 때 선배들을 보고 꿈을 키웠다. 제가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매니지먼트에도 많이 요청을 하는 편이다. 초등학생때 학교 선배인 정인욱 선수가 오셨다. 단 한번 프로선수와 만난 순간인데 아직도 고맙고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땐 이런 경험이 없었다.
─몸에 태극기 타투를 할 만큼 애국심이 강하다.
사실 고향인 ‘대구’를 넣고 싶었는데 조금 이상할 것 같아서 태극기로 결정했다. 야구하면서 보람된 순간도 교민들이 와서 응원해 주실 때다. 그때가 정말 뿌듯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내년 목표는 어떻게 되나.
단기적인 목표는 잡으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는 거 같다. 우선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뛰고 싶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스포츠는 재미를 위해서 본다. 팬들은 예전 영상도 찾아보고 관심을 갖게 된다. 그때 ‘배지환 야구하는 거 보면 참 재밌었는데’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다.
─국가대표에 대한 열정도 뜨거운 걸로 알려져 있다.
저희는 베이징 세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군대? 절대 아니다. 다 필요 없고 해외파까지 모두 모여서 정말 야구 어벤저스팀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축구에서 손흥민, 황희찬 같은 선수들이 모이는 것 같은 느낌처럼. 그렇게 해야 야구의 인기도 늘어나고 더 멋진 야구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마무리 투수인 오타니 쇼헤이와 마지막 타자인 마이크 트라우트의 대결 같은 멋진 장면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어른들은 한국야구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최)지만이 형도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짧은 편이 아닌데 국제대회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
─앞으로 일정은?
11일 출국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서운해하시지만 일찍 미국으로 돌아가서 동부쪽에서 훈련하다가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계획이다.
2023시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리츠 주전 선수로 자리 잡은 배지환(24)은 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힘든 시절을 보상받고 있다는 듯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대구 경북고를 졸업한 배지환은 KT 강백호와 함께 2018 KBO 신인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혔다. 하지만 배지환은 한국 무대가 아닌 미국을 선택했다. 라이벌로 꼽혔던 강백호는 KBO리그에서 데뷔 첫해부터 스타 반열에 올라섰지만 배지환은 미국에서 배고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어갔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배지환 선수. 최상수 기자 |
하지만 배지환은 후회하지 않았다. “투수는 잘 모르겠지만 야수는 1년이라도 빨리 해외 무대에 나가는 게 유리한 것 같아요. 좋은 공을 많이 봐야 실력이 빨리 늘잖아요.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많은 선수가 어릴 때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빅리그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던 배지환에게 2022년 기회가 찾아왔다. 배지환은 데뷔 첫 시즌이었던 그해 10경기 타율 0.333(33타수 11안타)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2023시즌엔 개막전 선발 출전하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가장 큰 변화는 상대 투수들의 수준이었어요. 빅리그 투수들은 정말 살면서 본 적 없는 공을 뿌려댔어요. 미네소타 트윈스 마무리 투수 요한 듀란 공이 기억나요. 시속 101마일(시속 162.5㎞)짜리 스플리터였죠. 당연히 타석에서는 그냥 녹아버렸죠.”
이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배지환은 두각을 드러냈다. 4월5일 데뷔 첫 홈런을 터트렸고, 같은 달 12일에는 끝내기 3점포를 쏘아 올렸다. 26일 경기에서는 3안타 3도루를 기록하며 훨훨 날았다. 5월에도 타율 0.304를 기록한 배지환은 6월부터는 하락세를 겪었다. 6월 타율은 0.159로 부진했고, 7월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1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배지환은 111경기 타율 0.231, 2홈런 24도루로 시즌을 마쳤다.
“5월부터 체력저하가 오더라고요. 제가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고 긴 시즌을 처음 치르다 보니 체력에 대한 생각을 못 했어요.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무리를 하다가 결국 부상까지 당했죠.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만큼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손아섭(35) 선배나 강정호(36), 최지만(32) 선배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선배들 조언대로 내년엔 시즌을 치를수록 훈련량을 줄여 보려고요.”
빠른 발을 가진 배지환은 장타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타구가 조금만 깊어도 주루를 통해 거뜬하게 장타로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100m 기록은 안 재봤는데 1루까지 3.65초에 끊은 적이 있어요. 최고 기록이죠. 보통은 4.05초면 1루에 닿아요. 스피드는 자신 있으니 이제 장타력까지 갖춘 선수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인 욕심이지만요.”
모처럼 한국에 들어온 배지환은 고향 대구의 후배들을 찾아 타격과 수비 시범을 보이는 등 재능기부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선배인 정인욱(33) 선수가 팀을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 고마운 기억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기억을 주고 싶어요.”
새 시즌을 일찍 준비하기 위해 다음 달 11일 출국하는 배지환의 목표는 어떻게 될까. “단기 목표는 없어요.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고 싶어요. 또 훗날 ‘배지환 야구 재밌게 했지’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가 되길 바라죠. 그리고 나이나 병역 문제에 상관없이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발목 부상에 아쉽게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좀 괜찮은지.
아직 안 뛰어봐서 모르겠지만 중점을 두고 치료하고 있다.
─2019년 싱글A부터 한계단 한계단 올라왔다.
힘들게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무대까지 올라왔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확실한 건 레벨이 올라갈수록 수준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투수가 던지는 공은 정말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재활 때문에 트리플A 경기에 나섰는데 확실히 차이가 났다. 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인상적인 공이 있었나?
사석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 선수들과 차이가 많이나느냐는 질문 같은 것 들이다. 사실 직접 비교는 어렵다. 뛰어보지 않아서 한국 투수의 수준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정말 살면서 본 적 없는 공을 던진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기억나는 공은 101마일짜리 였다. 그런데 이 공이 스플리터다. 미네소타 듀란이 던졌는데 타석에서 그대로 녹아버렸다.
─어린시절 타지생활을 했는데 외롭지 않았는지.
일본사람마나 봐도 반가웠고 제 또래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때가 힘들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마이너리그는 개막도 안하고 1년을 쉬었다. 1년을 허비하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어린 아들을 외국에 보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적극 지지해 주셨다. 미국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미국생활하면서 음식은 좀 어땠나.
메이저리그 올라와서는 너무 좋다. 큰 도시 다니면서 맛있는 집에가서 사먹고 또 밀키트도 잘 돼 있어서 편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팀 요리사에게 얘기하면 해주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이런 외로움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원래는 신발이나 피규어 같은 것들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짐이 감당이 안됐다. 그래서 이 취미는 없어졌다. 피츠버그에서는 자연스럽게 집돌이가 된 것 같다. 게임을 주로 하는데 파 크라이를 최근 재미있게 했다.
─함께 최대어라고 불렸던 강백호는 데뷔 초부터 스타반열에 올랐다. 조급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은데.
제가 지금은 위너 아닌가. 길게 봤다. 제가 야구를 정말 오래한다고 해도 나이 40정도가 될텐데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만 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전 한국 무대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 적 없다. 투수는 잘 모르겠지만 야수는 무조건 일찍 나가는 게 좋다. 1년이라도 어릴 때 해외 무대에 나가서 좋은 공을 많이 봐야 실력이 빨리 늘 수 있다. 많은 선수가 어릴 때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이정후는 어떤 성적을 낼 것 같나.
조급하지 않게 팬들이 길게 봐주셨으면 한다. 김하성 선수도 2년 동안 마이너리그를 가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을 냈지만 결국 대체가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됐다. 분명 잘할 선수니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야구선수다보니까 (이정후와) 몇 번 마주친 적 있다. 어렸을 때라서 ‘아버님(이종범)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게임에서 ‘94 이종범’을 자주 쓴다고도 했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가 운동을 좋아하신다. 조기축구도 하시고 사회인야구도 하신다. 처음에는 저도 축구도 했고 야구도 했다. 그런데 야구가 더 잘 맞아서 시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취미로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피츠버그에서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나 다름없이 활약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었을 거 같은데.
부상이 가장 컸다. 풀시즌을 치렀을 때 내 모습이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몸 관리를 잘 해야겠다.
─4월에 홈런을 2개나 때렸다. 5월에는 타율도 3할대였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5월부터는 부담을 많이 느꼈다. 결국 체력적인 부담이 발목 부상으로 연결됐다고 생각한다.
─데뷔 첫 홈런과 끝내기 홈런 중 뭐가 더 기억에 남나.
끝내기 홈런이다. 첫 홈런도 기분 좋았지만 끝내기 홈런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홈런으로 경기가 끝나고 우리팀 승리로 확정됐다.
─2024시즌은 어떤 부분을 집중에서 훈련할 계획인지.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한경기 한경기는 힘들지 않지만 장기 레이스를 치러야하다보면 체력안배가 중요하다. 손아섭 선배나 같이 뛴 적은 없지만 강정호 선배나 최지만 선배한테 많은 조언을 구한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시즌을 치를수록 훈련량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특히 내가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
─내야와 외야, 어디든 가리지 않고 경기에 나선다. 수비 위치가 바뀌면 예민해지는 선수들도 많던데.
그게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타순이나 수비에 구애받지 않는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외야는 활동 개입이 적다보니까 체력적으로 유리한 만큼 타격에서도 뭔가를 보여줘야한다. 내야는 항상 긴장하고 집중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어느 포지션도 상관 없다.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빠른가.
100m 달리기 기록은 재보지 않아서 얼마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번트를 대고 1루까지 달렸을 때 3.65초에 끊은 적이 있다. 보통 타석에서 4.05초면 1루에 도착한다. 스피드는 자신이 있으니 이제 장타력을 갖춘 선수가 되고 싶다. 개인적인 욕심이다. 이종범 선배님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고 지금은 추신수 선배이나 강정호 선배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재능기부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어릴 때 선배들을 보고 꿈을 키웠다. 제가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매니지먼트에도 많이 요청을 하는 편이다. 초등학생때 학교 선배인 정인욱 선수가 오셨다. 단 한번 프로선수와 만난 순간인데 아직도 고맙고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땐 이런 경험이 없었다.
─몸에 태극기 타투를 할 만큼 애국심이 강하다.
사실 고향인 ‘대구’를 넣고 싶었는데 조금 이상할 것 같아서 태극기로 결정했다. 야구하면서 보람된 순간도 교민들이 와서 응원해 주실 때다. 그때가 정말 뿌듯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내년 목표는 어떻게 되나.
단기적인 목표는 잡으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는 거 같다. 우선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뛰고 싶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스포츠는 재미를 위해서 본다. 팬들은 예전 영상도 찾아보고 관심을 갖게 된다. 그때 ‘배지환 야구하는 거 보면 참 재밌었는데’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다.
─국가대표에 대한 열정도 뜨거운 걸로 알려져 있다.
저희는 베이징 세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군대? 절대 아니다. 다 필요 없고 해외파까지 모두 모여서 정말 야구 어벤저스팀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축구에서 손흥민, 황희찬 같은 선수들이 모이는 것 같은 느낌처럼. 그렇게 해야 야구의 인기도 늘어나고 더 멋진 야구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마무리 투수인 오타니 쇼헤이와 마지막 타자인 마이크 트라우트의 대결 같은 멋진 장면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어른들은 한국야구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최)지만이 형도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짧은 편이 아닌데 국제대회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
─앞으로 일정은?
11일 출국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서운해하시지만 일찍 미국으로 돌아가서 동부쪽에서 훈련하다가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계획이다.
기사제공 세계일보